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향이 진한 오월 아무 날
어딜 다녀 가시는지 오늘따라 등구할매 걸음걸이가 힘들어보인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밭에 왔다갔다하실 때
지게도 지고 때론 제법 큰 나무등걸도 땔감한다고 끌고 다니셨는데
어디가 불편하신지 걸음걸이가 다르다.
얼핏보니 앞가슴에 뭘 가득 보듬고 내려가시는데
걸음이 왜이리 느리신지...
등구할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더라?
마당일 하다가 곶감 한봉지 들고 따라 내려가보니....
할머니가 가슴에 가득 보듬고 내려간 것은 뽕잎 순이다.
< 뽕니파리가 참으로 몸에 좋은기라~~
내가 삶아서 먹기좋게 해가지고 갖다 줄테니까 한번 먹어보소~~>
< 아이고 아닙니더~~ 저도 뽕닢이랑 다래 순이랑 묵나물 많이 만들어 났심더~~>
뽕잎이 손톱자라듯 조금씩 보이던게 엊그저께 같은데
한여름 날씨처럼 갑자기 더워진 요 며칠새
이파리들이 아기 손바닥처럼 넓어졌다.
며칠새 엄천골짝은 나물천지로 변해 할머니 나물보따리엔
뽕잎외 다래순이랑 취나물이 가득 가득이고,
말동무가 생겨 신이난 할머니 이야기 보따리엔
엄천골로 시집오기 전 등구마을에 살 때 산사람(빨치산)에게
양식 빼앗긴 드라마와 옛날 옛적 영감님 살아계실 때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재밌었던 시트콤이랑 지금은 모두 도시로 나간 자식들 이야기로 넘쳐난다.
오늘은 첨듣는 시트콤이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할머니의 스토리텔링에 심취해있는데 방해꾼이 생겼다.
방해꾼은 바로 이녀석. 가엽슨 장닭 을이다.
이녀석은 닭장안에 있는 장닭 갑이랑 허구헌날 싸움질을 해대다가
닭장밖으로 격리수용 당했다는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분하여
시도 때도 없이 목청을 높인다한다.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이 녀석이 한번 꼬끼요하면
할머니도 잠시 말을 멈추신다.
대화 중에 머리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게다가 이넘은 승질도 보통이 아닌지 할머니 엉덩이까지 쪼아대는 행패를 부린다고...
물론 장닭 을이 악의가 있어 그러는거는 아닐것이다.
그렇다고 닭장안에서 세마리의 암닭을 거느리고 있는 장닭 갑의 잘못도 아니다.
작년 봄 면사무소에서 토종병아리 분양 보조사업이 있을 때
할머니는 수평아리 하나 암병아리 넷을 신청하셨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암병아리 하나가 장닭으로 자라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한우리에 장닭 하나 암닭 넷도 장닭으로서는 불만인데
장닭 둘에 암닭 셋이라니...
장닭 하나에 암닭 평균 일쩜 오마리씩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장닭 을의 방해가 만만찮았지만
등구할매 이야기보따리는 넘치고 넘쳐서
미처 다 주워 담지 못할 정도였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