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늘 그 길을 다니면서도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보지 못한 상점 ACTUS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활용품의 디자인이 너무 깔끔하고 맘에 들어서
여행길에 난생 처음으로 컵을 샀습니다.
집에서 쓸 컵 두 개하고 선물하고 싶은 것을 꾸려서 사고 나니
아주 멋진 가방에 넣어주네요.
보람이는 그 가방을 그냥 들고 다녀도 좋겠다고 흡족해합니다.
마지막 날 아침 일행들이 오사카 성에 가는 것이 마지막 일정인데
우리는 어제 들렀으니 아침 얼마 없는 시간이지만
다시 ACTUS에 한 번 가보자고 그리고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자고 작정을 했는데 마침 정연이네 식구도
아이가 힘들어해서 그냥 호텔에 남아있겠다고 하는 바람에
함께 나가보기로 했지요.
그런데 개장시간이 11시라고 씌어있네요.
열한시면 우리가 공항을 향해 떠나갈 시간이라 어렵겠다 싶어서
그렇다면 호텔 주변을 둘러보자고 어슬렁 거리면서
주변 탐색에 나선 시간
거의 모든 가게가 열한시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관광객에겐 난감한 시간일지 몰라도 일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더 합리적인 시간이 아닐까
특히 여성들에겐 아침 시간의 분주한 일거리들을 처리하고
나설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겠구나
갑자기 일하는 여성의 처지에서 개점시간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ACTUS의 경우 열한시에 문을 열어서 밤 7시 45분에 문을 닫는다고 되어 있었는데
무슨 가게가 이렇게 늦게 열고 일찍 닫나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다가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전환해서 생각을 해보니 그렇다면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터에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도 누릴 수 있겠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신기한 경험을 했지요.
남은 시간 거리를 그냥 거닐어보자고
천천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불밝힌 밤과 아침 맨얼굴로 보는 거리는
얼마나 다른지요.


오전중에 함께 다닌 정연이네,어제 만나고 나서
이름을 확인해 보니 송혜경씨네요.
이름을 아는 것과 누구의 엄마라고 아는 것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제겐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옷에 대한 관심에서 보람이랑
궁합이 짝 맞는 두 사람을 보면서
보람이는 정말 다른 엄마랑 살면서 참 힘이 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어찌나 즐겁게 가게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 대사를 듣는 것이 제겐 더 즐거운 시간이 되었지요.


아직 열리지 않은 가게의 안에 비치된 상품을 보는 일
진열대를 어떻게 장식했는가
좁은 가게가 각자 다른 느낌으로 건물을 설계해서
나름대로의 특색을 살린 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된 나들이였습니다.



제마음에 들었던 이 곳,모흘리 시스템이라니
그렇다면 바로 그 바우하우스의 모흘리 나기 시스템이란
소리일까?
궁금해도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궁금해하면서
안을 들여다 보았지요.




호텔에서 모일 시간이 다 되어 돌아오는 길에
아직 열한시가 못 되었지만 문을 연 보세가게가 있네요.
보람이가 들어가고 싶어해서 잠깐 들렀는데
그 사이에 구제품 청바지 두 개를 골라서 사고 싶어합니다.
값이 참 싸긴 하다 싶어서 한국에 돌아가면 갚기로 약속을 받고
돈을 내주었습니다.
그 때 마침 색감이 좋은 치마 하나를 발견한 송혜경씨도
정연이를 위해 그 치마를 골라서 들고 호텔로 돌아왔지요.
떠나는 시간을 정해서 오사카 난카이 선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행은 따로 따로 짐을 들고 떠났습니다.
저는 어제 다 못 들어본 음악이 아쉬워서 백명자씨랑
타워 레코드로 가기로 하고 보람이는 다른 일행들과
시장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타워 레코드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다음
무지앙품 3층에 올라가서 마음에 드는 볼펜과 싸인펜을 고른 뒤
둘이서 레코드 점에 올라갔습니다.
음악을 통해서 많은 교류를 하는 사람이랑 보내는 시간
서로 이 음반 저 음반 골라가면서 들어보는 맛도 좋더군요.
고민하느라 이것 저것 고르다가 백명자씨는 바하의 연주곡을
집대성한 연주곡 모음을 구하고
저는 재즈를 8장의 음반으로 모은 스페셜 판을 구했습니다.
마침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송혜경씨도 올라와서
같은 음반을 구했지요.재즈로.
이렇게 마지막 여행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선곤님 부부가 당진에 주말에 오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자고 갈 수도 있다고 초대를 합니다.
주말에는 여행이 불가능한 저는 금요일에 어느 날 날 잡아서
하루 가고 싶다고 그 때도 맛있는 밥 주시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전곡리에도 오월에 축제 기간에 찾아가고 싶다고
가면 가이드 부탁드린다고 말씀을 드렸고
강선생님이 여름에 북의 나라를 본 사람에 한해
어른들끼리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원래 충무공의 싸움터를 따라 돌아보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다음 여행지는 그렇다면 홋카이도로 하고
순번을 짜서 약속을 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참 드문 제겐 이런 식의 약속으로 마음을
확 바꾸는 참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안으로 들아와서 앉아 있다가
떠나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나니
아니 이번 여행에서 큰 서점을 한 번도 들러보지 못했네
참 이상한 일이로군 하면서 비행장안에 있는 간이서점을
찾아갔습니다.
책중에 A HISTORY OF GOD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데 이런 곳에 꽃혀있구나
그나저나 돌아가면 바로 다음 주부터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로군
갑자기 여행의 나른함이 확 깨는 기분입니다.
읽어보고 싶은 책,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메모하다보니
벌써 여행에서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