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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설거지를 하면서...

| 조회수 : 2,394 | 추천수 : 17
작성일 : 2006-01-13 06:44:34
맨날 잘 하던 설거지도 가끔은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냥 하기 싫은게 아니라, 내가 마냥 서럽기까지 하면서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어느 날...
아마 피곤했거나 머리 아픈 일이 있었을게다.

널다란 개수대 안에 가득 쌓인 설거지와 그 옆으로 놓여있는 남비며 크고 작은 그릇
쟁반을 보면서 울컥 울고 싶었었다. 이유없이 나오는 긴 한숨 소리를 뒤로 하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지금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놔두고 아침에 할까?
애들에게 소리 빽~질러 엄마가 설거지 순이냐? 너네도 밥 먹었으니 설거지 해~ 할까?
아이들도 이렇게 많은 설거지를 보는 순간 얼마나  심란스럽겠나?
나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아이들 보고 하라하면 그 아이들도 나와 같은 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겠나?  이유없이 모든게 싫어지지 않겠나~
내가 왜 이거 해야하나? 그릇은 왜 이렇게 많은거야..정말 싫어!
안 할 수도 없고,억지로 하노라면 얼굴이 맑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이렇게 싫은데 말이다.

잠시 한 발자욱 물러서 개수대를 보면서 5 분 가량 생각을 했다.
힘들어도 지금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에이~ 몰라 ~ 그냥 눈 딱 감고 자버릴까? 말까? 그런데 내일 아침 밥 하러 나왔을때
이 설거지 더미를 보면?? 에이 그건 아니다.
아마 밥 하기 싫을 게다.

설거지 앞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 보기는 또 처음인 것 같았다.



그래, 하자!
머릿속에 이쁜 그림 그려가면서  천천히 하자.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그림을 그려 보자.
이 모든게 어차피 다~내 몫이 아니던가...

팔 목을 걷어 부치고 수세미를 집어 들고 주방 세제를 묻힌다.
커다란 남비 부터 씻어본다. 오래 된 그릇들이라 가볍기도 하다.
내 손 안에서 많이 익숙해져 있어 착착 달라 붙는다.
내 머릿속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손은 혼자 돌아가는 기계처럼 하나 하나 씻어간다.

남편을 만났을 때 생각을 했다. 내 나이 꽃 다운 24살. 신기하다.
내게도 이런 나이가 있었구나..(피식 혼자 웃는다.)
나이 많은 남자가 얼마나 순박한지...나는 그 남자를 아저씨라 불렀었다.^^*

세상을 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
내 마음이 사랑이면 다른 사람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이다.
내가 둥글면 세상도 다 둥글다고 생각했던 나이다.
내가 꽃이고 하늘이면 다른이도 꽃이고 하늘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면에서는 세상과 맞서는데는 아직 서투른 아줌마이다.

큰 그릇들이 하나 하나 씻겨져 제 자리로 찿아 든다.
큰 그릇들이 없어지니 작은 그릇은 일도 아니네. 기분이 말끔해 지면서
내 손은 자동세척기 마냥 척척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국수 먹고 싶다면 정말 국수만 사 주던 남자이다. ^^
그렇게 철없이 가난하고 이쁘게 사랑을 키워갔던 것 같다. 때로는 많이 아프면서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 가지고, 아이 가지면 다 낳아야 하고,
일이 많으면 당연히  해야된다고 생각한 나였다.
희망을 꿈꾸며 자기 일 해 보겠다고 무모하게 사업에 뛰어든 남자.
그 남자를 또 당연스레 열심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나였었다.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거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드리면서...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내가 바보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보처럼 단순하게 생각을 했기에
내가 무너지지 않고 예까지 살아왔는지 모른다.

내가 무너진다?
즉 나와 내 주변을 포기 하지 않았다고 말하련다.
보여지는 것에 연연해 할 시간도 없이 예까지 살아 와서 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지혜롭고 편안하게 사는데는 때론 바보가 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너무 똑똑하고 야무져서 아프고 지치는 법인지도 모른다고 내 맘대로 생각해 본다.
아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작은 그릇들도 다 마무리 되어가고, 수저와 젓가락 까지도 각 각 제 자리로 들어간다.
늘어 놓기 시작하면 한 없이 늘어져야 하고, 정리 하려 들면 또 한 없이 정리 할수
있어 우리들 손은 마법의 손이다.

개수대 찌거기 통도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내고 그 것 마저도 수세미로 박박 닦아낸다.
이것만 하면 마무리가 다 되어간다는 것이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컵도 제 자리에...
그릇들도 제 자리에...
쟁반도 제 자리에 들어가니 다 정리가 되어 버렸다.

