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에 간 이후로 제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을 정해놓고 실천하는 중입니다.
한 가지는 평소에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아들을 위해서 매일 제가 일상에서 읽고 있는 책 이야기,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편지를 쓴 다음 (손글씨가 갈수록 서툴러져서 ) 프린트해서 보내는 것
- 훈련소를 나선 다음에는 인터넷으로 쓰는 800자 글쓰기가 불가능하게 되어서요..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아들이 군대에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고생하고 있는 것에 동참해서 제가 늘 조절에 실패하고 있는
식탐을 줄이는 것, 이렇게 정해놓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한정된 시간에 두 가지
일에 주목하다 보니 역시 다른 글쓰기는 여력이 생기기 않더라고요.
어제는 사기 열전 읽는 월요일, 마침 그 날의 진도가 노자, 한비 열전이라서 한비자를 읽는 김에 마키아벨리에
관한 글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의 제 상황과 관련해서 (물론 마키아벨리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충성심이 두 곳으로 갈라져서는 곤란하다는 예를 들어 놓았던 것에 눈길이 갔습니다.
마침 전,의경 훈련소에서의 기간이 8일까지, 그렇다면 월요일 이후에 부치는 편지는 못 받을 수 있겠다 싶으니
슬그머니 꾀가 나서 그렇다면 정식으로 앞으로 있을 소재지가 정해지고 연락이 올 때까지는 일단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중단하고 보고 싶은 그림도 보고 조금은 헐렁하게 시간을 보낸 다음 충전해서 글쓰기를 지속해보아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물론 보통의 상황에서라면 이런 글을 흔쾌히 읽기 어렵겠지요? 저도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장문의 글을
매일 써서 보내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고, 아들도 읽을 리도 없을 것 같고요. 군대라는 특수 상황에서 발생한
인터넷 편지쓰기, 엄마 아들에게 무슨 책 이야기, 공부한 이야기만 잔뜩 써서 보내는 엄마가 있어? 그렇게 말해도
매일 보내주는 편지가 군대 생활에 힘이 된다는 말을 여러차례 하길래 면회가서 말을 했지요. 그렇다고 엄마가
매일 편지에 건간하게 잘 있니? 엄마도 잘 있어 이런 맹숭맹숭한 글만 쓸 수 없지 않니? 그것이 매일의 엄마
일과라서 그냥 쓰는 것이니 적당히 읽기 바란다고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알았다고 하네요.
보람이가 제게 철학책추천을 부탁했던 일이 승태에게도 일종의 신선한 바람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무식을 절감하게 된 것, 그래서 무엇인가 제대로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고 , 대학에서 많이 공부한 것 같았는데 그 때만 해도
대학원 갈 것을 생각도 못하고 과목 선정해서 들었지만 막상 대학원에 가려고 하니 수강을 못 한 과목이 있어서
원하는 곳에 가기 어렵다고 느낀다는 그런 심경을 어제 여행에서 돌아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하더라고요.
그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그 안에서 빠져 나와야 보이고, 그 일을 이미 겪은 사람들이 말해도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다 패스하고 마는 이야기들, 보람이와 앞으로 독일로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중인
정민이, 그리고 저 셋이서 월요일 아침 수업하기 전에 잠깐 만난 자리에서 두 아이는 같은 경영학 전공이라서
서로 통하는 것이 많은지 대학원 준비에 필요한 시험 이야기, 어느 나라로 가는 것이 좋은지, 자신은 학부 마치고
바로 가는 것이지만 언니는 3년 일하고 가는 것이고 방향이 다른 것을 알아서 그런지 미리 조사한 내용을
상세히 가르쳐주고 적어주기도 하고, 오히려 선배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재미있었습니다,.
두 아이의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이제 이 아이들은 내가 모르는 세계로 점점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고맙기도 부럽기도 안쓰럽기도 한 묘한 감정에 휘말리던 시간이 생각나는군요.
월요일, 한동안 쉬던 불어를 다시 시작한 날입니다. 지난 월요일 점심을 함께 먹자고 여의도에서 일부러 오겠다는
권희자씨에게 그렇다면 이왕 오는 김에 사기열전 강의를 듣고 점심 먹자고 권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만 하더니
역시 수업을 듣고는 계속 오고 싶다고, 이왕 오는 김에 불어를 다시 하자고 하네요. 스페인어도 조금씩이라도 하자고요
마침 보람이가 프랑스에서 사들고 온 책이 어린이용 미술사 책이라 어제 라스코 동굴 벽화에 대한 2페이지
글을 읽었습니다.
그녀와 지난 월요일에 만난 자리에서 내년의 그리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다면 카카오 톡에 그리스
여행 방을 하나 만들어서 어디 가고 싶은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여러가지 소식을 나누기로 했고 그 날 바로
방이 만들어졌지요.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만든 방에 온 하이썬님이 그렇다면 카카오 톡에서가 아니라
차라리 밴드를 만들자 하더니 바로 뚝딱 그리스 여행팀 밴드가 만들어져서 신속함에 놀라고 있는 중에
어제 불어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강력한 한 사람의 힘에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불어 공부를 넣어두고 있었다는지영씨, 그녀는 왕초보라고 일단 사양했지만 어제
함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무모하게 불어 공부 시작하던 오래 전의 제가 생각나서 최대한 도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력이 모자란 사람일수록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더 이해하는 법이니까요.
어느 날 선배의 권유로 충동적으로 산 히브리어 기초 , 일주일 정도 공부하다가 미루어 둔 그 책을 다시
꺼낼 기회가 생긴 것도 역시 권희자씨와 여행에서 최소한 간판이라도 읽을 수 있게 공부해보자 함께 이렇게
권해서 좋다는 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혼자서 무엇을 끈기있게 못한다고 자신을 구박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거꾸로 같은 목적으로 이 언어를 읽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맙다,이렇게 시도할 수 있는
내 자신이 기특하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