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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

ido 조회수 : 2,168
작성일 : 2004-03-07 10:32:03




희안한 눈이 왔다. 보일락말락한 미세한 눈가루가 비랑 섞여 내렸다. 내린 눈은 마치 얇디 얇은 솜포처럼 길위에 쌓여 길옆으로 치워진 두꺼운 눈더미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눈에서 스며 나온 눈이 꽝꽝 얼어 붙어 있는 것처럼. 이상한 눈길이었다. 늦잠이 들었다. 날씨의 압박탓만은 아니다. 며칠.....나는 머리가 아픈 것이다. 그리고 늦잠이 왔다. 새벽에 민주 우유를 먹이고 나면. 잠이 깼다. 그가 코를 골면 잘 수가 없다.

그의 기타연주가 나를 깨웠다. 나조차 모를 먼곳에 있는 나를. 그는 어떻게 알고 찾아 오는 걸까. 울고 싶을만큼. 쓸쓸해지는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이 따갑다. 11시. 깜깜했다.

꿈을 꿨다. 기억이 잘려 나갔는지. 조각필름처럼 까만 영상만이 깜빡. 떠오르다 꺼진다. 우울하다. 정신이 맑아져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은데.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는 바로 잠이 들었다. 민주도 잠이 들었다. 나도 자야 하는데. 그는 또 코를 곤다. 우울하다.

종일 집 안에 있었다. 어제도 그랬다. 오후께가 되면 늦잠이 왔다. 자고 일어나면 그가 돌아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피곤한 그는 잠이 들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아. 또 머리가 아프다. 눈이 따갑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은데.....깜깜한 것이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 말고는. 그가 코 고는 거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는데. 이런 날은 라디오도 켤 수가 없다. 낭패감이. 나를 침실로 데려가 줄 것이다. 기꺼이 따라가고 싶은 나는. 일부러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잠이 올까? 잠이 올때까지만......깨어 있자고. 약속을 한다. 이런 약속은 대개 지켜지질 않는다. 우울이. 텅빈 우물안에 고여 있는 이끼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그냥 들여다 보는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녹색 이끼는 달빛을 받으면 푸른 색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단 한 번도 달빛에 고여 있는 우물안에 이끼를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이끼가 달빛을 받으면 푸른 색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한다. 터널 안에서 귤껍질이 희안한 보라빛이 되는 걸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그 빛은 이상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내 눈을 사로잡았었다. 이상하게 아름다운 사람들도. 거리에서. 카페에서. 가끔 마주치곤 한다. 그런 날은 꼭. 어김없이 우울해지곤 한다. 생각이 많아진다. 이상한 일이다.

학교 교정엔 벚꽃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분홍물감을 가장 얇은 붓에 찍어 흠뻑 물에 적신 흰 종이 위에 살짝 떨어뜨린 것처럼. 화사한 빛깔을 자랑하는 벚꽃이 피었다. 멀리서 보면 하얳다. 조팝나무의 뭉실한 흰꽃과는 다른 흰빛이다. 조팝나무 꽃에선 연두빛이 흘러나온다. 내가 좋아한 그 벚나무에선 화사한 분홍꽃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무 밑에 서서 꽃비를 맞았다. 그러고 교정을 미친년처럼 뛰어다니곤 했다. 맨발이었다.

새벽잔디를 맨발로 밟아본 기억이 있는가. 해가 떠오르고. 간밤. 두더쥐가 파 놓은 흙굴이 쇠똥처럼 솟아 오른 잔디밭.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잔디 앞에 서면. 심호흡을 해야한다. 잔디가 얼음보다 차갑기 때문이다. 젖은 잔디를 맨발로 밟으면 여름인데도 찬 겨울 살얼음을 깨고 냇물에 발을 담글때처럼. 뾰족한 한기가 뼈속까지 스며든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다. 나는 그런 한기를 싫어한다. 잔디밭을 밟고 걷는 건. 그 다음. 잔디 밑에 덮힌 흙이 내뿜는 더운 숨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몇 발자욱만 참고 걸으면. 걷기 시작하면. 걸음을 멈출 수가 없을 만큼......발바닥이 따뜻해진다. 그런 온기를. 아침. 이슬이 마르지 않은 잔디밭 외에는 느껴본 일이 없다.

