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보냈던 여섯번째 날 ,그 곳에서의 가장 좋았던
11코스 올레길을 걸었습니다.걸으면서 다양한 풍광을 만나고
영미씨,미숙씨랑 한층 깊어지고 때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농담도 하면서 걸었던 길,이 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올레를 걷는 일의 진짜 맛은 몰랐겠다,다시 오면 늘 이 곳은
다시 걷고 싶다,그런데 혼자로는 조금 쓸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길에
관한 이야기,서귀포 시내로 돌아와서 세섬갈비에서 현주씨를
만나서 저녁를 함께 하고,던킨 도너츠에 들러 커피한잔
하면서 카메라를 돌려보며 사진평을 하던 이야기
덕분에 사진을 다시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생긴
이야기까지 장편소설 쓰듯이 그 날하루를 정리했는데
글이 날라가버렸지요.
앗,이런 그래도 그 긴 글을 다시 쓴다는 것은 도대체
어려운 일이어서 마음속으로 11코스를 담아놓고
마지막 날,세화의 집 식구들과 인사를 한 다음
가방을 공항 수하물 센터에 맡기러 갔습니다.
가는 길의 버스속에서 갑자기 창밖에 내리는 눈을 만났습니다.
새벽에 가느다란 눈발을 보긴 했지만 그렇게 갑자기
내리는 눈을 보니 오늘은 올레길을 걷지 않고 제주시에서
문예회관,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한 것이 잘 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걷느라 즐거웠지만 피곤이 누적된 탓인지
아니면 더 이상 걷지 않아서 그런지 갑자기 피로가 밀려오고
눈을 뜨기가 어렵습니다.공항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문예회관에 갔습니다.
처음 전시장에서는 택시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 잘 한 일인가
그런 후회가 들 만큼 전시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마음이 복잡하네요.
돌아서 나오는 길,앞쪽 전시장에 바람의 향기란 제목의
화가 부상철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6일동안 제주도에서 본 풍광들,그리고 화가 개인의 가족사가
그림안에 오롯이 들어있더군요.
그 안을 여러번 둘러보게 만든 것은 아마도 이미 마음속에
들어온 풍광을 색으로 재현한 것에 끌려서겠지요?
특히 소나무와 바람을 표현한 그림,아침에 일하는 여성을
배치하고 앞에는 햇빛이 비쳐서 아름다운 돌담을 그린
그림앞에서는 떠나기가 어려울 정도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마침 현장에 있던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상당히 솔직하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팜플랫도
일부러 가져다주고,자연사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하니
어떻게 가면 되는지 설명을 해주기도 하네요.
이 전시로 앞 전시에서의 실망감을 덜 수 있었습니다.

자연사박물관에 가는 길,진눈깨비가 비가 되어가고 있네요.
지나는 길에 삼성혈표시가 나옵니다.
그런데 하루밖에 없는 시간,제주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다 보자는 것은 욕심이다,가려고 하는 곳,자연사박물관과
제주 국립박물관의 전시에나 충실하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자연사박물관의 바깥 전시에서는 제주도의 다양한 돌을
구경할 수 있었고,안에서 육지에서 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의
자료와 다른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돌아보면서
마침 영상자료로 나온 영등 굿에 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제주도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마침 특별전시실에서는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제주도 풍광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부상철개인전에서 조금 미흡하게 생각하던 바다를 묘사하는
것이 사진에서는 오히려 더 잘 표현될 수 있구나
앞으로 사진의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요.
자연사박물관에서의 압권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만장굴을 비롯한 굴의 형성과정을 재현한 것이었는데요
제겐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자연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날이기도 하고요.

마지막날의 압권은 역시 제주국립박물관이었습니다.
마침 그 곳으로 떠나기전 읽었던 제주역사기행이 아주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요,책에서 읽은 내용을 그 곳에서
실제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옥의 티라면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하면 박물관에 있는
직원들이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더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불러다드릴까요?
이렇게까지 하기가 그 사람들도 곤란할 것 같아서 거절을
했지만 직업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새로 생긴 국립박물관이라 그런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알찬 전시로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게 해주었지요.
마지막으로 신라,서아시아를 만나다는 제목의 (제목은
정확한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전시장에 갔는데
혹시 서울 국립박물관에서 만난 페르시아 특별전인가
했더니 그것은 아니고 일본의 미호미술관,어떤 시의
오리엔트 미술관 (도쿄도 아니고 지방시에서 오리엔트관이
있다니 입이 떡 벌어지고 공연히 질투가 나기도 하더군요.
전시를 보는 내내)그리고 다른 오리엔트 미술관
세 곳에서 빌린 유물과 신라의 유물로 이루어진 전시였는데요
성의껏 준비한 것이 느껴지는 좋은 전시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서울전시와 더불어 두 전시를 통해
실크로드의 초원로와 오아시스로를 거쳐서 서로 교류한 문화를
만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택시기사분이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려고
제주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바람에 용두암을 끼고
돌아가는 길,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이번 올레여행은 끝났지만
내년에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이 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