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웨어에서 나온, 쿠치나님이 요즘 애용하신다는 후리즈 스마트도 하나 사고, 저단위 아스피린도 한 병 사고, 이런저런 걸 사는데 국방색 봉지하나가 확 눈을 끄네요.
아, C 레이션!!
C레이션이 뭔줄 아세요? 미군들의 야전식량이에요.
C레이션에 얽힌 추억이 있어...
전 용산구 후암동에 있던 삼광국민학교를 나왔어요.
학교 뒷문으로 나가면,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지만, 학용품보다는 불량식품 판매가 주목적인 문방구가 하나 있었어요.
우리들의 코묻은 돈을 죄다 빨아내는 주전주리 들. 온갖 불량식품은 물론 쥐포라 불러야 마땅할 마른 오징어, 그것도 세로로 반 갈라서, 우리들 주머니 사정에 딱 알맞는 사이즈로 팔았죠.
미8군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탓이었을까, 우리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게 바로 C레이션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지름이 약 5㎝? 높이는 2㎝? 정도의 국방색 캔에 담겨있어요.
이것들은 모두 균일가에 팔렸죠. 어떤 거에는 크랙커가 들어있고, 어떤 것엔 콘비프, 또 어떤 건 치즈, 다른 것엔 햄이 들어있고...
그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게 피넛버터였어요.
피넛버터는 손가락으로 찍어서 오래오래 먹을 수 있었거든요, 치즈도 비슷하지만 그때만해도 치즈를 많이 먹어보지 못해서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죠.
지금 애들같으면 조기영어교육 덕에 포장에 써있는 이름을 보고 골랐을텐데 그때만해도 영어엔 까막눈이라 운수에 맡기면서, 로또 복권 자동선택 하듯 하나 골라들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요행수 전무인 저는 맨날 크랙커 신세였고 제 친구중에서 어떤 애는 맨날 피넛버터만 뽑아들어 우리를 약올렸어요.
왜 어른들한테 영어좀 가르쳐달라고 안했나몰라요...
문득 오빠랑 둘이 각각 하나씩 사서 나눠먹던 생각이 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겉 포장에 메인디시가 써있는데 별거 다 있더라구요. 베지테리안을 위한 것, 닭고기 요리, 소고기요리, 폭찹.
전 폭찹을 하나 집어들고 왔어요.

질기디 질긴 국방색 비닐포장을 뜯어보니....
메인디시는 자메이카 스타일의 소스를 얹은 폭찹과 국수, 그리고 폭찹에 곁들이는 슬라이스 사과(여긴 파인애플 대신 사과를 곁들이는 모양이죠?),빵을 대신 하는 큼직한 크랙커와 거기에 발라먹는 봉지치즈(할라피노가 들어있는 아주 맛있는 치즈), 디저트용인 파운드 케익과 분말포도주스, 그뿐인가요? 메인디시를 데울 수 있는 봉지히터와 작은 봉지에 감싸여있는 각종 소품들...초이스커피 프림설탕 4g,소금, 물티슈, 성냥,너무나 귀여운 작은 병에 들어있는 핫소스 종이 냅킨 그리고 바둑껌 2알까지...

재미삼아 사서 맛을 보다가 문득 불쾌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많은 포장들, 그것도 썩지 않는 비닐포장들...
우리나라에서 미군들 훈련하면 이 야전식량 까먹고 포장지 아무데나 버렸을 것 아니겠어요.
이라크에서도 미군병사들은 매끼 이렇게 진수성찬을 먹고 싸웠겠죠??
그리고 물자가 부족한 이라크 아이들, 이 C레이션 얻어먹으려고 미군들 따라 다니지는 않을까요?
또 매끼, 수많은 미군들이 이걸 먹고 그 많은 쓰레기 버려서 이라크의 사막이 온통 국방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옛날 추억 생각난다고 이런저런 생각 안하고 C레이션 사들고 들어온 저라는 사람, 철들려면 아직 멀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