제 자리.
그렇다. 우리가 제 자리만 잘 찿아도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지는 것은 각자가 제 자리를 찿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음일 게다.
그 자리가 어디던 자기가 올 곧게 서 있으면 이 세상이 행복해 질게다.



언제 산더미 였을까 할 정도로 말끔히 치워졌다.
젖은 행주 깨끗히 빨아 헹구어 탈탈 털어 준다.내 마음도 탈탈 털어졌다.
반듯하게 그릇 선반위에 착~펴서 널어주고
마른 행주로 싱크대 주변 물기를 마무리 해준다.
아~
이 순간이 마냥 좋다!
하룻밤만 지나면 또 산더미가 될지라도 말이다.

설거지 하면서 내 인생의 글을 읽어가면서
웃기도 하고,마음 저려 아파 하기도 하고,고개도 절레절레 흔들어 보면서
심란했던 설거지를 마무리 했다.


경빈마마 (ykm38)

82 오래된 묵은지 회원. 소박한 제철 밥상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마마님청국장" 먹거리 홈페이지 운영하고 있어요.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노니
    '06.1.13 8:27 AM

    디카동호회에서 살짝뵙고,유명하신분,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도 못하고 먼저왔네요.

    설거지 : 음식을 먹고 난 그릇을 씻고 치우는일.

    설거지 정말 주부들에게는 매일돌아오는 숙제지요.

    전에 살던집에 조그만 식기 세척기를 두고 썼었는데 ,성질급한 저, 세척기에그릇 채우는일도 귀찮고


    세척기소리도 제가 계속 설거지를 하는 듯 하여 쓰지않았어 요.

    마마님같이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옇을때 저는 이렇게해요.

    저중에 두서너개만 씻자 그러면 다음날 좀수월하겠지

    두서너개를 씻고 두서너개만 더씻을까? 마음속 잠시갈등후..

    그러지 뭐 두서너개인데 뭘!.........

    하고 두서너개를 씻고나면 차츰 설거지가 재미가나고 나도모르게 설거지가 끝나있더군요.

    이때 두서너개의설거지를 선택할 때, 제일 귀찮은것을 합니다.

    그러면 다음것은 쉬워보이는 효과?

    다른 방법 하나, 아이들과 함께할때.....가끔 일요일, 번갈아가며 두딸이하기도하지만, 마마님 말씀대로

    아이들도 싫어하며, 그 심정 이해도갑니다.

    그때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각자먹은 그릇 5개씩만 닦아라.

    아이들은 마지못해하지만 부담은 적은듯 ,아이들, 그중 제일 쉬운그릇 딱! 5개만 닦아 놓아요.짜식들

    5개 하라고 딱5개만 하나 싶지만 그거라도 어디냐싶어하며..

    그래도 아이들3이서 다섯개씩이면 15개정도되요.

    그러면 저도 하기싫던마음이 사라 지기도하고, 나중에 하더라도 좀 수월한듯..

    글을 쓰다보니.. 참 허접스럽고 뭐 설거지 하나 지고 이런 머리쓰나 싶네요......
    남들 보면 흉볼라나?
    그래도 마마님 설거지... 절대공감이 가서 시리....

  • 2. 소안이
    '06.1.13 9:20 AM

    이쁜글과 맑은 피아노 소리 잘 보고 듣고 갑니다.

  • 3. 데레사
    '06.1.13 9:36 AM

    한편의 아름다운 시 같네요...

  • 4. intotheself
    '06.1.13 9:57 AM

    경빈마마님

    그 날 디카 모임 끝나고 지하철까지 같이 왔는데

    지하철을 타려고 내려오고 보니 경빈마마님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뚤레뚤레 찾았지요.

    그러나 사람은 흔적도 없고

    저는 수업시간이 다가오고 그래서 인사도 없이 그냥 왔습니다.

    마침 어제 동유럽 여행다녀온 분이 폴란드 꿀이라고 꿀을 한 통 선물해주셨어요.

    폴란드꿀에 우리나라 생강을 섞어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님을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5. 경빈마마
    '06.1.13 10:01 AM

    어머나 안녕들 하시죠?

    노니님.소연이님.데레사님..
    그리고 어려운 이름님. ㅋㅋㅋ 이 촌닭이 화장실 급해서 말도 못하고 어리버리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100미터나 가야 되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핸드폰이 없으심을 울매나 원망했는지...앙~~~
    그래서 울면서 혼자 왔다요.

