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서 넘어가는 길이 있었습니다.창경궁으로 통하는
그래서 그 길을 따라 넘어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종묘에 들어가기 전에 맡긴 책을 찾는 일이 난감해서
일행중의 좀 더 젊은 축에 드는 켈리님과 cuterpond님이
찾으러 가고 자전거님과 정각심님은 길이 엇갈리면
곤란하니 기다리기로 하고
저는 행복다방의 마담과 soon님 그리고 해설사님이
기다리고 있는 화장실앞 휴게소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해설사의 즐거움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들었고 군대가서 겪는 군인들의 이야기도 귀동냥을 했지요.
함께 그림그리러 다니다가
다음 월요일부터 갑자기 일터에 나가게 된 수산나님의
사연도 듣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일행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어느 금요일 수업끝나고 혼자서 사진찍으러 왔던 공간
창경궁
그런데 바로 이 궁궐이 태종이 살아 생전에 권력을
아들 세종에게 넘겨주고 (물론 병권은 그대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이양이라고 할 순 없었겠지요?
그래서 세종의 장인 심온이 심한 고초를 당하고
죽게 되었고 그 가족이 노비신세로 전락하게 된
가슴아픈 사연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뿌리 깊은 나무란 소설에서 제대로
배경까지 알게 되어서 그런지 이 공간이 갑자기
역사속의 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이 거처했던 수강궁으로
지어졌다고 하네요.
저는 역사책에서 수강궁이라고 읽었어도
그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었는데
처음의 해설로 벌써 이 곳에 대한 흥미가 바짝 당겼습니다.
그러다가 성종이 즉위하고 그 위에 층층시하로 있던
할머니,어머니, 그리고 또 다른 한 여인(작은 어머니인지
작을 할머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을 모실 공간이
모자라 이 곳을 넓히고 창경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성종과 그의 두번째 부인 윤씨사이의 고통의 드라마가
펼쳐진 공간도 바로 이 곳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창경궁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곳에 다리가 있습니다.
절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런 다리가 있지요?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 다리,.
아무래도 절에 비하면 궁궐이 우리에겐 덜 성스러운 공간처럼
느껴지지만 왕조국가에서는 좀 다른 의미가 있었겠지요?
일종의 상징이 갖는 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다리에서 만난 한 가족인데요
답사내내 자주 마주치고 이야기도 한 인연이 있어서
올려보게 됩니다.

이 곳이 정치의 현장이 아닌데도
품계석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렇구나
이렇게 의문을 풀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동반,서반 혹은 문반 무반을 합쳐서 양반이라고 한다는
것은 아마 들어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양반이 나중에는 너무 흔해져서 아따 이 양반아
아니 이 양반이 하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까지의
조선역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기도 하고요.
종묘에서와는 달리 가운데 길은 왕이
양옆으로는 동반,서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었다고요.

봉황과 용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을 들으면서
황제국에서만 용을 쓸 수 있었는데 대한제국때
고종은 용의 무늬를 쓸 수 있었다고,그러나
제국에 상응하는 힘이 없는 고종은 무슨 마음으로
황제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갑자기 연민이 몰려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왕은 가마를 타고 이 곳으로 올라갔다고 하네요.
거의 걸을 일이 없었을 왕
그가 과연 건강한 몸으로 살기가 가능했을까요?


다리에서 만난 애기엄마가 설명을 열심히 듣습니다.
그러더니 제게 물어보네요.
어디서 공부하는 모임인가요?
기회가 되서 해설사님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듣는 시간이라고
하니 자신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그냥 구경하다가
이렇게 끼어서 들으니 참 좋다고 감탄을 하네요.
그런데 혼자서 돌아다니시던 어른이 곁에 와서
역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보았지요. 따님이세요?
며느리라고 하는데요 너무 다정한 느낌이 들어서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네요.

