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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에게 말걸기

| 조회수 : 1,129 | 추천수 : 10
작성일 : 2006-01-11 10:55:02
평소 '사람들'에 관해 글을 자주 쓰는 김찬호 님의 글을 눈여겨 읽고 있습니다.

"도시는 미디어다", "사회를 보는 논리", "작은 인간"등이 그것인데요.

여러 모양새로 살고 있는 모습들이 곧 우리의 삶의 행태인데

대개 자기가 속한 세계에 안주하게 마련이지요.

시선을 돌려 잠시라도 남에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낯설게 되돌아 볼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열린 사고로 살아가기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말하죠.



그의 번역서"작은인간"은

인간의 기원과 조상, 배고픔, 섹스, 전쟁, 종교 등 인류에 관한 102가지의 수수께기를

우리 시대 최고의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가 풀어쓴 책으로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인간과 문화의 진화가 이뤄진 과정과 원인을 밝히고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을 서술하고 있지요.


여기 그의 짧막한 글 한편이 아침 신문에 실려 제 눈길을 가로 막습니다.

  


[칼럼연재] 삶과 문화

  
  
지난 학기 문화인류학 교양강좌에서 학생들에게 색다른 과제를 내주었다.

과제명은 '낯선 사람의 눈으로 세상 들여다보기'였다. '낯선 사람'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삶의 조건이나 경험세계의 면에서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이번 과제가 아니라면

자신의 인생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볼 기회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


수강생들은 그런 인물을 찾아가 인터뷰나 관찰을 해야 했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인생 여정, 생활의 전반적인 조건,

그의 생각과 애환 등을 파악.정리해 제출하는 것이 과제의 내용이었다.

거기에 깔린 '학습 목표'는 타인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문화에 대한 질적 감각을 키우고,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삶의 세계가 존재하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과제를 받고 처음엔 모두 난감해 했다.

착실하게 공부만 해 대학에 들어왔고, 캠퍼스에서도 '코드'가 맞는

몇몇 친구끼리만 어울리는 학생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편협한 테두리를 넘어 전혀 생소한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생각을 들어보도록 하는 것이 이 과제의 의도였다.

다행히 학생들은 과제를 착실하게 수행했다. 선정된 대상은 매우 다양했다.

이주 노동자, 노숙자, 맹인 악사, 산후조리사, 바텐더, 연극배우,

김밥 아줌마, 권투 선수, 벤처 기업 사장….

그 가운데는 고생 끝에 가까스로 섭외해 만나게 된 경우가 꽤 많았는데,

그런 학생들일수록 어려움을 뚫어낸 데 대한 뿌듯함이 컸다.


한 가지 흥미로운 반응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타인들과

의외로 말이 잘 통하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한 건축학도는

권투 선수와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종교관으로까지 심화됐는데,

대화에 너무 몰입해 자신이 지금 숙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이혼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어느 여학생은

한 환경미화원의 생활을 관찰하며 아버지의 노후를 상상하게 됐는데,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고생에 대해 너무 무심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노래방 여주인을 24시간 꼬박 따라다닌 한 학생은,

환갑이 다 된 아줌마가 주도면밀하게 일상을 경영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에 깊은 감흥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젊은이 문화의 독특함을 부각시키면서

세대차를 강조하는 담론이 꾸준한 흐름을 이뤄왔다.

물론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에만 매달리는

동안 공통분모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표면적인 현상들만 갖고 호기심으로 대상화하면서 이질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제 다름과 같음을 입체적으로 포착하면서

소통의 접점을 다각적으로 탐색할 일이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번 숙제는 그 한 가지 시도였다.

학생들의 리포트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용기'와 '관심'이었다.

처음에는 언뜻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막상 부딪쳐 보니 의외로

벽은 그다지 두텁지 않았다는 것,

이질적으로 보이던 사람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두드리니

두터운 통로가 열리더라는 것이다.


과제 수행에 대한 몇몇 학생의 소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생전 처음 대하는 사람과 짧게 나눈 대화에서 웬만한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관계보다 한결 농밀하고 깊은 무엇을 느꼈다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인터뷰 대상자들도 비슷한 체험이 된 시간이었으리라.

비좁은 인간관계와 자의식의 밀실에서 벗어날 때 삶의 테두리는 확장된다.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그 삶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자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

세상을 드넓게 만날 수 있다.



◆약력=연세대 대학원 졸, 저서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등

김찬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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