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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프레 그의 이름을 들으면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마도 요절한 천재들에 대한 선입견 탓일 수도 있고,
그녀를 앗아간 병명이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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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클린은
세 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네 살 때 자기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고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한 그녀는
파블로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그리고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해 어린 나이에
금세기 첼로계의 모든 흐름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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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65년엔 뉴욕에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널리 각광을 받으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이 23세이던 68년에는 가족이 탐탁치않게 여기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했고, 28세 되던 73년,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사실상 연주 활동의 막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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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장한나가 뒤 프레의 첼로소리에
피아노를 치다가 첼로로 바뀐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장한나가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세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다 첼로로 바꾼 것은 여섯 살 때.
첼로와 사랑에 빠진 계기가 자클린 뒤 프레의 '엘가 협주곡'을 듣고 나서부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혼신을 다하는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에서 뿜어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
듣는 이를 끌어들이는 강한 흡인력이 장한나를 사로잡았다.
앳된 모습의 소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연주 의자에 앉아 첼로 현에 활을 긋는 순간, 마치 무아에 빠진 듯한 표정과 연주에서 자클린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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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최근 나온 '자클린 뒤 프레'의 음반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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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마와 린 하렐의 스트라디바리(1712년 제작)는 그녀의 것이었다.
뒤 프레가 이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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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프레의 남편이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은
뒤 프레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20대 시절 6년여의 잠깐동안만 결혼생활과 연주활동을 같이 하였다.
뒤 프레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을 앓으며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자
곧 바로 이혼하고
그녀가 죽은뒤에도
그녀의 무덤을 한번도 찾지 않았다.
그로
음악계에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너무나 자기의 길을 철저히 가는게 다소 경이롭기 까지 하다.
뒤 프레가
한남자의 아내로서는
사랑을 받지 못한것이 너무나 쓸쓸함을 안겨준다.
바렌보임이
그녀를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것은 어떤 마음인지 지금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녀의 힘차고도 아름다운 첼로 소리가
그모든걸 충만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