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는 광활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던, 인도의 부유한 명문 집안 출신 시인이었다.
가문 소유의 드넓은 영지 한가운데로는 강이 흘렀고, 그 주위에는 울창한 아열대의 숲
으로 둘러싸인 더없이 고요하고 자연의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시인 타고르는 지붕이 있는 작은 나룻배를 타고 몇 달씩 이 아름다운 강가에 머물러
‘영원한 것과 덧없는 것’ 사이에서 번민하는 생을 관조하며 지내곤 했다.
또한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유한한 것으로부터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기에 <무한자無限者>만이 ‘영원한 행복’을 준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배에 머문 채 강 위에서 경치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여덟 시간 동안을 명상에
잠긴 적도 있었다.
어느 보름달이 밝은 밤,
타고르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나룻배 안에 앉아 촛불을 켜 놓고, 이탈리아 철학자인
크로체가 쓴 유명한 <미학>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크로체는 <미학>에 대해
대표적인 저서를 남긴 철학자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면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양한 각도에서 ‘미美가 무엇인가?’를 사색하는데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타고르 역시 <미학>의 숭배자로서 아름다운 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도
한 편의 시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미학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며, 그의
예술세계는 더욱 깊어져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심원한 사상에 이르렀다.
깊은 밤 보름달이 환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때 타고르는 크로체의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에 피곤해져서 책을 덮고 촛불을 껐다. 시인은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배 안의 작은 촛불이 사라지는 순간, 나룻배의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춤추듯이
흘러 들어왔다. 은은한 달빛이 나룻배 안을 가득 채운 것이다!
한 순간 타고르는 말문을 잊고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한 ‘체험’
이었다. 그가 밖으로 걸어 나와 뱃전에 섰을 때 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는
정적에 감싸인 밤, 검은 숲 위에 떠 있는 보름달과 강을 바라보았다.
주위는 침묵 속에 은빛 아름다움으로 가득했고, 강물조차 이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듯
숨을 죽이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타고르는 그 날 밤 <일기>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 채 책 속
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켜놓은 작은 촛불이 그
아름다움을 가로막은 것처럼 보였다. 연약한 촛불의 ‘빛’이 거대한 달빛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와 같은 문명의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홀리어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던가. 자기 본래의 <미美>에 대해서는 눈가림된 채
타인의 ‘가공된 미’에 쏠려있는 관심과 그 시선은 또 어떤가.
현대인들은 갈수록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에 현혹돼 정작 자연이 주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외면하거나 점점 덧칠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글>은 무명씨의 ‘퍼온 글’을 전체적으로 대폭 삭제하고, 다시 내용을 적절하게
보충해 새롭게 쓰고 사진을 첨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전에 절판된 이 책 111쪽~112쪽에 타고르가 쓴 그날 밤의 체험이 실려 있습니다.
『........ 밤이 꽤 깊었다. 나는 책을 탁 덮고는 탁자 위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려고 등불을 불어 껐다. 그 순간 열린 창문을 통해 달빛이 충격을 받고 놀란 듯이
몰려 들어왔다. ................ 정말이지 공허하고 장황한 말이 담겨 있는 책 속에서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하늘을 채우고 밖에서 고요하게 지금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만약 덧문을 내리고 잠자리에 들었더라면 이 광경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정음사 판> 타고르 전집 제6권: 《인간의 종교》《생의 실현》등을 수록, 1974년 발행
<원글>에 타고르가 <미학>의 숭배자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책 안에는 타고르의 예술철학,
종교철학, 인생론 등 주로 시인의 사상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가득 담겨 있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미의 표현은 무한을 향하는 선과 사랑 속에서 움직인다. 이것이
우리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니 우리는 ‘아름다움은 참됨이요, 참됨은 아름다움
이다.’ 라는 것을 항상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를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세계는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유지되며, 사랑의 품에 안기어 있기 때문이다.』
《생의 실현》에서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인도의 시인‧사상가‧교육자로 1913년 종교시집 《기탄잘리》로 동양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 영국의 식민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이끌었던
간디와 함께 인도의 위대한 아들입니다.
<원글>에 나오는 크로체의 『미학 논문』입니다. 이 책 역시 오래 전에 절판된 것으로
원래 제1부 <미학 이론>과 제2부 <미학사>로 나누어진 것인데, 국내에서는 제1부인
<미학 이론>만 번역‧출간되었네요.
『예술적 직관에 관한 학문은 일상적 직관에 관한 학문과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학도
하나이며, 그것은 직관적‧표현적 지식에 관한 학문을 의미한다. 직관적‧표현적 지식이
곧 미적인 것이며 예술적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지성적 지식과 직관적 지식의 극치, 저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그들의 최고 수준의 현현은 예술과 학문(science)이라 통칭된다. 예술과 학문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또한 상호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접점은 미적
인 측면이다. 모든 학문적 저작은 동시에 예술작품이다. 』
《크로체의 미학》에서 ―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 이탈리아의 철학자, 역사가, 휴머니스트
도덕과 용기로 독재정권에 도전하고, 패전으로 타락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현대 이탈리아의 정신적 지주였다.
학창시절 대학에 환멸을 느낀 그는 엄격한 자기훈련을 거쳐 역사학의 위대한 <독학생>이 되었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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