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만들고 5월 6월 두 달을 매달려 만들었나 봅니다.
허전하던 거실 벽에 2400mm짜리 책장을 세워놓고 나니 휑하던 거실이 꽉 찬 느낌입니다.
짬이 생기면 티비 리모컨부터 손이 갔는데 이젠 책 좀 보게 되겠지요.
저 사다리꼴은 참나무가 쓰였고 선반은 캐나다산 홍송을 썼습니다.
2년전 집을 지으려고 짐 쌀 때부터 줄곧 상자에 들어있던 책들을 이제사 꺼내놓았습니다.
예전에 꽃꽂이 배울 때 썼던 수반인데 화분 받침대로 쓰다가 부레옥잠을 올려놓으니괜찮은 거 같아요.
예전...합천 할아버지댁으로, 딸아이를 어머니가 업고 나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잘 시간이 되어 딸아이를 업고 마당으로 나서니...세 살짜리 딸아이는
-할머니 하늘에 별들이 전부 할머니집으로 놀러왔나봐...
했더랬습니다.
대구에선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는...전부 할머니 댁으로 놀러온 줄 알았던 딸아이의 시선...처럼
어느쪽을 보아도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이 반짝거리는 아파트 불빛을 보면서..저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어째 저 수많은 불빛 속에 내 것 하나 없을까...
참으로 서글프고....까마득해 보이는데도 내것 하나 없는데 그 수많은 것들을 중에 하나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런 세월들을 13년 보내고나니 제게도 내집이 생겼습니다...
빚을 좀 지긴 했지만 빚이라는 마음의 무게보다 내집이라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몇달의 공사 끝에 입주하는 첫날밤...
저는 불을 켤 수가 없었습니다.
내 집의 불빛을 보고...또 누군가가 할지도 모르는, 내 서글펐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
집이 생겨버린 저는...지금
또다른 고민과 욕심으로 하루하루를 즐거이 살아가지 못하고 아등바등 거리는 건 아닐까...
토닥토닥...방금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와 함께 잠시 돌이켜 봅니다.
저 자랑할 일이 있어요.
저의 남편은 정말 말이 없는 사람이에요. 97년 IMF때 남편이 다니던 회사(청구..)가 부도난 것도
저는 티비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거든요.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기념일이든 생일이든 ...이벤트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지 않겠어요
얼마전 남편 생일이어서 뭘해줄까 고민하다가 대구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더니 당첨이 돼서...
방송을 한 번 탔습니다.
다시보기가 저작권 때문에 되고 있지 않아 전설의 방송이 되어버렸지만요.
지방 방송이라 왠만하면 다 당첨이 됩니다. 축하할 일이나 돈이 없어 이벤트가 걱정 되시는 분들
한번 해보세요. 선물도 그렇거니와 좋은 추억이 되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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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그 푸른 나이에 당신을 만나 6년 사랑을 하고 그 사랑으로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 결혼한 지 14년.
아무런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마흔이 됐습니다.
딸도 낳고 아들도 낳고 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그저 시간이 흐르면 검은 머리 희여지며
손잡고 함께 늙어갈 줄 알았는데...
IMF라는 폭풍에 회사가 부도가 나고 당신 몸도 한 때 좋지 않아 입원까지 했더랬습니다.
건강하시던 아버님도 뇌졸중과 뇌종양으로 2년 투병하다 3년 전 돌아가시고
바로 3개월 뒤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양팔을 모두 쓰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도 갑작스레 천식으로 돌아가시고...
시련은 서로서로 손잡고 줄지어 온다지만 지난 몇년동안의 시간은
우리가 가진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와선 아버님 간병으로 또 어머니 병원생활과 지금까지...
당신은 정말 묵묵히 투정 한 번 없이 견뎌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인 나 때문에 투정 한 번 할 수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을 곁에서 지켜 본 당신은 한 그루 아름드리 나무 같았습니다.
그 그늘 안에 살 수 있는 나도...우리 아이들도...어머니도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보
사는 게 바빠 얼마 전 지나간 당신의 마흔 한번째 생일도 집 앞 마트에서 사온 케이크 하나로 떼웠지만
가만 계산해보니 6월21일은 당신이 세상에 태어난 지 15000일째 되는 날이 되더군요.
뭔가 근사한 일을 만들어주고 싶어 이렇게 방송의 힘을 빌려봅니다.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힘들었던 시간들로 인해
어쩌면 지금 우리는 많은 것들에 감사하며 만족해 할줄 알며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은 어느날 갑자기 날아드는 파랑새 같은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시간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당신의 아내여서 참 행복하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