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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당한 여중생과 자살한 여교수

서프펌 조회수 : 1,400
작성일 : 2004-12-15 09:55:53
‘침묵의 카르텔’

성폭행당한 여중생과 자살한 여교수







몸이 아파서 몇 주간 기력을 잃었다가 오랜만에 접한 한국 소식은 너무나도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밀양에서 어린 나이에 여중생들이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가해자들은 이를 범죄로 여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들을 감싸 조직적인 축소와 은폐의 의혹마저 제기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기사가 눈길을 잡아당겼다. 이 비극적인 기사는 대구 유명한 대학에서 임용된 지 1년 만에 자살한 한 여교수의 이야기였다. 짧은 이 기사에서 기자는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교수 사이에서의 ‘왕따’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남겨진 메모를 근거로 보도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이 사실은 같은 원인을 바탕에 깔고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과 대구, 특별히 대구에는 군 생활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다. 왜냐하면 익히 알려진 대로, 이런 동네들이 가진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알기로 이런 동네들을 유교적 가부장주의가 지배적인 고장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은 못해봤지만, 대구지역에 낙태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소문을 들어왔다. 반면에 남아 출산율도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소문도.




밀양도 역시 이름난 양반동네 중의 하나다. 가부장주의 아래에서 여성들이 착취당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나쁜 것은 이런 동네일수록 사회 구조가 남성 위주로 짜여져 있고, 남성들의 가부장주의 혹은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잔인할 만큼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응징은 범죄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에 대한 수호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전통 사회에서 간통죄는 여성에게만 적용 되었을 뿐더러, 간통한 여성에 대한 사적인 형행도 묵인되었다.




대구에 유명한 이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거의 20명쯤 되는 교수 중에 여성은 끝부분에 고작 세 명. 다른 교수들이 모두 대구 출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뿌리 깊은 서울대 싹쓸이 관행 때문에 많은 분들은 서울대 출신일 것이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새로 임용 된 이분은 학벌과 관련이 좀 없었던 것 같다. 만일 자살한 여교수의 존재가 혹은 언행이나 실력이 다른 교수들의 가부장주의적 권위주의에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면, 이에 대한 응징은 사회적으로 장려되었을 가능성이 너무나 짙다.




더구나 ‘대구’라는 엄청나게 특수한 가부장 사회에서 이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밀양에서는 어떤가? ‘남자들이 젊을 때,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성폭행을 포함해서) 경찰에 고발 같은 걸 해서 사회적인 이슈로 만든 니들은 오히려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다.’






“안티가부장제 페스티벌 2003. 대구” ⓒ 엠파스 이미지 검색




밀양경찰서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이 했다는 말을 되새겨 보면 확인이 된다. ‘니들이 밀양에 와서 물을 흐렸다’는 것이다. 이걸 좀 더 해석해보면, ‘밀양에서 숱하게 성폭행사건이 있었어도, 지금까지 아무런 신고나 처벌이 없었는데 왜 니들은 괜히 문제를 만드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성지배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statusquo) 것은 정치적으로도 자신들이 지배했던 독재, 냉전시대의 현상을 필사적으로 붙들려는 수구적 몸부림과도 일맥상통한다.




딴나라가 경상도에서 텃밭을 일구는 것은 그들이 어떤 미친 짓을 해도, 경상도 사람들이 독재정권 시대의 향수에 빠져서, 좋았던 시절을 되새기며, 독재, 냉전의 죽은 시체를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떤가? 일반적으로 가부장 사회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여성들은 남성보다도 더 가부장적인 생각을 갖고 이것을 이데올로기화 하는 여성들이다.




이번 밀양 사건에서 뜻하지 않게 표면에 떠올라 충격을 주는 것이, 성폭행범들의 여자친구들의 언행이었다. 단순한 사랑이나 우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남성들보다 더 마초적인 가부장주의였던 것이다. 뻔뻔하게 ‘피해자들이 꼬리쳤다’고 주장할 만큼 그들은 더 깊게 물들어 있었다.




두 번째로, 사회가 가부장적 위계질서로 구조화 되면, 합리적인 이성보다는 인맥과 학연이 지배하는 곳이 된다. 실력이나 객관적인 능력보다는, 학벌, 혹은 인간관계가 더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 곳이다.




