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페라에 가는 일때문에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감기증상에 신경을 썼더니 아침,말끔한 몸으로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은 정말 정직하게 반응을 하는구나,앞으로는 밤시간의
즐거운 놀이를 (이렇게 말하니 조금 이상한가요?
마치 어디로 놀러다니는 뉘앙스가 풍기는?) 한 두 시간 줄이고
아침에 조금 더 산뜻하게 일어나서 그 시간을 제대로 써보자는
다짐을 하는 중이지만 사실 완전히 말짱해지면 어떻게
변할지 그건 장담하기 어렵겠지요?
우선 어제 마음에 남았던 광란의 아리아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

유리창너머로 보는 빛이 좋아서 고른 오늘의 화가는
르노와르입니다.

사실 노래의 분위기로 보면 더 격렬한 색감과 마음의 표출을
보여주는 낭만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손이 갈 것 같은 시간이지만
어제도 오늘도 opposites attract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서로 다른 것이 끌어당긴다고 할까요?

이 작품의 제목이 torso,sunlight effect로군요.
소녀의 몸위로 떨어지는 빛,그것으로 인해 몸은 몸이로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몸이 아닌 빛의 전시장이 된
그런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르노와르는 어느 글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자신에게
약으로 작용한다고 했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시가 자신에게 약상자란 의미의 이야기를
한 제비꽃님이 생각났습니다.
내게 있어서 약상자는 무엇일까,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약상자는 무엇일까,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약상자 역할을 하는 것을 알면 더 그 사람이 잘 보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제 도서관의 박혜정씨가 빌려준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국내 소수민족인 모쒀족 출신인 양얼처나무라는 여성의
인생이야기인데요,우리가 역사속에서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계사회가 실존하고 있더군요.
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책읽기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읽던 신문에서는 미국대학의 기숙사에서
혼성 룸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또 읽었습니다.
이것도 제겐 놀랍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기사였지요.
대학내부에서 이것이 성의 문란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 무성하지만 막상 혼성룸에서 지내고 있는 당사자들은
무덤덤한 반응이라고 하네요.

기숙사의 경우 남녀가 같은 건물에 기거하게 된 것이
커다란 변화였는데 지금 다시 같은 방을 쓰는 추세가 늘어나는
것이 두 번째의 큰 변화이고,이것은 사회의 시각변화에 따른
현상이라고 그 기사는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어제 목요일 수업중에
이야기하던 문제가 떠오르네요.
임신한 엄마가 뱃속의 아이가 치명적인 질병을 안고 있다는
문제를 알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마침 저도 그 전에 본 일본 드라마 신이시여 조금만 더에서
HIV양성 판정을 받은 임산부가 아이를 갖고 키우고자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어서
이 문제와 더불어 이야기를 했거든요.
아이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다고 그 아이가 불행하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는가,보통 사람들도 인생자체를 제대로
살려면 자기를 찢고 나오는 과정을 거치는 것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었고,내겐 참 어려운 결정이지만 내 아이가
그런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면 찬성하기 어렵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어떤가,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럿이 모인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만나고
충돌하기도 하고,그것에 비추어 나를 다시 보기도 하게 하는
참 소중한 시간이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새롭다,낯설다,혹은 충격적이다는 느낌을 받는 책을
제게 권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요.

어느 하늘아래 사는지도 모르던 사람을 인터넷을 통해서
만나고,지금은 거의 매주 함께 음악회에 가게 된 캘리님
그 귀한 인연에 대해서도 광란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차려가고 있던 밥상에 덥썩 달려들어 제가 얻고
있는 기쁨에 대해서도요.
마음속에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이 언젠가 무엇과 혹은
누군가와 부딪혀 새로운 문을 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