건물안의 일월오악도 병풍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정자라고 하기엔 상당히 규모가 큰 공간을 만났습니다.
인조때 좀 더 다듬었다고 하네요.
안에 삥둘러서 사계절을 노래하는 소동파의 시구절이
적혀있었는데 해설을 일일이 다 해주시는 바람에
덕분에 그저 글씨에 불과했을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왕비가 거처하는 공간에 용마루가 없는 사연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 그냥 보면 그저 그런 공간이지만
새롭게 알게 된 공간은 참 달라보이네요.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보실래요?


무수리 최씨가 인현왕후를 위해서 치성을 드리다가
숙종을 만났다는 일화는 책에서 보았지만
그 곳이 바로 창경궁안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바로 이 곳이었다고 하네요.


일전에 왔을 때 굴뚝이 좋아보여서 한참 서성거리던
공간이 바로 무수리의 정성이 빛을 본 공간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그로 인해 나중에 영조가 된 연잉군이 자라면서
신분의 열등감으로 아주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신분,당시의 사람들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벗어날 수 없던
족쇄였던 신분에 대해서
기사환국,경신환국 이런 식으로 남인과 서인사이의 줄다리기를
통해 정국을 고통속으로 몰아넣었던 임금 숙종에 대한
생각도 불쑥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비를 통해
마치 한쪽이 악이고 다른 한쪽은 선의 화신처럼
배웠지만 두 사람을 뒤에서 대변하는 남인과 서인의
세력다툼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그녀들도 당쟁의
희생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조선역사의 다양한 시기를
한꺼번에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해설사님이 영조가 자신의 비를 먼저 잃고
간택을 스스로 하게 된 사연
그래서 아직 너무 어린 정순왕후를 간택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어린이 책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상당히 근사하게 포장하여
아버지 함자가 씌여있는 방석에 앉지 않고
서있음으로써 영조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는 그녀는
나중에 남인들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을 섬으로써
정조이후의 우리 역사에 하나의 질곡으로 작용하게 되지요.
물론 그녀의 뒤를 받치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지만
정조가 승하하고 나서 그가 키운 세력,그가 시작한
여러가지 개혁이 물거품이 되는 시기
천주교도가 남인을 박멸하려는 노론때문에
무더기로 순교하게 되는 시기를 맞기도 하고요.
안타까운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개인이 현명하다는 것과
당파속의 한 개인이 된다는 것의 차이와 거리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자경전이 있던 공간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대 자리에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었다고요.
그래서 정조가 일부러 아버지의 묘소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자경전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녀는 그렇게 애타게 아버지를 그리는 아들처럼
비명에 간 남편을 그리워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과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함께 읽으면서 느꼈던 혼란이 다시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창경궁의 풍광이 아름답더군요.


오래 전 보트놀이를 하기도 했다는 공간으로 이동하기 전에
지나는 길에서 성종의 태실비를 만났습니다.
왕족의 태를 받아서 정성껏 모신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언젠가 호림박물관에 가서 태를 넣은 항아리를 보았던
기억이 나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에 태실을 허물고 서오능으로 거의 다 옮겼다고
하는데 관리의 편의라고 강변했지만 사실은
태를 담은 도자기가 탐이 났었노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종의 경우는 창경궁을 세운 왕이라
그대로 이 곳에 머물게 되었다고요.
그래서 제가 전주 경기전에 갔을 때 본 어느 왕자의
태실이 생각나서 그 곳에서 해산을 했을리도 없는데
왜 그곳에 태실이 있을까 의아했다고 하니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장소를 정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의문이 풀렸습니다.아하 그렇구나



어제 들었는데도 지명이 가물가물한 춘당지인가
'
하는 연못입니다.
답사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앉아서
한나절동안의 답사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다섯 코스가 있는 답사코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수업이 서울에서 있는 날
미리 약속을 해서 everymonth 멤버들과 나머지 코스도
둘러보고 서울의 역사유적지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아요.



스피커에서 관람객 여러분 이제는 문을 닫을 시간이 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시간
벌써 여섯시가 다 되어갑니다
세 시에 만나서 벌써 세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아니 벌써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