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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입학은 싱겁고 졸업은 공허해

| 조회수 : 1,222 | 추천수 : 9
작성일 : 2006-02-24 12:16:59
                     (자리 빈 졸업식장 풍경)


매년 2월과 3월이면 졸업과 입학이 겹쳐져 꽃값이 뛰곤 하지요.



얼마전 자녀의 대학 졸업식장에 다녀온 분의 한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상받는 학생 몇명만 자리를 지킬 뿐이고 그 나머지 학생은 경건함도



긴장감도 없는 졸업식을 한다는 말을 듣고 그런 풍속이 왜 일어날까 생각했는데,



여기 우리 교육의 공룡화 문제(작은 학교의 반대)와 시스템의 보완점 등을 짚은 글이 있네요.




경쟁 부추기는 학교가 개인 파편화
의례는 구태의연하거나 요식행위거나
시작과 끝, 경계선에 아름다움이 없다
생각과 경험을 공동의 이야기로 발효시킬 때
비로소 배움의 인연(학연)을 맺은
입학-졸업식장의 주인공이 될터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총장 : 누가 배움의 문을 두드리는가? / 학생 대표 : 학생 대표입니다. /
총장 : 그대는 무엇을 구하는가? / 학생 대표 : 충실한 학업으로 정신을 일깨우고,
인생을 지식에 바치고자 합니다. /
총장 : 그렇다면 그대를 환영한다, 그대를 따르려는 모든 학생들은 안으로 들어오너라.
이제 새로운 학년의 시작을 선포하노라”

  


이것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나오는 대사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슬리대학에 미술사 교수로 부임한
주인공이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겪는 갈등과 우여곡절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는 개학식 의례로 시작된다.

  


대강당에서는 총장과 교수들이 기다리고 있고, 학생들은 좀 떨어진
장소에서 모였다가 한 무리를 이뤄 걸어 올라온다.
강당에 다다르자 대표 학생이 나무망치를 가지고 문을 두드린다.

  

그 때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총장과 대표 학생이 위에 인용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줄을 지어 들어와 자리를 잡은 다음
개학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배움의 엄숙한 의의를 산뜻하게 함축하는 매우 인상적인 의례 장면으로 기억된다.

  


의례는 한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의 질서를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신체 행위다.
그를 통해 구성원들은 함께 살아가는 보람과 정체성을 획득하면서 서로 결속을 다진다.
교육에서 의례는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고 축하하는 문화 장치로서
축제적인 본질을 담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 치르는 의례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졸업식 날 학교마다 수많은 인파와 화려한 꽃다발이 넘쳐나지만
정작 졸업식은 구태의연하며 공허하다.
입학식은 아예 요식행위로 머물러 싱겁기 그지없다.

  


그런 행사에서 문화의 빈곤을 새삼스럽게 목격하게 된다.
시작과 끝의 경계선을 경건하고도 아름답게 그어주는 언어가 아쉽다.

  

그런데 그것은 기법의 문제일까. 훌륭한 이벤트 회사에 맡긴다면
멋진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연출할까. 몇 가지 볼거리를 삽입할 수 있겠지만,
참석자들이 몸과 마음을 실어 시공간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례 자체의 완성도가 아니라, 참가자들 사이에 퍼져나는 의미의 울림이다.

  


그 공명의 정도는 그들이 공유하는 기억과 소망의 밀도에 비례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빚어내는 생각과 경험들이 공동의 이야기로 발효되고 승화될 때,
참가자들은 비로소 그 시공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런 의례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대안학교의 졸업식에 가보면 그것을 만나볼 수 있다. 그
런 졸업식의 공통점은 졸업생 한 명 한 명이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어떻게 살아왔고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반추하며,
앞으로 어떤 진로를 택할지에 대해 차례대로 발표하고 관련된 영상도 곁들여진다.

  


그 시간이 웬만한 축사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졸업생들이 저마다 걸어온 길을
생생한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연의 빛깔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 자리에는 그 세월을 함께 해온 교사와 재학생들 그리고
부모들도 참석하여 졸업생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작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공교육의 개별 학급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학교 전체의 규모는 매우 큰 편이다.
비대한 조직은 관료적인 통제 위주로 흐르기 쉽고,
거대한 위계 구조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원자화되고 소외되기 일쑤다.
지금 교육은 한편으로는 집체주의로 묶어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개체주의로 경쟁을 시킨다.

  


그 폐해는 객관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0년 회원국들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를 조사해본 결과, 한국 학생들의 협동학습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때 가장 많이 배운다’,
‘나는 다른 학생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좋아한다’ 는 항목에
그렇다고 답을 한 비율이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관계 맺기와 소통의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일 뿐 아니라
행복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되는 시대에,
학교의 의미와 존재 방식은 새롭게 질문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씨는 <아이들이 묻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답한다>라는 책에
‘우리는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라는 글을 실었다.
거기에서 그는 정신 지체의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 히카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히카리를 학교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잘 알아듣고,
부모가 가르쳐주는 새 이름들을 재미있게 배우는데,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서 초원이나 언덕,
숲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 아들이 입학하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히카리는 자기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하는 친구를 만났고,
그때부터 두 아이는 항상 교실 구석에 앉아 손을 맞잡고 주위의 소음들을 견뎌냈다.
특히 화장실에 갈 때, 아들은 몸이 더 약한 그 친구를 도와주었다.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경험은 히카리에게 새로운 행복을 의미했다고 그는 증언한다.





한국사회에서는 학연이 매우 중시된다.
동문들의 배타적인 인맥이나 파벌이 많은 일을 좌우한다. 그런데 학연이란 무엇인가.
말뜻 그대로 풀면 ‘배움의 인연’이다. 관심의 그물망 속에서 마음의 힘을 키우는 관계,
지적 정서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만남이다.



‘여고괴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등으로 표상되는
학교 공간은 배움의 인연으로 상생의 터전이 될 수 있다.
졸업과 입학의 계절마다 진정한 학연을 다짐하고
매듭짓는 멋진 의례가 여기저기에서 펼쳐질 것이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평강공쥬
    '06.2.28 2:18 AM

    이~긴 장문을 읽으면서 참 오래전의 일들이..ㅎㅎㅎ
    참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 2. 반쪽이
    '06.2.28 2:07 PM

    평강공쥬님, 반갑습니다.

    잠시 오래 전 옛날로 시간여행을 하셨군요.

    우리가 하나의 기억을 되살리는데는 여러가지가 작용한다고 봅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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