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끝나고 종묘,창경궁 답사가 있었습니다.
그 기록인데요 그 곳에 그저 혼자서 나들이한 것으로 끝낸 기억이 있는 분들은
해설사와 함께 하는 답사 한 번 꼭 해보시라고 권합니다.
참 좋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매월 두 번째 금요일에 곰브리치 미술사를 공부하는
everymonth의 민들레영토에서의 모임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머라여님의 렘브란트 열강으로 인해
원래 세 명이 발제할 예정이었는데 혼자서 거의 2시간을
다양한 이야기,추가로 들고 온 그림자료를 보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끝났습니다.
그동안 만난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수업이었는데
준비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느낀 날이기도 했고
모임에서의 공부가 같은 지역사람들의 다른 책읽기모임으로
이어지는 결실을 맺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힘을 모으면 더 큰 에너지가 생기는 것은
모임을 통해 공부해본 사람들은 아마 다 아실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끝까지 가기 어렵다 해도
중간중간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서 모임은 새로운 활기를
띠기도 하지요.
이번 금요일은 수업끝나고 행복다방 식구들과 더불어
문화해설사 두첨지님의 해설로 종묘와 창경궁을 보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서
점심 이후의 차마시는 시간을 줄이고
둘,셋이서 나누어 택시를 타고 종묘앞으로 갔습니다.
순간 너무 많은 노인분들을 보고 마음이 멈칫하네요.


종묘 입구에 이미 와 계신 해설사님
그리고 수산나님과 soon님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수업으로 인해 무거운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던
관계로 그 책을 다 보관함에 맡기고 종묘가 문화유산이란
것을 알리는 팻말앞에서 이야기듣기를 시작했습니다.
각 개인의 집에서 종가집이 제사를 지내듯이
이 곳이 바로 조선왕조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경복궁이 창건되기 전에 우선 이 곳이 먼저 만들어졌고
경복궁에서 보자면 왼쪽에 종묘와 오른쪽에 사직단이
만들어진 배경
종사를 보존하소서의 종사가 종묘와 사직단이란 것을
이야기하시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역사를 오래 읽어와서
책속에 씌여있는 역사에서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었지만
책속에 없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참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들어오는 문이 다른 궁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질문을 받고
한참 들여다보아도 무슨 차이가 있는가
확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는데
단청이 없다는 설명을 들으니 아 그렇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그 차이가 보이지 않았을까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느낌이기도 했지요.
죽은 사람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주를 모시는 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천원지방의 원리로 만들어진 연못으로 갔습니다.
일전에 읽은 소설에서 그렇게도 여러 번 읽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원리로 만들어진 연못에서
왜 연꽃이나 물고기가 없는가도 역시 단청이 없는
원리와 똑같더군요.
연못안의 작은 정원에 향나무를 심은 사연에 대해서도
들었지요. 제사에 필요한 나무라서 향나무를 심었다고요.
그 공간을 지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공민왕을 모시는
곳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고려를 일부러 뒤엎고 만든 나라가 아니라
고려를 계승하는 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마 당시까지 뿌리깊게 남아있는 고려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민심을 달랠 공간이 필요했었겠지요?
두문동의 일화로 알 수 있듯이 오래 된 왕조가 무너졌을때
그것을 애석해하고 마음으로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는
힘이 들었겠지요?
사당안으로 들어가보니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에서 읽고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네요.

아마 고궁이나 문화공간에 다녀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혼자서 그 공간에 갔을 때 그곳은 단지 건물에 불과할 뿐인 것을
그러나 그 공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그 공간이 살아서 움직이면서 오래된 기지개를 켜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요
위 사진은 바로 그런 현장을 잡은 것이지요.
종묘의 신위를 모신 곳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왕과 왕자,그리고 제사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목욕재개하는 곳, 미리 음식을 준비하고 검사맡는 공간
그 곳의 우물에 대한 설명등을 들은 후에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제 눈에는 공간의 의미보다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와 사진기를 꺼내서 자꾸
찍어보게 되네요.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서 공간을 다듬고 계신 아주머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공간이든 그 곳을 유지하기 위해 손을 보태고 있는 분들의 정성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잊고 사는구나 갑자기 눈길이 갑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우 종묘가 어떤 식으로 보존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이 공간에서 누구의 신위를 모시고 어떤 방식으로 모시고 있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우도
자식이 잘 된 경우에 부모가 대접받기 쉽듯이 (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요) 조선조의 왕들도 자식이 어떤 왕인가에 따라
대접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우선 지붕의 기와를 보라고 해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기와 색깔이 다릅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 비해 공간이 확장된 것도 있지만
나라에 환란이 생겼을 때 공간이 불타고 다시 손질을 하게 된
사연도 있고 그 다음에 확장을 하게 된 사연도 있어서
그렇다고요.
처음 종묘를 만들었을때는 이태조의 추증한 4대조와
이성계 자신을 위한 공간이었다가 계속 늘어나는 신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름의 규정이 생겨서
공간을 둘로 나누게 되었다고 하네요.
19명의 왕과 30명의 왕비의 신위가 모셔진 공간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만에 명칭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이곳은 조선왕조의 공신들을 모신 곳이라고 하는데
왜 정도전의 신위는 이 곳에 없는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왕보다 먼저 죽은 신하의 경우에는 모시지 못했다는
설명도 들었지요.
이 곳에서 갑자기 조선왕조의 전 역사와 마주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느 공간에 간다고 했을 때 늘 예상치 못한 사연과 만나는
것이 신기합니다.
soon님은 집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펼쳐보아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시더군요.
답사의 후일담과 책을 보게 된 소감이 올라오면
즐거운 after가 될 것 같네요.

이 곳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동기가 없으니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부가 자력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겠나
차라리 마음에 궁금함이 차오르는 시기가 되어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하고
어려서는 몸과 마음을 닦는 일,그리고 어울려 사는 일의
실제를 훈련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다시 플라톤으로 제 생각이 돌아갑니다.
진지하게 질문을 하면서 설명을 듣는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빨강옷을 입은 이 외국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곳을 둘러보고 있을까요?
무리지어 온 일본인 관광객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이 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문득 제 시선이 그곳으로 머물기도 했습니다.

빨강옷의 주인공의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나왔더군요.
스넵사진처럼 찍혀버렸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한 장
올렸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부속건물안에서 찍은 것입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그들의 기록은 실록이 아니고 일기라는 것
그 밖에 다양한 설명을 듣고 나니 종묘에서의 볼 것은
다 끝났다고 하네요.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는데
누가 서울을 드라이한 공간이라고 하는가
참 좋구나 나무가 우거진 숲길같은 느낌에 감탄하면서
둘레둘레 바라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