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조금 몰입할라치면,
"엄마, 오늘 학교에서..." 딸아이의 수다가 시작됩니다.
대충 마무리하고, 다시 책을 쥐고 눈을 부릅뜨면,
"엄마, 나 응아 다했어~" 하는 둘째 놈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려~ 엄마 갈게."
다시 책을 내려놓습니다.
그래도 왠일인지.. 요즘은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가 싫습니다.
이책을 시작하면, 다음 책을 정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서른 아홉.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는 이런 속사정을 갖고 만난 책입니다.
이전에 에서 느꼈던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기대하면서,
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 예상이 어느 점에서는 맞았고, 어느 점에서는 지독히도 틀렸습니다.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아주 행복했습니다.
다양한 자아들이 '메타포'라는 상징으로 저의 여기저기를 자극했습니다.
그런데.. '하'권의 마지막을 덮은 순간,
저는 책읽기의 처음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 곰곰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내가 어찌 해야하는지..
아마도 다시한번 읽어야 할 듯 싶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는 정경 속에서
'박항률'의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지난번 '인사아트센터'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그림인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무척 맘에 들어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은 이처럼 고요하고 편안한데..
아마도 글에서는 제가 어떤 '결말'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듭니다.
고요한 그림이라면 '베르메르'의 그림들도 빼놓을 수가 없겠지요.
처음 미술사를 시작한 것은 '뒤샹'과 '마그리트'가 계기가 되었지만,
과정을 진행하면서 제 눈을 붙잡았던 화가는 바로 '베르메르'입니다.
'은유'와 '상징'.
색과 형태로 만들어가는 '메타포'
어쩌면 16세기의 '베르메르'와 21세기의 '하루키'는
시대와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전개해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제목은 입니다.
'부엌데기'쯤으로 해석을 해야할까요..
온화한 빛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우유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 너무 편안해보입니다.
그가 이 그림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메타포', 즉 은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처음에는 주방일을 하는 아낙을 신성화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베르메르'의 작업방식에 대해서 알수록,
그가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그림의 내용보다는 보다 '회화적'인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면에 가득한 색은 따뜻한 노란색과, 그것과 대비되는 파란색, 그리고 벽면의 흰색.
난색과 한색, 밝음과 어둠이 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복잡하지 않은 형태들속에 알맞게 갖혀있습니다.
우리의 시신경은 어떠한 스트레스 없이 동공이 고루 작용하여
난색와 한색의 부드러운 하모니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조화로운 색과 단순한형태를 통해 다다르게 되는 그림의 내용.
아주 순한 방법으로 개별적인 언어는 필요없이
우리의 맘을 그림의 내용까지 다가가게 하는 묘한 방식이 숨어있습니다.
이 여인도 빛앞에 서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장치이면서, 은유입니다.
'파랑'과 '노랑'이 유사 보색이라는 색채학 지식을 빌지 않더라도,
어둠에 묻혀있는 배경의 지도와 여인의 색채는 어둠속에서 조용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미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바로 내가 그곳으로 가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박항률'과 '베르메르'와 함께,
다시 '하루키'를 만나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