사회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범죄를 낳거나 혹은 인간을 비인간으로 그리고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그런 작용을 하기도 한다. 지역감정이 판을 치는 것은, 이미 합리적인 사고가 그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느끼는 분노, 양심,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바로 그것이, 이런 사고에 찌들은 사람들에게는 한낱 스쳐 지나가는 상념만도 못한 것이 된다.




이들에게는 범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니다. 유희일 뿐이며, 카타르시스일 뿐이다. 독재정권의 개가 되어서 사람들을 고문하고도, 아직도 모자라 뻘건 눈을 번득이는 짐승에게 합리적인 생각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문제는 이게 분명히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마비되어 이런 짐승들에게 선거 때만 되면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다.




아마 누구든 중학생 정도의 지적 능력만 되면 『디알북』에 나오는 도표를 읽고 뭐가 잘못이고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책을 보고도, 합리적인 사고를 저버리는 수구적인 인간들은 전혀 스스로의 생각을 하려 하지 않고, 자기편이라고 생각되는 찌라시들이 내뱉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댈 것이다.




밀양 사건에서 그 많은 성폭행범중에 과연 한 녀석도 이게 잘못 된 게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넘이 없었을까? 교회나 성당 가서 회개한 넘이 과연 하나도 없었을까?




문제는 이게 혈연과 학벌로 뭉쳐진 집단주의의 무서운 점이라는 것이다. 내 친구, 내 선배, 내 애인, 내 집단의 안위가 곧 나의 안위라고 생각되는 특수한 상황이 주어지면, 합리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짐승과 같은 자기보호본능과 함께 무조건적인 맹종만이 자리를 잡는다.




내 선배가 시키는 게 다 옳은 것이고, 범죄든 남을 죽이는 일이든 성실하게 해 내면 되는 것이다.




‘인종주의’가 이런 식이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만을 갖고, 나와 다른 것들을 죽이거나 경쟁에서 도태시켜야 나와 비슷한 것들이 좀 나아질 것이고 따라서 내가 생존할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근대화 되었다고 교만을 떠는 서구 사회를 지금껏 지배해 왔다.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도 이런 맥락을 탄다. 그 기반은 아주 비합리적이다. 나와 일면식 없어도, 같은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잘 되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제거 되어야, 내가 좀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생각과 광기가 아직까지 맹위를 떨친다.    




마지막으로 이런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비극적인 사건도 ‘침묵의 카르텔’을 통해서 은폐되고, 왜곡되고, 잊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남부는 남북전쟁 이후에 엄청난 타격을 받고, 북군 군대가 주둔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재건(reconstruction)의 길을 갔다. 죽을 만큼 싫었지만, 흑인들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했고, 흑인을 주지사로 뽑는 죽기보다 더한 수치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적지근한 재건은 속으로 스며들어간 남부인들의 복수심을 이겨내지 못했다. 재건이 끝나고 흑인들의 투표권은 다시 제한되고, 인종차별이 본격화되며, 흑인과 유색인에 대한 린치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흑인에 대한 린치는 거의 60년대에 까지 공공연히 때로는 비밀리에 계속되곤 했다.




그러나 엄연히 불법인 이런 일들이 실제로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거나 주모자가 처벌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 남부 시골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들의 배후에 늘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지역 유지들과 경찰의 야합, 미국에선 경찰이 거의 지역경찰이라 이런 건 보편적인 일이기도 했다, 조직적인 은폐, 왜곡이 남부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생했다. 1960년대 미시시피 버닝을 기억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많은 남부인들의 심리 속에는 흑인에 대한 불법적인 폭력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건들을 이슈로 만드는 것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사고방식이 뿌리박혀 있었다. 이것은 물론 지역 유지들과 공권력이 만들어낸 주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밀양에서 미성년자 집단 성폭행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보다는, 이 사건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 더 수치스럽고, 조용하게 아무도 몰래 끝낼 수도 있었던 일이 알려져서, 어두울 땐 보이지 않았던 자신들의 추악함이 드러나니 더욱 수치스럽고…….




