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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이야기
싱크대 수전이랑 코브라 꼭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기존에 쓰던 수도기가 짧아서
한 쪽 싱크볼에는 닿질 않아서
(집 구조랄까 이런저런 인프라가 참으로 취약합니다. -_-;;)
항상 궁시렁 대며 설겆이를 해대다
마트서 그 쪽을 유심히 살펴보던 저를 보고
사온 모양입니다.
(저에게 감동을 주려는 컨셉 1.)
좀더 싸게 살 요량으로
장안동 뒤쪽 상가에서 셔터 내리려는
가게 아저씨 부여잡고 사왔다더군요.
(컨셉 2.)
직접 팔 걷어부치고 기존 걸 떼어내고
조이고 두드리는 소리가 나던 말던.... -_-
저는 꿋꿋이 방안서 컴을 애청하고 있었습니다.
"○○아, 잠깐 나와봐."
"왜~~애~에~~앵~?"
심부름 하기 싫어 늘어진 소리로 대답하는
애처럼 느릿느릿 나가봤더니
죽방에 뚫린 구멍을 손으로 막는
네덜란드 소년마냥(실제론 없는 사실이라죠)
남편이 굵직한 손꾸락으로
물 나오는 구멍을 부들부들 떨면서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엄지 손가락에 혼신의 힘을 모아 체중을 앞으로 실은..)
⊙ㅁ⊙;; 허걱!
"모하는 거야, 지금?"
"빨리 거기 있는 나사에 고무 테잎 좀 감아서 줘라."
수전을 떼어내고 새걸 달으려니까
나사에 비해 구멍이 헐거워서 물이 샌다고
저더러 하양 고무테잎을 감으라는 거였습니다.
그 얇고 척척 늘어지는 테이프를 감으려니
자꾸 꼬이고 얽히고...
저도 같이 무딘 손을 떨어가며 감는 내내
"어.. 어.. 빨리 좀 감아. 나 지금 손시려 죽겠어.
지금 이 물줄기가 장난이 아니야.
내가 힘이 세서 막고 있는거지 딴사람 같으면 어림없다.
으휴! 손에 감각이 없어지고 있어. 춥다..." 등등.
재촉과 타박과 곁들여 자기 힘자랑까지 하는 멘트를 들어가며
덤벙덤벙 얼추 테잎을 감고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자- 맘의 준비를 해. 힛_!"
하더니 얼른 손을 떼고 제가 건네준 나사를 틀어막으려는데--!!
자기야 상황도 알고 맘의 준비를 단단히 했겠지만
그저 멍하니 무슨 공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몰랐던 저는...
정말 소화전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거세고 찬 물줄기에 얼굴과 몸통을 직방으로 맞았습니다. ㅠoㅠ
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속살이 뿌옇게 비치고
둘다 물에 젖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추워서 벌겋게 부어오른 입에선 김이 나오고...
연애시절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당장 18금 표시가 붙는 에로버젼으로 치다를지 모르지만 ㅋㅋ
현실은 뿜어져 나온 물에 흥건히 젖어있는 부엌바닥.
거기서 좋아라 철벅거리며 노는 딸래미.
내일 아침용으로 따로 덜어둔 순두부 찌개도 물텀벙이 되고...
안경은 물에 젖어 앞이 안보이고
코로 물이 들어갔다, 나왔다..
옷은 처덕처덕...
아닌 밤중에 물벼락을 맞고 정말 정신 없었습니다.
일단 그나마 마른 상태의 인간으로 있던 딸을
방안에다 던져(?) 두고
걸레란 걸레는 총출동시켜 바닥 훔쳐내고
널려있던 식재료 물기 닦아 냉장고로 피신시키고
푸닥닥닥 일단락을 지은 뒤
사천왕의 부리부리한 눈을 하고 남편을 쏘아보며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이 난리얏!!!"
하며 새된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저에게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의 모습으로
감동을 주려던 컨셉이고 뭐고
잔인한 현실앞에서 그저 남편은
안해도 될 일을 크게 벌여놓은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평화롭게 마인드 콘트롤이 안돼는 저 대신
남편이 저녁 설겆이를 하고
"어... 아무래도 새걸로 바뀌니까 더 편하다.
내가 시범사용 해봤더니 좋은데?" 하며
제 눈치를 슬슬 살피더군여.
-o- =3=3=3
어쩌겠습니까....
"그래. 수고했어. 잘 쓸게.
근데 앞으로 내 허락없이 뭐든지 사오면 x는다...?" -_-+
오밤중에 퇴폐 나이트의 물쇼를 벌였지만
그 뒷감당은 임천식+금보라 커플처럼 진도가 나가고
난리굿을 한 뒤 다시 허기 지다며
밤참으로 비빔면을 끓여먹고 잠을 잔 시각이
새벽 2시 넘어....
