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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할일마트 맘놓고 가세요?

지마샘 조회수 : 922
작성일 : 2003-11-06 08:35:32
오마이뉴스에서 펀글입니다.

할인마트 맘 편히 가시나요?


바람과 함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가을이 완연함을 느낍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길거리를 덮고 있으니 쓸쓸함과 함께 그것을 쓸어 담아야 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인생을 멋지게 살아볼까'하며 낭만적 계획도 세워 보지만 쌀이 아내의 떨어졌다는 말 한마디에 그런 낭만은 씁쓸히 꼬리를 감추고 저는 할인마트에 갈 채비를 합니다.

쌀집에 전화해서 배달시켜도 되겠지만 우리 가족은 꼭 할인마트에서 쌀을 팔아다 놓습니다. 이유는 물론 가격입니다. 왕복 버스비를 더하고도 할인마트에서 '최저가'라고 내놓은 쌀이 더 싸기 때문입니다.

쌀을 팔러 가는 김에 찬거리도 준비할 겸 온가족이 쇼핑길에 나섰습니다. 온가족이래야 늘 저와 손잡고 다니기 좋아하는 아내와 그런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4살바기 딸아이 뿐입니다.

조그만 메모지에 큼직하게 필요한 품목을 다 써넣어도 여백은 많습니다. 이번엔 기필코 적어간 것만 산다고 마음을 다져 먹습니다. 물론 미처 생각치 못해 빠뜨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 충동구매로 장바구니를 채우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어선 안됩니다.

지난 추석에 선물 준비하느라 갔고, 또 지난 달에 쌀이 떨어져서 갔으니 꼭 한 달만에 다시 찾은 할인마트입니다. 토종 할인마트의 외벽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낙엽이 그려져 있고 '알뜰쇼핑'이라고 큼직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쇼핑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할인마트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점부터 갑니다. 거기서 감자튀김을 하나 사서 딸아이 손에 쥐어 줍니다. 감자튀김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딸아이의 1차적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남은 쇼핑 시간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할인품목이 적힌 전단지를 펼쳐놓고 보물을 찾듯이 꼭 필요한 것 중에 정말 싸게 내놓은 것을 찾습니다. 웬만한 품목들의 할인가는 제 머리 속에 정리가 되어 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가격비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싼 것도 있고 생색내기용 할인품목도 있습니다.
  
정말 싸다 싶으면 대량 구매를 합니다. 특히 휴지나 샴푸, 비누, 식용유 등은 행사가격으로 하나씩 더 끼워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사놓습니다. 증정품을 주는 것도 많습니다. 식용유에 밀가루를 덤으로 주는데 직원에게 말만 잘하면 하나 더 붙여주기도 합니다.

식료품은 제일 나중에 둘러봅니다. 신선하게 가져와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저녁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의 떨이 상품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바나나가 100g에 299원 하던 것이 어떤 땐 88원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특히 해삼류나 초밥, 튀김 등은 마감시간에 가격이 절반으로 내리기도 합니다. 먹을만한데다가 평소엔 양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마음껏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잘 이용해야 됩니다.

주로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사기 위해 할인마트에 들르지만 철이 바뀔 때면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이 탐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맘 먹고 사고 나면 꼭 후회합니다. 왜냐하면 한 달쯤 후에 와서 보면 멋있게 걸려 있던 옷들이 옷걸이도 없이 통로 어딘가에 50%할인된 가격으로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할인마트에서 저희를 가장 괴롭히는 품목은 딸아이와 관련된 물품입니다. 이 옷도 예쁘고 저 옷도 예쁩니다. 한글 쓰기 책도 사주고 싶고, 산수 책도 사주고 싶습니다. 오만 가지 인형과 장난감, 동화 비디오 테이프들은 우리 부부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하지만 딸아이 물건들을 살 때면 좀 더 과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 둘째 낳으면 또 필요할 거야'라는 합리화로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감자튀김에 옷이나, 장남감 선물까지 받아 든 딸아이는 할인마트를 지상 천국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종이에 적힌 품목을 초과해서 구입한 덕분에 무거워진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갑니다.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속에 끼여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괜한 허탈감을 느낍니다. 어른들이 자주 쓰시던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씀이 새삼 와닿습니다.

계산대 앞에 서면 꼭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대구에서 종종 온 식구들을 이끌고 할인마트에 가면 아버지는 한번도 자신의 물건을 고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뒷짐만 지고 우리 뒤를 따라다니시다가 계산할 때만 저희들 앞에 나서십니다.

어떤 땐 차에서 내리지도 않으시고 지갑만 내미실 때도 있습니다. 너희끼리 장 보고 오라시며 주차장에서 혼자 담배만 피고 계실 때도 있습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마냥 아버지께 짐만 지워드린 셈입니다.

지금은 제가 그때의 아버지 위치에 있습니다. 좋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에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던 아버지를 이제야 이해합니다. 못난 아들놈에 며느리,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를 위해서는 당신 몸치장은 사치였고, 현실적으로 계산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건만 어느덧 저도 아버지와 똑같이 살아가는 듯 합니다.

계산을 마치고 '산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 돈이 많이 나왔지'라고 한마디 하며 할인점을 나섭니다. 20kg 쌀 포대를 들고 집까지 오는 길이 수월치 않지만 우리 가족 밥줄이기에 든든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할인마트에서 언제쯤 허탈감과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쇼핑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그 많은 물건들을 보고도 꿈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절제할 수 있는 생활을 배우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음에 만족해야겠습니다.  

IP : 165.213.xx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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