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이라고 쓰고 보니 사실은 오전이 다 지나고
벌써 열두시가 되어 가는군요.
어제 밤 너무 늦게 잔 바람에 늦게 일어나고
이제야 늦은 아침을 먹고 이렇게 하루가 늦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늦게 잔 날 밤 일찍 일어나면
하루의 몸상태가 완전히 허물어져서 그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게 되니
한 손에 두가지 떡을 다 쥐고 살 수야 없느 노릇 아닌가
마음을 추스립니다.
오후 수업을 하러 나가기 전
요즘 보고 있는 도록을 들추다가 만난 샤르댕의 그림이
궁금해서 몇 점 보고 나가고 싶어지네요.

미술사적인 분류로는 로코코 시대의 화가라고 되어있지만
보통의 로코코와는 다른 깊은 맛이 느껴지는 화가입니다.
정물화로 이렇게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니 하면서
처음 그의 작품을 만나고 놀라던 생각이 나네요.
그 이후 정물화에 맛을 들이게 되는 계기를 준 화가중의
한 명이 바로 샤르댕입니다.

제게 포장지를 뜯지도 않은 채로 이 도록을 빌려주신
분은 모르실 겁니다.그 한 권의 책으로 얼마나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요.
마침 메트로폴리탄에 접속을 해보니
그 곳에서 샤르댕 특별전을 한 기록이 나오고
그 당시의 그림중에서 여러 점을 소개해 놓고 있네요.

네덜란드가 황금기를 자랑하던 시기의 정물화들과는 다른
그런 맛이 느껴지는군요.
그 시기의 정물화는 순수 정물화라기보단 정물을 이용한
베니타스,즉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라는 일종의 교훈적인
성격이 있는 그림들이었지요.
그것에 반해서 샤르댕의 그림은 정물 그 자체가 주인이 되는
상당히 달라진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정물화만 그린 것은 아니지요.

이 작품에는 예술의 속성과 그것이 주는 보상이란 제목이
붙어 있네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주로 수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일상을 넘어서는 경험(그렇다고 일상이 늘
진부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을 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게
보통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그런 초월의 경험이
살아가는 일에서 주는 깊은 에너지가 있어서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보고 듣고 읽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제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차를 타는 저 여인을 보니 저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이제는 일어나야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