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미세먼지에 휩싸였던 19일 일요일.
전남 구례의 오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사성암을 오른 후 이어 산동 산수유 마을까지.
뒤돌아 보니 섬진강과 구례읍이.우측은 지리산.
https://www.youtube.com/watch?v=y1uvYdW8MSk
멘델스죤,무언가
우측 멀리 지리산~
맑은 날이면 노고단,반야봉,정상인 천왕봉까지 조망되는데 아쉽네요.
매천사는 매천 황현(黃玹,1855~1910)을 모시는 사당.
매천야록(梅泉野錄) 아시죠?
1864년 대원군 집권 때 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조선 망국사를 정사 보다 더 실감나게 서술한 비사(祕史).
야사로 구한말 역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
대원군이 잠저 시절 비렁뱅이로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는 얘기등도 매천야록이 그 출처입니다.
황희 정승의 후손인 매천은 생원시에서 장원했으나 시대의 부패상을 꺼려 낙향, 이곳 구례서 은둔하며 매천야록을 썼습니다.
3명의 자식을 앉혀 놓고 절명시,유언을 남기고는 아편을 마시고 자결했네요.
....가을등 아래 책 덮고 옛 일 생각하니 세상 글하는 이 참으로 어렵구나....<절명시 일부>
서쪽을 보니 곡성 압록에서 흘러온 섬진강 자락이 보이고
사성암 뒷 능선을 탄 후 저 다리쪽으로 하산 예정.
1시간 만에 사성암 도착~~
20미터 벼랑에 기둥을 세우고 전각을 올렸네요.
기둥 세개가 전각 전체를 받치고 있고.
비슷한 건축물로는 금강산 보덕암이 유명합니다.
왼쪽이 약사전,우측이 대웅전~~
대웅전이 벼랑에 매달려 있네요.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약사전에 대웅전,요사채 등등 모든 전각들이 바위와 하나 되어 고운 자태를 뽐내죠.
사성암(四聖庵)은 나름 연륜이 깊어요.
백제 성왕 22년(544년)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화엄사 창건 이듬해 건립했으니까요.
본사 화엄사에 딸린 부속 암자 성격이였나 봅니다.이곳 사성암서 보면 화엄사가 지척으로 보이죠.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네명이 수도한 곳이기에 四聖庵이라.
대웅전 내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약사여래입상(사진)을 주불로 삼고 있네요.
20여 미터 벼랑에 마애불을 새긴 후 후대에 기둥을 세우고 전각을 만들었겠죠.
대웅전 오르는 길~~
뭐하는 거지??
지폐에 서원을 실어 담쟁이 덩굴에 묶고 있네요.
대웅전 지나 약사전,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로 향합니다.
대웅전 팔작지붕이 보이고~~
공양간,요사채서 바라보는 전망도 일품입니다.
약사전 앞 800년 된 노거수~~
산사 정면으로 대나무를 심어 방풍했네요.
이리 전망이 좋으니 삶의 거처,수도처로 인기있었겠죠.
여기서 멀지 않은 순천 송광사 6세 조사인 원감국사 문집에는 이리~~~
"사성암이 있는 오산(獒山) 정상에 참선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진각국사가 연좌수도 했던 곳이다"
사성암을 벗어나 등산로에 들어서니 생강나무가 반기고~
잔설이 여전한 겨울 산에서 가장 먼저 볼수 있는 봄 꽃나무는??
바로 생강나무입니다.
잎파리는 하트 모양에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어 그렇게 매력적일수 가 없어요.
잎들이 다 져가는 늦가을에 깊은 계곡 변에 모노톤으로 노랗게 물든 하트들을 보노라면...
언제부턴지 가장 애정하는 꽃나무가 되었습니다.
향기도 그렇게 진할수가 없어요.쟈스민 향 비슷.
그러나 줄기를 꺽어 코에 대면 대반전이,,,생강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죠.
여하튼 삭막한 회색 겨울산에 가장 먼저 생기를 북돋우는 선구자입니다.
오산 정상~~
530m 평범한 흙산이지만 사성암 덕분에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그런데 한자로 '獒山'이네요.
'개의 산'이라니???
산 형상이 개를 닮아서나요?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 봐도 개산은 없는 거 같은데.
아,생각이 나네요.'오수(獒樹)의 개' 아시죠?
불이 난 것을 모르고 잠든 주인을 구했다는 그 개.
고려 시대 문인 최자(崔滋)가 1230년에 쓴 보한집(補閑集)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곳 구례구역서 전라선을 타고 북행하면 곡성,남원 지나 오수역(임실군)이 나옵니다.
오수는 그 '오수의 개' 진원지죠.