지성인들 사이에서 인격적인 모독과 고통이 한 개인에게 주어졌다는 사실보다는, 왕따를 당하던 린치를 당하던 남들처럼 잘 참고 죽어지내야지, 자살 같은 걸 해서 여러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더 수치스러운 것이다. 너도 나도 깨끗한 거 없는데 같이 입 다물자는 식이다.  




미국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에선 대체로 언론이 이런 스캔들을 파헤치려 하는 반면에, 한국에 일부 언론은 오히려 이런 야합을 주도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사이비 찌라시들은 적반하장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무시한 정부나 대통령을 향해서 더러운 공격을 가한다.




가부장주의가 수구화 되는 것과 인종주의가 수구화 되는 것은 상당히 유사한 경로를 거친다. 여성에 대해서나 타 인종에 대해서 차별과 착취의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리적인 비판을 몰아낸 자리에 인간관계와 학벌 혹은 인종우월주의 같은 것들을 채워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점도 같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로 이 기괴한 구조가 초래하는 모순과 말썽들을 ‘침묵의 카르텔’을 통해서 감춰버린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러나 위대한 시대정신과 역사의 흐름은 이런 쓰레기들을 오늘도 그 도도한 물결로 조금씩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 뉴욕에서




IP : 211.201.xxx.63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마당
    '04.12.15 10:01 AM (211.215.xxx.152)

    동감.동감합니다.
    문제를 이슈화 시키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시끄럽게 굴고 질서를 깨뜨린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단 이런 문제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요 며칠 정말 맘이 너무 아프네요.

  • 2. 가을&들꽃
    '04.12.15 11:07 AM (219.253.xxx.213)

    저도 동감.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배후에는 정말 무섭고 혐오스러운,
    의식과 양심의 마비라는 괴물이 자리하고 있죠.

  • 3. 민호마미
    '04.12.15 12:57 PM (218.145.xxx.76)

    저도 동감...
    워낙 오래전부터 고질적인 문제라.
    휴~~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이지요...ㅡㅡ;

  • 4. hippo
    '04.12.15 1:56 PM (210.96.xxx.100)

    잎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그때가 참 걱정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상식이나 양심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 같아서요.

  • 5. 오호...
    '04.12.15 3:06 PM (211.196.xxx.232)

    그 지역이 그렇구나...아닌게 아니라 그동네로 시집간 친구들이나 남편 발령지따라 내려간 친구들 말에 따르면 가시내가 어데...하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고 하네요...

  • 6. 포항댁
    '04.12.15 4:31 PM (210.105.xxx.18)

    저는 대구에서 나고 많은 시간을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대구 및 경북지역이 유교적 전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그로 인해 여성들(저, 저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등등) 힘든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대신 부모자식간 유대관계 강하고 등등의 긍정적인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유교적, 보수적 성향이 대구경북의 전체 모습은 아닙니다.
    자라는 동안, 학교다니면서,사회생활하면서 저는 한번도 '가시내가 어데'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차별 인정합니다. 그건 다른 지역에서도 있는 일이 아닐까요 ?
    원글님 말씀의 의도는 알겠지만, 가능하면 어느 특정 지역 전체를 싸잡아서 오해하시는 일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 7. ..........
    '04.12.15 5:38 PM (210.115.xxx.169)

    저는 그쪽 분들의 말속에서 많이 보았는 걸요.
    가시나가 어데..
    여자가 그러는 거 너무 보기 싫다. 그래서 남자가 그러는 것은 암말 안하면서..
    중년 여자가 직장다니는 것 보기 싫다(젊어야 보기좋다......그래서 본인도 아주 조심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내면화 된 여성들은 -그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기위하여
    혹은 잘 적응하는 분들-

    남자보다 훨씬 더 합니다. 더 앞장섭니다.

    사실 시집살이도 그렇고요.

  • 8. 기가
    '04.12.15 6:43 PM (211.201.xxx.135)

    막히게 시집살이에 잘 적응해서 사는 여자들 보면 십중팔구 친정에서 시누노릇하는 여자들이죠.
    자기 부모에 대해 잘못한다 싶으면 올케에게 응징을 가하려고 하죠.
    가만 보면 시집살이, 고부갈등, 며느리와 시댁관계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봐요.
    여자들은 결혼해서야 이걸 뼈저리게 겪게 되죠.. 그전까지는 모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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