  • 6. 반쪽이
    '06.1.13 10:32 AM

    그림이 그려지네요. 경빈마마님.

    설거지거리 !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뒤치닥거리 중의 하나죠.

    '제자리 찾기'가 그리도 힘들지요.

    오늘 이 글이 주는 커다란 울림의 메세지군요.

    인생의 설거지로 제 자리를 제대로 찾는가?

    되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 7. 오리아나
    '06.1.13 11:14 AM

    그래서 내 마음이 법당일 수 있고,
    이 세상 모든 일상속에 던져져 있는 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인것 같습니다...
    몹시도 아팠던 날....
    쌓여있던 설거지감을 치워가며 나를 다독이던 저를 만나게 되네요...

    비소리가 오늘따라 곱습니다...
    마마님..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8. 우향
    '06.1.13 11:51 AM

    밥 그릇 두 개 설거지 하기 싫어
    남편과 가위 바위 보 하자고 조르는 제가
    오늘은 차암 부끄럽네요.

  • 9. jain
    '06.1.13 1:09 PM

    이 음악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요.
    저 고등학교 다닐때 kbs fm에서 김희애가 진행하던 에프엠 인기가요....시그널이었는데..
    눈물나려하네요. 덕분에 음악감상 잘 하고 갑니다.

  • 10. 젊은 할매
    '06.1.13 4:48 PM

    디카모임에가기전 " 자기가 뭔대 경빈마마 야!" 라고 생각하다가 이름 지어진 내력을 듣고는
    "오~라 , 멋지다." 라는생각이 각인이되여 잊을수가 없네요.
    설거지 아무리 많아도 하기 좋든 싫든 맘 먹기 달렸어요. 사랑 하는 가족을 위한 일이라
    즐거운 맘을 가지세요. 나는 옛날에 5남매를 키우며 부엌은 얼마나 불편한지. 한옥부엌에서
    상을 들고 오르내리며 말을 다 못하지요 , 그래도 그때가 행복 했답니다.
    경빈마마님 건강 하고 행복하세요 가족들과 더불어,,,,,,^^

  • 11. 선물상자
    '06.1.13 9:28 PM

    제가 요즘 밤마다 하는 고민입니다..
    소영이 유축해서 젖먹이는데.. 낮에 사용한 젖병을 그날 밤에 소영이 재운담에
    씻고 소독하는게 일이네요.. 에효..
    거기다 밥먹은 그릇들까지 합세하면..ㅠ.ㅠ
    그래도 전 설겆이 잘 도와주는 고마운 신랑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정말 저렇게 쌓였을때는 엄두가 안나요..
    그저 한숨만 나죠..
    게다가 저희집 부엌은 개수대가 조그만거 딸랑 하나라서
    둘이서 설겆이 하기도 벅차요.. -_-;;;
    그런때 누가 쑥~ 나와서 내가 도와줄께~ 하면 어찌나 고마운지.. ^^
    공감가는 글에 몇자 적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12. 봄이온
    '06.1.13 10:53 PM

    눈으로 보는듯 합니다.
    맘으로 느껴집니다.
    제 얘기 같기도 하고...

  • 13. lake louise
    '06.1.13 10:59 PM

    글도 고맙고,음악소리도 참 고운 선물이었습니다.

  • 14. 아티샤
    '06.1.14 3:01 AM

    마마님
    이 새벽에, 한밤 중인가... 아이 젖먹이고 잠이 깨서 나왔더니 개수대 가득 쌓인 그릇들.
    잠시 절망인 맘으로 82쿡 들왔다가
    마마님 글 읽고 씩씩하게 설겆이 끝내고 개운합니다.
    결고운 음악으로
    오늘 생활 마무리뿐 아니라 마음 마무리 까지 하게 해주신 마마님 고맙습니다.

  • 15. 경빈마마
    '06.1.14 8:21 AM

    우리 설거지 즐겁게 합시다~아!
    생뚱맞은 경빈이지요?

    말끔히 치운 싱크대가 방긋 웃고 있어요.^^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 16. 시골아낙
    '06.1.16 12:32 AM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 아내의 자리를 다시 한 번 느끼고 나갑니다.
    오늘 바쁜 아내가 곤히 자길래 아내의 자리에 앉아 오늘 아내가 만났던 인연들을 소중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많은 대한민국의 아내들을 새삼 존경해봅니다.
    살림하며, 아이들 돌보고,또또...그리고 이런 글까지...
    가슴에 와 닿은 그 무언가를 느끼고 나갑니다.
    아내 설거지 많이 도와주어야겠다고 느끼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무지한 남편의 깨우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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