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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아이를 그만 보내주고 싶은데..

그만하자.. 조회수 : 3,172
작성일 : 2008-03-05 23:57:40
제목이 좀 이상하지요? -_-

음.. 저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이제 한 5년되어가네요.
학생들 중에 올해 6학년 된, 3학년 말부터나 가르친 남자아이가 있어요.
가르치다 보면 이 아이는 참 영민하다, 이 아이는 이해가 좀 느리다, 이 아이는.. 머리가 안 좋구나.. 이렇게
구분이 가요. 오늘 문제의 이 아이는 학습을 위한 머리는 안 좋은데 생활을 위한 머리는 좋은 아이지요.
이 말은 즉, 선생님 왔을 때 검사받기 위한 용도로 공부를 해 놓거나, 엄마 눈속임을 위한 공부를 한다는..

그나마 좀 어릴 때는 윽박도 질러보고 장단도 맞춰줘보고 어떻게 어떻게 끌고 왔는데,
작년 여름방학 부터인가는.. 딱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그러듯,
일단, 드러내놓고 숙제도 밀려놓고, 말은 청산유수라 변명도 구구절절 어찌나 잘 하는지,
이제는 선생님 무서운줄도 모르고, 학습 과제도 지시대로 하지 않고..
그런데 제 성격이 대충 봐주는 것 없이 완벽하게 공부가 되어 있어야 통과를 시켜주는 스타일이라..

아이가 한창 그런 때라는걸 알고 있으니 한 두번은 눈감아 줄 법도 하고 그렇지만,
결코 그냥 넘기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이 녀석이 눈속임으로 공부해 놓은 부분, 숙제를 잘 못한 부분 등등
다 집어내서 다시 하도록 시키고 그러다 보니 숙제는 늘어나고 당연히 아이는 영어에 허덕이고..

저보다 더 아이와 장단을 잘 맞춰주는 선생님이나, 대충 대충 봐주는 선생님을 만났다면
오히려 최소한 이 아이가 가진 능력은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많이 들더라구요.
영어 공부 일이년에 끝낼 것도 아니고 공부용으로 뿐만이 아니라 살면서 두고두고 써야할 것이 영어인데,
본격적으로 학과목으로서 영어 공부를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학을 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의 엄마가 저를 너무 좋아하고 믿고 따르신다는 거에요.
이 엄마가 아이들 공부 봐주는 성격이 저랑 비슷해서 절대 훌렁훌렁 넘어가지 않고 봐 주는 편인데,
영어는 자신이 없어 똑소리나게 봐 주지 못하다가 딱 엄마 성격같은 저를 만났으니 아이는 고달파도
엄마 입장에선 참 마음에 드셨나 봐요.

아무리 봐도 이 아이는 정식 과목으로 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하기 전에는 영어를 몇년 공부해 봤자
성격만 버리고 영어에 대한 안좋은 감정만 생기고 투자대비 별 소득을 얻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럴바에야 그냥 재미있게라도 공부하는게 성격형성에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 엄마와도 여러번 상의하고 저는 더 이상 못하겠다 아이만 더 버릴것 같다
혼내면서 이제는 내 감정이 실려서 말도 더 험하게 하게 되고 부담된다.. 다 말도 해 봤지만
그래도 저 아니면 안되겠다고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신게 몇달 째에요.

그러다가 오늘 아이와 수업이 있는 날이라 가서 보니,
문장 쓰기, 단어 외우기, 설명 정리하기, 문제 풀어놓기. . . 공부방법, 숙제 내용등을
설명도 해 주고 메모지에 적어 책상앞에 붙여놨는데도 제대로 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거에요.
제가 오는 날이라 아침에 엄마가 검사를 하다가 이미 엄마랑 한판해서 공책은 갈기갈기 찢겨있고,
문제는 듬성듬성 풀어놓고 단어는 전혀 안 외워져 있고 독해 부분은 영어아래 잔뜩 한글 뜻 써 놓고..
자기 말로는 오늘 제가 오기 전에 다 해놓으려고 했다는 뻔한 핑계거리.. 맨날  그 소리..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봤자 어린애인데,, 너무 심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겠냐 하겠지만
때로는 아이와 어른의 관계를 떠나서 인간대 인간으로 아이가 너무 싫어질 때가 있어요.
정이 뚝 떨어져서 그 아이의 얼굴도 목소리도 글씨 조차도 너무 싫고 악감정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애가 잘 한다고 해 놓았어도 야단칠거리 혼날 부분만 쪽집게같이 찾아내서 칭찬은 절대 하지 못하구요.

