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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어두운(?) 과거.

생크림요구르트 조회수 : 1,947
작성일 : 2004-12-02 16:31:15
한동안 닫아두었던 개인홈을 재개장했더니
82쿡에 글을 잘 안 남기게 되네요...;
완전히 잊혀지기 전에 잡담이나마 한 토막^^a;;


남편과는 같은 과 입학동기입니다.
신입생이 백몇십명인 과였지만, 번호대가 가까운 편이어서 비교적 초기부터 안면 트고 지냈어요.
남편은 워낙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인데다가, 여자애들한테 친한척 하기에도 아주 능했죠-.-;;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그런 것이 당시 제 눈에 비친 남편의 모습이었습니다.

특이하기도 꽤나 특이했죠.
당시만 해도 아직 배낭여행이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는데,
이 인간은 1학년 여름방학때, 그것도 사귀던 여자친구랑 둘이서-_-; 한달간 유럽을 다녀와
과 아이들 사이에서 약간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었구요.
그냥 곱게 돌아온 것도 아니고, 그...뭐라더라, 암튼 색실로 머리 한가닥 땋는 거 있죠.
그걸 떡하니 해가지고 와서는 한동안 동물원 원숭이가 되기도 하고...^^;;
(근데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머리모양이 유행하더라구요. 본인은 자기가 유행을 선도했다고 주장-.-;;;)

뭐 그러거나 말거나, 당시의 저는 이미 다른 모군을 열렬히 사모하던 중이었으므로
남편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녀석, 이라는 정도의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술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어요.
'지훈이네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다' 라고, 한 친구가 제게 그러는 겁니다. (앗 남편의 실명 등장;;;)
방학 때, 부산에 있는 남편의 집에 놀러갔다 온 친구였거든요.

당시 아직 스무살도 안된, 꿈많은 소녀;; 였던 저는, 조금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원래, '씩씩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슬픈 과거가 있는' 남자주인공한테 약하거든요.
(예....테리우스 G. 그란체스터 군을 좋아하는 타입이 딱 접니다;;)
저 장난기 넘치고 활달하게만 보이는 녀석에게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니...싶더군요.

물론 어머니가 계모라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건 당시의 철없던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뭔가 그에 선행되는 슬픈 과거가 있었을 거 아니겠어요. 부모의 이혼이라든가 사별이라든가...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을 볼때마다 어쩐지 애틋하더라구요.
방학이나 명절 때 집에 잘 안 내려가는 편이었는데, 그것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고...
남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은 저의 특기-_-v이기 때문에,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그래서 그 부산 다녀온 친구도 저에게만 얘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몇 년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사귀게 되었지요.
(물론 불행한 과거가 있다는 이유로 남편을 택한 것은 아니었구요^^;;)
그런데, 연애기간도 길어지고, 사이도 깊어지고, 슬슬 장래;를 논하기 시작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남편이 '그 이야기' 를 저에게 해주지 않는 겁니다.

저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렇게 날 못 믿는 건가. 아직 나한테 그것밖에 마음을 안 열어준 건가.
그게 뭐가 대수라고. 나는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는데.

그래서 어느 날, 같이 술을 마시다가, 제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너 왜 나한테 너희 어머니 얘기 안 해 주는데?'
'무슨 얘기?'

정말로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남편의 말똥말똥한 눈을 보며,
상당히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_-;;
유들유들한 편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포커페이스는 아니거든요.
그래도 내친김에; 저는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너희 어머니, 친어머니 아니시라면서. 옛날에 아무개한테 그렇게 들었는데.'
'이상한 녀석이네.'

................그걸로 상황 끝;;;;orz;;;;;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더 흘러 비로소 뵙게 된 남편의 어머님은,
남편을 쏙 빼어닮으셨더군요....ㅠ.ㅠ;;;

집에 잘 안 내려갔던 것은 단지 귀찮아서 + 서울에서 놀기 위해(....;;;)

대체 어디서 무슨 착각이 발생하여 그런 휘황찬란한 오해를 낳게 되었는지
아무개군에게 따져 볼 기회는 끝내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지금은 조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간에, 제가 남편을 '눈여겨보게' 된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 보고 싶어지네요. 귀여운 우리 남편.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이 밝고 맑고 씩씩한.....(혼자만의 외로운 닭짓...ㅠㅠ)
IP : 218.145.xxx.154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헤스티아
    '04.12.2 4:39 PM (220.117.xxx.244)

    크헐헐.. 그래서 요새 뜸하셨군요.. 입덧땜에 힘들어 하시나.. 했죠...^^;;

    이상한 아무개님 덕분에, 남편께서 횡재하셨네요...^^;;

  • 2. 한번쯤
    '04.12.2 5:03 PM (211.38.xxx.7)

    그렇게 좋은 남편 만나려구 상황들이 그렇게 전개되어져 있었나봐요...^^***지금처럼 쭈우욱 행복하세요

  • 3. igloo
    '04.12.2 5:45 PM (203.241.xxx.142)

    하하하.
    저랑 남편도 씨씨였는데요..(동갑)
    울 남편.. 첨 보니까 어찌 그리 야성적으로 보이던지.
    (맥가이버 머리 비슷한데다 캉캉부츠 신고 다녔어요)
    지금 둘이서 옛날 얘기하면 둘 다 뒤집어집니다.

    오래 사귀다 결혼하니까 .. 곱씹을 추억이 많아서 좋더라구요.

  • 4. 행복이가득한집
    '04.12.2 6:36 PM (220.64.xxx.73)

    소리 내어 웃습니다
    하하하하하하.................................

  • 5. simple
    '04.12.2 8:07 PM (218.51.xxx.50)

    음하하하하....혼자만의 외로운 닭짓!!!! 넘 웃겨요~~~
    근데 생요님의 글 읽다보니 저랑 왠지 비슷한 연령대가 아닐까 추측이 된다는....그 머리스탈 한때 유행했다죠...홍대앞에는 돈 받고 그거 해주는 사람도 있었는데....갑자기 저도 학창시절로 돌아간듯한 기분이^^

  • 6. 김혜경
    '04.12.2 9:55 PM (211.178.xxx.233)

    ㅋㅋ...
    생요님...개인홈피 땜에 82 자주 안들어오시면..미워할께양 이잉~~

  • 7. 강아지똥
    '04.12.3 10:09 AM (61.254.xxx.222)

    추억은 언제나 즐거워용,,,,,ㅋㅋ

  • 8. 미스테리
    '04.12.3 1:42 PM (220.118.xxx.81)

    ㅋㅋㅋ...
    시어머님을 쏙빼닮은 남편분....^^;
    생요님 만나게 하려고(?) 친구는 그런 유언비어를...ㅋㅋ
    이럴땐 혼내줘야 하나요??.... 아니면 이뻐야 해줘야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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