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일행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기로 한 날이지만
저는 이미 그 곳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일정중에 하루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못 간 상태라 저랑 고은옥님,그리고
설왕설래끝에 오전에는 제가 원하는 곳으로 오후엔 쇼핑하는
곳으로 (보람이가 혼자 오사카에 있는 동안 마음에 드는
옷이나 장신구를 많이 발견한 모양이지만 돈이 없는 관계로
살 수 없어서 마음 졸이고 엄마 오길 기다린 모양입니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잡기로 했습니다.
전 날 고베에 갔을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온 그림 전시가
고베 박물관에서 열린다는 말을 듣고 확인을 했지만
불행히도 오늘은 박물관이 쉬는 날이라고 하네요.
아쉽다 소리가 절로 나는 이유는 얻어 본 팜플렛에서
보고 싶은 그림들을 많이 만나서이지요.
이번 전시는 인연이 아닌 모양이다,로마에서 본 마네
특별전은 얼마나 훌륭했던가,그래서 혹시나 일본에서도
그런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빨리 마음을 추스리고 그렇다면 어디로 하다가
사천왕사에 갔다가 오사카 역사박물관에 들러보자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보고 출발했습니다.
사천왕사가 워낙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절이어서인지
동네 이름도 천왕사,동네의 학교도 병원도 다 이 절의
이름을 달고 있네요.


오늘의 말씀처럼 붙여 놓은 글이 아닐까 그저 추측을 하면서
서서 읽어보고 있는데 보람이가 번역을 해주네요.
이번 여행에서 그 아이가 한 큰 역할로 인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벌써 자라서 엄마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는 역할을
하는 아이,앞으로는 오히려 제가 많이 의지하면서 살게
되겠구나,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니 함께 한 일들로 인해
이야기나눌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는 여행 after가 되기도 하더군요.
함께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간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
그래서 여행은 그 장소에서의 일보다 그것의 잔상이 주는
효과가 큰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가지 형태의 촛불 진열방식을 보았지만
사천왕사에서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어서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연달아 두 장이나 찍어보았습니다.
간절하게 비는 소원들,그것이 내 개인에게 돌아올 복이 아니라
내 마음을 덜어내면서 살 수 있는 힘이 생기길 기도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이번 여행 내내 많이 했습니다.

언젠가 가수 티나 터너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던 중
그녀가 남묘호랑갱교라고 비는 모습을 보았는데요
알고보니 그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을 일본어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하네요.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이 확산되는 시기는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 나 혼자 힘으로는 이겨나가기 어려울 때
의존하는 대상으로 이 이름을 부른다고,그러면 삶의 고통에
대한 의지처를 찾는 기분으로 살 수 있다고 설명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이 절의 입구에도 역시 도리이가 서 있었고
이렇게 매달린 하얀 종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년전 일본에 왔을 때는 절에 함께 있는 신사가 너무 이상하고
거부감을 느꼈었는데 그 사이에 제게 변화가 있었는지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더군요.
아마 우리 문화의 눈으로 타인,혹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재는 현상이 사실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남을 이해하는 코드가 조금 더 생겼는지도
모르지요.
여행은 그것도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내가 생각하던 것의
잣대를 조금 느슨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을 기르는
힘이 생기는 귀한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여행하는 것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되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도 한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금동으로 박은 부처님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서
나란히 진열해놓은 곳,아직 주인을 기다리는 남은 공간들도
있네요.
그 앞에 서서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제가 바라는 간절한 소망은 무엇일까 되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본당으로 보이는 절에 들어가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물상이 있습니다.
아,쇼토쿠 태자상이네,그러고 보니 이 절이 바로
호류지와 더불어 쇼토쿠태자가 창건한 절이로군요.
아주 오래 전 불교를 일본에 받아들이고 백제로부터
문화사절을 불러들여서 일본 문화의 원형을 이룩했다는
살아서도 숱한 이야기를 낳고 죽어서는 신으로 숭앙받는다는
바로 그 사람이 세운 절에 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 절의 내력을 써놓은 글에서 못 읽는 부분은 건너뛰면서
대강 내용을 읽어봅니다.
5세기말에서 6세기초까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일본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사회였겠지요?
상상의 눈으로 다시 되돌아보는 시기,이번에 여행가기 전
읽었던 두 권의 소설이 도움이 많이 되었지요.

글을 읽고 밖을 바라보니 다른 건물들이 보이네요.
그곳에 보물을 담고 있는 건물이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따로 돈을 내야 하지만 그래도 이 곳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지요.


유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기마다 다르게 그려진 쇼토쿠 태자상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로 보면 그가 시기마다 얼마나 중요한
인물로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겁니다.
더구나 20세기에도 역시 판화로 제작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저는 그 작품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밖에서 본 보물전을 담아 보았지요.



어라 치미로구나 하고 가까이 가서 보는 중에
와당이 다른 절에서와는 달리 우리 나라의 와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백제계 사람들이 와서 지은 건물이 아니었을까 이곳은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와 재료로 지어진 것이겠지
이국에 이런 저런 사연으로 건너와서 살았을 오래 전의
사람들을 생각하다보니 우리의 조상이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곳을 떠나서 처음 맞닥뜨렸을 충격과
'
그것을 극복하고 나서 어떻게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았을까,
그런 이야기가 풍부한 자료 연구를 통해 조금 더 소설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불상이 있는 곳에 들어가니 빙 둘러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한참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아서
거꾸로 돌아가서 보니 현장법사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네요.
그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하게 실크로드에 갔을 때 보았던
고창국을 만났습니다.
고창국의 왕이 현장법사에게 반해서 더 이상 가지 말고
이 곳에서 설법하라고 설득했으나 그는 돌아오면서 들러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고창국을 떠났지요.
그러나 현장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망한 나라가 된 고창국
그 나라의 흔적을 실크로드 여행에서 보면서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다 소멸하겠지만 그래도 흔적을
남기고 자연은 그 흔적과 더불어 계속 살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오래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사천왕사를 찾아왔을 때만 해도 무엇을 만나게 될 지
전혀 몰랐었는데 이 곳에서 옛 우리나라의 흔적
너무 자주 이름으로 만나서 이제는 아주 친숙한
쇼토쿠 태자의 흔적,그리고 현장의 일대기를 만나니
기억속에 가라앉아 있던 화염산의 풍광도 살아나고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인 불교가 동양 3국에 어떻게
수용이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문화적이고
정신적이 유산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여행할때마다 뚜껑을 열기 전의 느낌과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의 느낌은 얼마나 다른가,그리고 다녀오고 나서
그것이 제 삶에 들어와서 한동안 긴 영향을 주는 것
그리곤 사그러졌다가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생생한 회상
이렇게 연결되어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렇게 순환하는 고리를 느낀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