오늘은 그렇게 정이 뚝 떨어지더라구요. 정말 다시는 보기 싫다는 생각도 들고.
얼마 좀 더 벌자고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지탱해야 할까 하는 회의도 들고,
무엇보다도, 예,, 제가 너무 싫어진 이 아이는 이제 겨우 열세살이에요. 초등학생.
어리다면 어리고 한창 자라는 중이라면 자라는 중인 중요한 때인데 제가 무슨 악역향을 미치고 있는건지..

에구.. 말이 너무 길어졌지요. 정말 하소연할데가 없어서요, 저도 정리가 잘 안되네요.
오늘 아이 엄마를 만나지 못했어요. 저녁엔 가족들 다 들어와 있는데 길게 얘기가 안 될것 같아서
내일 아침에 전화해서 정말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나와 공부해서 얻는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고픈데..
과연 이 엄마가 이번엔 알겠다 그만하자 해 줄지.. 또 어떻게 말을 해야 엄마 입장에서도
너무 기분나쁘지않게 끝을 낼 수 있을지.. 이런 저런 생각에 울적한 밤이 지나가네요..
IP : 220.71.xxx.36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8.3.6 12:06 AM (125.138.xxx.220)

    울적하시죠? 저는 아이가 영어숙제를 하고 이제서야 잠자리에 드는 걸 보니 마음이 울적한 밤입니다..아이들에게 공부가 뭔지..우리 같이 힘내요..ㅠㅠ

  • 2. ...
    '08.3.6 12:22 AM (218.209.xxx.159)

    님... 그 심정 정말 이해가 가요...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딱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쉽지는 않겠죠?

  • 3. 저도
    '08.3.6 12:33 AM (211.192.xxx.23)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ㅠㅠ 우리집 오시는 선생님들도 우리아이 이렇게 생각히실까봐 겁도 나고..한숨이 나와요,,장기적으로는 엄마한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씀해주시는게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 4. ..
    '08.3.6 1:33 AM (58.121.xxx.125)

    아이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는 상황이니 계속할 의미가 없군요.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그만 두심이 좋겠습니다.
    서로를 위해서요.

  • 5. ****
    '08.3.6 8:41 AM (125.181.xxx.141)

    윗님 말씀대로 계속하신다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 이군요.

    제 아이를 보니 한선생님께 2년이상 하면
    아이가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더군요.
    긴장하지 않으니
    당연히 과외의 효과(?)는 떨어지고요.

    그 아이 부모님께 아이에게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다른 선생님을 구해서 환경을 바꿔주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세요.

  • 6. .
    '08.3.6 8:49 AM (125.177.xxx.12)

    저희집 학습시터 (저녁6시-9시)가 한마디로 "아이가 미워져서 힘들다" 얘기하며
    그만두었었어요.
    저 퇴근 늦고 아이 4학년때.
    우리아들, 지독히 뺀질, 말 안듣고 요리조리 빠져나기만 하는 힘든 아이였죠.
    선생님도 첨엔 얼마나 헌신적으로 하셨는지 알고 있고, 제가 선생님 품성 알고,
    우리아이 밉다 하실땐 그간 얼마나 맘고생 심하셨나 생각에 코가 찡....

    6학년 남자애라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제아들 그 나이때 진심으로 아들 미워해 본 적도 있을 정도니..
    무슨 말씀하시는지, 뭐가 어렵다 하시는지 다 이해된답니다.
    학부모께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이해할 내용인데요.

  • 7. 66
    '08.3.6 9:58 PM (210.217.xxx.113)

    요즘 세상에 이렇게 양심적인 선생님이 계시다니.....
    과외선생님 그렇지 않은분도 많이 계신데......
    가까이 계신다면 꼭 우리아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존경합니다

  • 8. 원글이
    '08.3.7 12:19 AM (220.71.xxx.36)

    많은 분들이 댓글 남겨주셨네요.
    하지만 오늘도 엄마랑 통화하지 못했어요.
    엄마가 제가 무슨 말 할지 알고 피하는건지 집도 핸드폰도 연결이 안되네요.
    내일은 아이 엄마를 직접 만나러 가 볼까 싶기도 하고.. 어짜피 부딪쳐야 하는 일인데 말이에요.
    제 편을 들어 말씀해 주신 분들 덕분에 위안도 위로도 받고는 가는데..
    그래도 제가 역시 부족해서 아이를 끝까지 잘 이끌지 못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울적하기는 해요.

    음.. 모쪼록 일이 잘 마무리 되어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답글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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