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곰브리치 미술사 수업이 일학기 종강을 했습니다.
요즘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 관계로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을 못했으나
아직 시작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상태더군요.
그래서 렘브란트에 이어 얀 스틴
루이스달,그리고 베르메르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회화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기의 그림을
설명과 함께 볼 수 있었지요.
요즘 갑자기 네덜란드가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이란 제목의 팩션을 한 권 사서
읽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과연 그곳에 갈 수 있을까
가서 렘브란트,베르메르,고흐의 그림을 보는 날이 있을까
그저 꿈일까 혼자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지난 번 로마행 비행기가 늦게 오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보너스로
암스테르담의 호텔에서 하루 숙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서 공항가는 버스속에서
바라본 도시풍경,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 풍경이 뇌리에 남아서
그 곳이 먼 꿈속의 지명이 아니라
언젠가 갈 수 있는 곳,가고 싶은 곳으로 바뀌었지요.
지금 당장은 어딘가 떠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그저 도판으로라도 그림을 더 보는 것이 낫겠지요?
얀 스틴의 그림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겐 다윗의 유혹을 받고 결국 다윗과의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은 밧세바의 그림은 렘브란트를 통해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밧세바 하면 렘브란트의 밧세바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얀 스틴이 그려낸 편지를 노파로부터
전해받는 좀 더 젊은 밧세바로군요.


당시 이미 신교를 믿게 된 네덜란드
그러자 교회에서 그림수요가 없어지면서
화가들은 각자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팔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고 그것이 아주 소수의 화가들이외에는
상당히 가혹한 시련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생계 유지가 어려운 많은 화가들이 부업을 하게 되었다고요
얀 스틴의 경우 여인숙을 운영하면서 그 속에서 만나는
인간군상에 대해서 많이 보고 그림으로 녹여서 표현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장르화를 그림 수없이 많은 화가가 있었겟지요.
그런데 미술사에서 살아남아 우리에게 당시를 증언하는
몇 몇 화가들은 단순히 풍속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지금도 바라보게 만드는 그림을 완성했을터인데
그 무엇이 어떻게 가능한가는 한마디로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그림을 보면서 우연히 네이버의 블로그에서 찾은
김수철의 우리악기로 만든 음반을 듣고 있는 중인데요
지금 나오는 곡이 아쟁입니다.
아쟁이라면 음악시간에 들어 본 이름 이후로는
제대로 들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느낌이 아주 좋아서 플레이를 계속해서 듣고 있거든요.
밖에서 강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서 좋아하게 되는 것이 진짜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네요.
이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웬디수녀의 미술사책에서
표지작품으로 나온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던 때라
하필이면 많고 많은 그림중에서 이 작품을 표지로 했을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유 따르는 여자
더 이상 그림의 모델이 영웅이나 신화적인 존재
혹은 성서속의 인물이나 귀족이 될 필요가 없는 그림의
등장을 알리는 시기라고 해야 하겠지요?
소재가 아니라 캔버스를 채우고 있는 빛과 그림자가
주인공이 되는 그림들
전화벨이 울려서 이 시간에 집으로 누가 전화하나
궁금해하면서 받으니
영국사는 친구가 서울에 왔다고 연락이 왔네요.
한 번 전화통을 잡으면 유일하게 소설을 쓰게 되는 친구
아무래도 그림 보기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