정원엔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잔디밭에. 키가 작은 사과나무엔 꼬마 주먹 크기만한 땡땡한 사과가 반은 파랗게 반은 빨갛게 드문드문 매달려 있었다. 아주 시고 아주 달고 아주 딱딱했다. 사과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네. 주인 할머니는 내가 사과를 따 먹으면 그렇게 말씀하셨다. 햇빛이 따가워서 더이상 걷기 싫어지면. 나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 먹었다. 주인 할머니의 침실이 있는 2층 창문은. 아침인데도 하얀 블라인드가 여태 드리워져 있었다. 사과나무에 사과는 네가 다 따 먹겠구나. 할머니는 그러셨지만. 나는 사과가 익기도 전에. 사과나무를. 할머니를 떠났다. 남아 있던 사과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할머니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사과가 떨어져 썩어 정원을 망친다고. 잔디가 너무 빨리 자란다고. 그 사과가 싫다고 하셨다. 사과나무는 할머니처럼 말라 있었다. 너는 좋겠다. 입맛이 있어서. 그러고 밥을 안 드셨다. 그 잔디밭이 다시 그립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눈.비가 오지 않으면. 시내에 나갈 것이다. 친구는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학교에 가면 그녀를 다시 볼 수가 있다. 자러 가야겠다. 새벽이 깊어가는 시각. 2시 17분. 녹색불이 깜빡거린다. 잠이. 이제는 잠이 올 것만 같다. 자러 가야지.


.....


저에게도.....힘을 주세요....^^;;;. 이 긴 우울의 강을 빨리 건너갈 수 있도록.....힘과 용기를 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비둘기 부부. 예쁘죠? 저러구 한참 앉았다 갔어요....며칠전에. 비둘기 부부가 인사하는 거예요. 우리처럼 행복하세요~ 하구요. 가까이 찍으려고 베란다 쪽 문 살짝 조심스럽게 여는데...푸더덕. 날아가 버렸지요. 욕심이....욕심이 지나쳤던 게지요...ㅋㅋ.
IP : 62.134.xxx.63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dreamer
    '04.3.7 11:27 AM (141.157.xxx.107)

    희한하죠? ido님 글을 읽으면 님이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행복이 느껴져요..마음이 따뜻해져요.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찾으시는 모습, 가슴 깊숙히 가지고 계신 삶에 대한 신념과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행복..그런게 느껴지네요..
    님께선 이미 우울의 강을 건널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 계신 분 같아요.
    우울한 기분까지도 애써 떨쳐버리기 보단 그냥 받아들일만큼 받아들이고 다시 우뚝 일어나실것 같아요.....저는 그런 ido님을 그냥 닮고 싶은 용기없는.........

  • 2. 실망
    '04.3.7 2:44 PM (211.215.xxx.134)

    왜 자신의 문제를 과대포장하며 많은 미사여구를 써가며 남들에게서,자신을 함리화하시려는지 묻고 싶십니다
    객관적이 아닌주관적으로말하겠읍니다
    그나이에 외국에서 아이를낳고기르시는것은본인은사랑에의한최선의선택이겠지만이도당신의부모님은생각해보셨는지요물론당신은성인이기에현명한아주많이당신의목숨과도비꿀만큼선택한결과겠지요그리해놓고 오늘은 이래서하늘이우울하고 하지만 잠깐지나나아주괜찮은 똑똑한나자신이니까가잠깐우울했지만나잘있어요
    다시한번돌아보시길바람니다
    저는처음엔이도님을이해할려고노력했었고뭔지모르지만 이도님이혜경님에게투정을부렸을때
    혜경님이어른이시지만혹시작은거지만말실수를하셨나(본의아니게)생각했읍니다
    뭔가아쉬움을남기면서시간을가지신다고하실때그래힘들땐좀뒤돌아볼필요도있지라고박수쳤지만 불과이틀도안돼바로아무렇지도안게사진올리고글쓰고 .............
    그나이엔어디에서든지사는것은힘듭니다우리다같이열심히살자구요
    ..요즘케이블티비에서 원미경,강석우주연이었던 아줌마란연속극을재방송해주는데
    아주간단한결론을..이도님같이길게하는재주를가진대학교수님이나와서아주우리아줌마들을뭉게는연속극이였읍니다
    제가하고싶은말은 벼는익을수록고개를숙이고차라리자신이없으면솔직하기라도하자입니다

