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들었지만 실제로는 읽기 어렵거나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지요. 실제로 제게도
고전 자체를 읽는 일은 전공이었던 영문학 작품이 아닌 경우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마음먹고
개설한 금요일 밤의 행복한 고전읽기 덕분에 (함께 하자고 권유해놓고 나몰라라 빈 손으로 참석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 자신이 놀랄 정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중해와의 인연은 상당히 오래 되었군요.
세계사라는 과목을 배우던 최초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발음도 어려운 지중해 (영어 발음중 이 바다가 특히
어렵다고 느꼈거든요,어린 시절에 ) 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왜 였을까 지금은 고개 갸웃거리면서 생각하지만
아마 신화의 고장이라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니까요. 그리스인들이
이룩한 한 시기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매료되었을 것같군요.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왜 가능했까 궁금해서 찾아보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었던 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에 관한 좋은 책들이 번역되기 시작하고
철학에 대한 관심,그리스 비극에 대한 관심,그리스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합해져서 거의 폭발적으로 그리스에
관한 글들을 읽고 있는 저를 발견했지요. 마치현재와 그 시대를 함께 품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도 이질감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 비극작가 3명의 이야기를 거치고, 드디어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날, 문제는 수없이 나오는 인명, 지명의 숲을 거쳐서 이야기의 핵심으로 어떻게
파고 드는가였습니다. 앞의 이야기들이 문학작품이어서 함께 책을 읽는 멤버들에게 거부감이 없었다면 이렇게
긴 호흡의 역사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원전을 풀어서
소개하는 글 말고 제대로 원전을 읽자는 원래의 취지에 따라서 선택한 책이고 이번에는 동영상 보는 것도
보류하고 3번에 걸쳐서 책을 읽어보자고 했으니 조금은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지요.
시간이 되자 모여든 사람들, 그런데 오늘은 그동안 함께 한
미숙씨가 교리 신학원에 가게 된 사정으로 앞으로 참석이 어렵다고 그래도 마무리하는 인사를 하러 오겠다고 했는데
떠나는 사람이 정성껏 과일을 준비해와서 놀랐습니다. 순서가 거꾸로 된 것 아니야? 우리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과일에 손에 가더라고요. 그녀가 신학원에서 배우는 과목중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도 포함된다고 하니
그 때만이라도 참석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일단 지명을 익숙하게 할 수 있게 지도를 여러
편 복사해서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리곤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자 해설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이 전쟁의 진행상황을
알아본 다음 본문에 들어갔지만 역시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개요를 짚어 가면서 설명하다 보니 시간이 한없이
흐르네요. 결국 마음 먹었던 부분까지 다 못끝내고 다음 번에는 각자 조금씩 발제를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나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 남북한의 문제를 해결하는 장에 나서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하고요. 맞습니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던 이유는 이 책안에서 동맹국 끼리의 토의 장에서 사람들이 하는 연설의 수사법, 설득력을 갖는 말의파장
분쟁 당사국 끼리의 감정적인 싸움,그것이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시작한 것이 거대한 전쟁으로 나라들을
말려들게 하는 점, 지도자가 누군가에 따라서 확 바뀌는 전략, 긴장 상황에서 사람들의 감정이 과잉상태가 되면
얼마나 손쉽게 질서는 무너질 수 있는가, 여러가지 것들이 얽히고 설켜서 이 책을 단순히 전쟁사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전쟁사 강의를 들었던 것도 이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리스 중장 보병의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전쟁의 양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니 글이 살아움직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앞으로 두 번 더 읽고 나면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게 되겠지요? 이런 상황속에서도 아테네에서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했구나 싶으니 당시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비극작가의 작품중에서 아직 손대지 못하고 미루어둔 작품들도 궁금해지네요.
지금 당장 손댈수 없어도 이렇게 궁금한 마음은 언젠가 길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니
조금은 거리를 두고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심리 상태 한 가지,개인적으로 아테네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보니 이 책을
객관적으로 읽기 어려웠단 점입니다. 아무래도 아테네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그래서 공정하게 읽지 못하고
혼자서 마음속으로 흥분하거나 안타까워 하거나 이러면서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보면서 피식 웃게 됩니다.
저만 그런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