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재 가 있던 우물
분주한 여름볕도 잠시 풀무질을 멈추고
노닐다 가는 산자락 외딴집에 산골짜기물이
흘러들어 고이는 작은 돌우물이 있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목욕을 하며
자꾸자꾸 퍼올려도 아침마다 우물은 순정한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쩌다 억수 같은
장맛비가 밤새 숲을 핥으며 온 산을 울리고 난
아침이면 우물도 부연 눈물을 흘리며 질펀하게
넘쳐흐르곤 했다. 그런 날은 우물을 쳤다.
바닥이 보일 때쯤이면 퍼올린 물속에 그이쁜 놈
가재가 있었다. 딸아이는 좋아라 박수를 치고
세숫대야에서 발발대는 가재를 손끝으로
건드리며,하늘로 하늘로 파아란 웃음을 날렸다.
우물가 언덕배기 주저리를 이루던 달개비꽃도
덩달아 비눗방울을 날리고,따라온 발바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 꼬리를 흔들어댔다.
손때 반지르한 나무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에 산바람을 타서 마시노라면 우물은
다시 마알간 행복으로 고여들었다.
가재가 있던 우물엔 햇빛보다 짠한
낮달이 있었다.
---------- 장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