그 오수와 가까워서 그런가?,,,하고 상상해 봅니다.
정상서 동쪽(지리산)으로 시선을 돌리니~~
뭔가 순간 머리를 딱 때리네요.
일대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남한 땅에서 3대 길지라는 곳입니다.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도 조선에서 몇 안되는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았죠.
마을 앞으로 섬진강 따라 19번 국도가 지나는데 남원~구례~(매화마을)~하동 지나 남해서 바다로 빠집니다.
'길지 오프 길지'라는 이곳 토지면 오미리~~
그러나 19번 국도를 타고 차창에 비치는 오미리는 전혀 길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리 멀리 정상에 서서 전체를 조망하니 느낌이 확 다르네요.
전문적인 풍수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가 오는.
뒤로는 듬직한 지리산 자락이 버티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앞으로는 오봉산이, 그 뒤로는 오산이 책상같이 편한 안산(案山) 되어 한겨울 서북풍을 막아줍니다.
수수만년 지리산과 섬진강은 충적평야를 낳았고 주민들은 이를 구만들(九萬坪),종자뜰이라 불렀습니다.
저런 곳을 힘있는 사대부들이 그냥 놔둘리가요.
무관 유이주(柳爾胄,인근 순천 낙안읍성 군수도 역임도)는 18세기 중엽 오미리에서도 가장 길지에 자신의 거처를 삼았습니다.
그 중 지금은 사랑채(중요 민속자료 제8호)만 남았지만 건축학적으로 한목하는 고택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채 택호가 바로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사는 집,운조루(雲鳥樓).
이곳은 행정구역상 토지(土旨)면이지만 예전엔 吐指였네요.
어! 손가락을 토해낸다라니,,?
여인이 손가락에 낀 가락지를 뻰다는 뜻입니다.
여인에 있어 가락지는 생산의 상징으로 지아비와 사랑을 나누고 출산할 때만 뺀다죠.
결국 일대는 문전옥답을 상징합니다.
운조루는 '금가락지가 떨어진 모양'인 그 금환낙지(金環落地) 터에 들어섰고.
양지바른 무덤가에 할미꽃이~~
무덤가에 할미꽃이 유독 많은 이유는??
할미꽃은 석회성분을 좋아하는데 무덤을 쓰면서 응고제로 석회를 써서죠.양지이기도 하고.
솜방망이~
꽃대가 방망이 처럼 생겼고 잔털이 많이 나 있어서.
제비꽃~~
제비꽃은 수십 가지죠.
멀리 사성암이 보이네요.
우측 능선을 따라 왔고.
사성암까지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길이 닦여져 일반인들은 주로 셔틀버스를 이용합니다.
(구례 가시면 셔틀 타시고 가보시길...후회 안하실듯)
양지 바른 곳에 진달래 한구루가 꽃을 피웠네요.
마을과 맞닿은 산록엔 매화가 만개~~
폐농가~
울타리는 대나무와 탱자나무로 촘촘히
다 내려왔네요.
멀리 구례읍.
차로 20분 거리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로 이동합니다.
구례군 산동 마을입니다
공자의 고향 태산 곡부 그 산동(山東)입니다.
당나라 때 황소의 난(?) 등 전란을 피해 황해를 넘어 한반도로 들어왔는데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이 이곳 지리산 서사면.
그때 산수유 나무를 가져왔다네요.
이땅에는 산동 지명이 몇 있는데 그와 연관이 있다고들 합니다..
수십년 된 고목들~~
지금은 폐가가 되었지만 원래는 집 울타리나 관상용 식용으로 심어진 것들입니다.
미적인 면에서 매화와 산수유의 공통점 하나~~
둘다 고목에서 폈을 때 더욱 멋스럽다는.
매화는 분재로도 좋지만 고목에 다닥다닥 붙는 멋엔 따를수 없죠.
산수유는 그 대비가 더욱 선명합니다.
작은 묘목에서 핀 산수유 꽃이란 안본만도 못해요.
산수유는 가지마다 집단으로 무리지어 피었을 때 비로서 꽃이 되듯이
큰 고목을 뒤덮은 꽃들은 자체로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그것이 됩니다.
둘레가 1미터가 넘는 고목임에도 여전히 맨 아랫 줄기에 노란꽃을 틔웁니다
옛사람들은 떠나고 산수유 고목과 돌담만 남았네요.
봄날 산수유 마을이 가장 멋질 때는???
저 지리산 자락에 때 아닌 춘설이 내렸을 때.
그 때는 노란 산수유와 흰눈이 대비되어 가히 환상됩니다.
아래와 같이(2010년,가져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