이렇게 삽니다. 에효... --_--
ps: 참! 다 정리하고 치우다 보니 사온 상자속에 새 나사가
들어있더군요. 그걸 들고 남편 왈,
"어? 여기 이게 있었네? 없는 줄 알고 헌거에다 테잎감아 했더니.."
새걸 썼으면 그 물벼락을 안맞아도 됐었단 소리에
저 다시 한번 부르르 떨고 뒤로 넘어갔습니다. 꽥꽥꽤액-!
1. 깜찌기 펭
'04.2.27 10:37 PM (220.89.xxx.53)이것을 빌미로 한며칠 시켜먹으세요.
ㅋㅋㅋ2. 마플
'04.2.27 10:43 PM (61.83.xxx.28)미치겠당!!!!!!
시상에나...수도계량기를 잠궈놓고하시징..
우리도 그걸로 바꿨는데 암생각없는저 그냥헌거뜯어내고 다는줄알았더니 신랑이 계량기 잠궈놓고 하더라구요
자꾸 웃음이나서 미안해용ㅋㅋㅋㅋㅋ3. 이론의 여왕
'04.2.27 10:46 PM (203.246.xxx.189)크하... 재미있게 사시네요, 알콩달콩.^^
싱크대 밑에 수도 잠그는 거 있는데, 그걸로 물을 잠그고 하시지 않구선...
이왕이면 새 나사로 다시 조여달라고 하세요. 것도 모르냐고 마구 타박하면서. ㅎㅎ4. 아이비
'04.2.27 10:55 PM (220.75.xxx.107)한번에 성공하셨나요?
남편분 대단하신걸요.
저희 부부는 2일만에 성공했답니다.
너무 타박마세요. 예전의 일을 생각하셔서^^5. ripplet
'04.2.27 11:04 PM (211.54.xxx.55)해주고도 욕먹는 울 집 삼돌이랑..아라레님 남편분이랑 자꾸 오버랩됩니당. ^^
파이프 잠궈야되는 거 아셨응께..그걸로 '한 따까리' 더 하시는거 아닐랑가. ㅋㅋㅋㅋ6. 슈~
'04.2.27 11:06 PM (211.44.xxx.191)너무 정말 진짜 웃깁니다.
그리고 임현식ㅎㅎ 금보라 커플이겠죠?^^;;7. scymom
'04.2.27 11:14 PM (218.39.xxx.29)전 손재주 없는 남편과 사는 관계로다 꿈도 못꿉니다. 한 편 부럽기도 합니다요.
한 밤의 퇴폐 나이트 물쑈....ㅋㅋㅋ
조립식 가구 같은 거 사오면 오히려 두려움과 심장 떨림의 소용돌이에서 온 집안이 고요합니다.
조립하다 말고 펄쩍 펄쩍 뛰는 남편땜시.
그럴걸 왜 사온거야 도대체가.8. 냠냠주부
'04.2.27 11:14 PM (221.138.xxx.13)하하하하하 임천식!!
아라레님..문천식을 좋아하시나요? .
(....문헌익? ...문현힉? ...문천쉭?)9. 아라레
'04.2.27 11:38 PM (210.221.xxx.250)수도계량기가 바깥 보일러실에 있는데 밤이라 깜깜해서 안보여서 못찾겠다고
그냥 하다 봉변 당했죠. 뭐. 싱크대 밑에도 잠그는게 있는지는 몰랐네요.
머리로는 임현식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쓰기는 천식이 됐을까?? ^^;;10. 무우꽃
'04.2.28 12:47 AM (210.118.xxx.196)아이고오 배야아~~~~
11. 카푸치노
'04.2.28 9:05 AM (211.192.xxx.203)베스트극장이 따로 없습니다..
재밌게 사시네요..12. 김혜경
'04.2.28 10:12 AM (211.178.xxx.191)하하하...
그래도 남편분, 아내의 불편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가상하네요.13. 키세스
'04.2.28 12:19 PM (211.176.xxx.151)ㅎㅎㅎ넘 재밌어요.
남편분이 정말 순둥이신 것 같아요.
귀엽기까지... ㅋㅋㅋ14. 핫코코아
'04.2.28 12:43 PM (211.243.xxx.210)전요~ 아라레님 글 읽을때마다 늘 미소를 넘어가는 수준의 웃음이 스믈스믈...
참 재미있게 사시는거 같아서 늘 보기 좋습니다
아라레님~ 늘 그렇게 행복하세요~^^15. 달팽이
'04.2.28 2:39 PM (221.149.xxx.28)푸하하하.....정말 재밌어요.^0^
전 아라레님이 직접 얘기하는거 옆에서 듣고 싶어용
글만 재밌게 쓰시는거 아니죠?
우와 정말 보고싶네 아라레님이.....*^^*16. 정혜선
'04.2.29 12:10 PM (211.190.xxx.118)살다보면...참 재밌는 일도 많은 것 같아요....이런 재미에 사는거죠...ㅋㅋㅋ
애써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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