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이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네요.
저는 내신 문제 때문에 아주 심각하게 자퇴를 생각했었답니다. 제가 다닌 학교가 특목고는 아니었으나, 비평준화 지역에서 이름이 쫌 난 학교였던 고로 특목고 아이들이나 수준이 비등비등 했지요. 수능 모의고사 보면 저희학교가 전국 top이고 그랬으니까요.(자랑아님다. 저 거기서 잘 못했슴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신이 엉망인 겁니다. 대학갈 때 내신이 참 중요한데, 수능만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래서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갈 때, 또는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갈 때 한반에서 꼭 한두명씩은 자퇴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저도 그 친구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자퇴가 하고 싶었습니다.
자퇴만 하면 귀찮은 조회나 종례 청소 등을 안해도 되고, 보다 실력있는 선생님을 만날 것 같고, 내가 하고싶은 곳에서 공부할 수 있고, 정말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런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저는 부모님의 강압에 의해 자퇴를 할 수 없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부모님의 강압이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동문을 통한 관계. 대학에서 또는 사회에서 고등학교 동문들과의 교류, 연대감, 모임 등이 얼마나 든든한 빽(?)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학연 지연을 타파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대학다닐 때 저희 과에 저희 고등학교 동문회가 있었구요. 공부할 때 많은 도움 얻습니다. 하다못해 밥이라도 같이 먹을 사람 생깁니다. 그리고 나서 취직해 보니 또 고등학교 선배들이 있더라구요. 날 이끌어주고 도와줄 선배. 이건 학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둘째.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취업문제. 보통 공부 문제로 자퇴하는 아이들 보다는 다른 사유로 자퇴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입사지원서에 검정고시로 찍히면 일단은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봅니다. 혹시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거죠. 본인이 아무리 공부하고 싶어서 자퇴했다고 한들, 듣는 쪽에서 믿어주지 않으면 소용없겠지요.
셋째. 주변 환경. 검정고시학원 전체를 싸잡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솔직히 학교보다는 모이는 아이들이 더 다양(?)하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더 높겠지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그런 아이들과 맞딱뜨릴 위험 높습니다.
넷째. 교육의 질. 과연 검정고시학원의 교육 질이 그렇게 높을까요? 제가 예전에 검정고시 보는 아이 과외한 적 있어요. 검정고시는 그야말로 기초 학력에 대한 검정이기 때문에 시험 자체가 어렵지 않아요. 학원 강의가 그렇게 주옥같거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강의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시험 통과할 만큼만(얼마간의 시험 기술 및 기출문제를 섞어서) 가르치지요. 이 말은, 학생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심화과정에 있어서 별도의 공부를 본인이 파고들어가며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쩌면 수업과 본인이 공부하는 수준 사이의 괴리가 학교보다 더 심할 수 있어요. 이런 교육을 위해 검정고시 학원의 만만치 않은 수강료를 내야 할까요?
다섯째. 이건 부수적인 겁니다만.. 혹시 따님이 대학을 먼저 가고 싶어서 또는 경험을 쌓고 보다 유리하게 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닙니까? 올해 수능을 봐서 또래들 보다 먼저 가거나, 혹은 올해 경험삼아 수능을 한 번 보고 내년에 더 잘봐서 또래들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이요. 제가 자퇴를 하고 싶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는데요.
혹시 이런 이유도 있다면 강력하게 말리세요. 지금 자퇴해봐야 올해 수능 못치릅니다. 자퇴 후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 응시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검정고시는 2,8월에 있습니다. 결국 지금 자퇴해도 올해 8월 시험 못본다는 겁니다. 자퇴의 의미가 없죠.
제가 가장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생의 큰 문제를 결정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립니다. 그 또래에는 자기만의 논리가 있어 보이고 얼마만큼은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부모님이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이건 어쩌면 인생 행로의 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보다 인생을 더 살아오신 부모님께서 먼저 깊이 고민해 보시고 자퇴를 말리시는 것이 어떨지 감히 말씀드립니다.
어차피 지금 자퇴해도 올해 수능을 못보니까 그냥 계속 학교에 다니게 하시고 정말 더이상은 해도해도 안되겠다 싶으면 내년 2월 전에만 자퇴하면 되요.
일단 물을 엎지르면 담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말리세요.
저는 정말 그 때 저의 자퇴를 막아주신 부모님께 지금 깊이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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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좋은 의견 부탁합니다
소도둑&애기 조회수 : 890
작성일 : 2004-03-12 14: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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