  • 3. 아라레
    '04.3.7 6:02 PM (210.221.xxx.250)

    이도님. 그저 힘내시라는 말밖에....
    일상의 조그마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실 수있는 눈을 가지셨고
    미묘한 색채의 변화에 감동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그런 것들에서 잠깐이나마 위안을 삼으시고 힘내세요.

  • 4. 혹시...
    '04.3.7 6:37 PM (211.54.xxx.12)

    산후우울증+ 향수병 아니시려나... 원래 돌 지나기 전까지가 제일 힘들죠. 수시로 자다 깨서
    아기 먹여야 하고, 뒤치닥거리 다 해야하고, 하루가 어찌 갔는지도 모르는 상태에다 도와주는
    친정엄마도 없으면 그 일년이 참 지옥같더이다... 저도 혼자서 애 껴안고 어찌나 힘들던지...
    아이가 조금만 더 지나면 많이 수월해집니다. 친구분들께 많이 응석부리세요. 수다도 많이 떠시구요. 남편은...별 도움이 안 됩니다.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나..싶으실 테니 힘내세요.

  • 5. 내 참..
    '04.3.8 1:56 AM (211.197.xxx.59)

    왠 안티이도 바랍이랍니까?? 원글을 두번이나 읽었지만, 가시돋힌 리플이 달린 이유를 모르겠군요. 자신의 문제를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합리화시켰다뇨?? 뭘 합리화했다는 건지 알수가 없고... 전에 쓴 글까지 불러와 이건 어떠냐니...님이야말로 점입가경이십니다. 제 눈에는 조크로 보일뿐인데..혜경님에 대한 쓴소리는 농담일지라도 용서없다!! 이런 분위기같아 씁쓸하군요..
    어떤 환경 어떤 마음이신지 알수없으니 정확히는 몰라도.. 독일아니라 국내여도 타향이라서 아무도 없이 혼자 갓난 애 키우는 건 정말 힘듭니다. 낯선 곳은 첨엔 흥미로울지 몰라도 곧 유배지처럼 느껴집니다. 주변에 말섞을 사람 아무도 없는데 이곳에 와서.. 하루는 우울해 미치고 어떤 하루는 행복하다.. 고 말하는게 죄가 되는지요. 다른 분들도 하루는 신세 한탄. 하루는 행복타령 많던데요. 미사여구 운운하신 걸 보면 이도님의 매끄러운 글솜씨가 문제인가요? 애때문에 꼼짝못하고 집에만 있는데다 낮밤이 바껴서리 정말 죽을맛이다.. 이랬더라면 그렇게 비꼬지는 않으셨을까요?? ..거친 것과 솔직한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 6. 도배글 사절
    '04.3.8 2:24 AM (220.76.xxx.154)

    내 참..님 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글을 편집하여 퍼다 놓으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그간의 글들을 거의 읽으셨으리라 사료됩니다.

  • 7. 한심해요
    '04.3.8 8:40 AM (210.216.xxx.252)

    이도님의 주술 비슷한 이글이 이렇게 우리끼리 헐뜯고 주인장 들먹이고 사이트회원을 떼로묶어 탓할만한 가치가 있는 껀인가요? 쯧쯧....주인공은 빠지고 자기들끼리 싸우는꼴이라니...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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