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아기 떼어놓고 하루 봄바람에 취했어요.
남편이 하루 아기 봐준다고 나갔다 오라는데
6개월 아가에게 5개월까지 분유 먹여도 되냐고.
많은 분들이 찜질방 다녀오라고 성원해주셨는데,
찜질방은 못 가구요,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왠지 찜질방 가서 누워있기에는 안달이 날것 같아서...
금요일날 아침,
아침도 과일이랑 떡이랑 고구마랑 대충대충 먹고나서
부지런히 씻고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젖병이랑 분유랑 남편이 기억할 것 (이유식이랑 여러가지) 적은 종이랑 준비해놓고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남편 얼굴을 보니 이 남자, 겁먹었더라구요.
왜 안 그렇겠어요.
저도 친정 어머니 가시고 혼자 하루종일 남아있는거 무서웠거든요.
누군가의 보조로 아기를 보는 것과
혼자서 아기를 맡는 것은 천지차이죠.
다독여주고 아기한테도 손을 흔들어주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 우편함을 보니
마침 6개월용 분유 샘플이 도착해있는 거 아니겠어요?
얼른 가져다 주고 더욱 홀가분하게 내려왔지요.
(남편은 제가 아무래도 안심이 안되어 그냥 다시 온건줄 알았답니다.)
어딜 갈까?
가고 싶은 곳은 너무 많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마음에 걸려서
일단 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개점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더군요.
그릇 구경을 한바탕 해주고, 아기옷도 좀 봐주고,
지하의 화과자며 초콜릿들 구경하고 나서
바로 동대문으로 갔지요.
아기옷 사라고 받아놓은 봉투들을 야금야금 써버리기 전에
제 반팔 파자마랑 가디건 하나, 바지 하나,
아기 옷 몇 가지 샀어요.
첫번째 사진이 제 반팔 파자마 윗도리에요.
나달나달한 지난번 파자마, 며칠전에 빨래 개다가 갑자기 왜 이렇게 사나 싶어서 쓰레기통행.
그러고나니 잘때 입을게 없었답니다.
두번째 사진이 제일 평화 2층에서 산 아기 반팔 티랑 반바진데요, 두개 합쳐서 3천원 줬어요.
어차피 한 철밖에 못 입을 텐데, 물려받을 데도 없고 해서
대충 이런거 몇 개면 여름 나겠죠 뭐.
구경하고 싶은건 너무 많았는데 동대문만 돌아다니다 하루가 가면 아까워 하면서
다시 충무로로.
대한극장에서 '달콤한 인생'을 봤어요.
근 2년 만에 보는 영화지요.
올드보이가 마지막이었으니까요.
임신 3개월에 심한 하혈로 한 달 넘게 누워있다 일어나니 외출이 너무 겁나서
아무데도 못가고 지냈어요.
아, 김지운이 손대는 장르마다 일정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낸만한 거장은 아니니
영화는 의도적이건 아니건 빈 구석도 많고,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면 하나하나 핥아먹으면서 봤답니다.
이왕이면 자동차 경주영화가 있음 좋았을걸 하면서 음향을 몸으로 느끼면서.
이병헌은 괜찮은 청바지같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나 길들여놓으면 요모조모 쓸모가 많지요. 어디서나 자기 몫을 잘 해내고.
그러나 블랙타이 초청장이 왔을 땐 곤란하겠죠.
영화제에 데리고 갈 배우가 되긴 힘들겠어요.
김영철이 적절한 캐스팅이었는데 의외로 아쉽고,
황정민과 이기영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냥 뭐 멋져보이는 남자들의 바보같은 이야기죠.
암튼 이 느와르를 말그대로 달콤하게 보아내고,
옆 스타벅스에서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셨습니다.
얼마만의 커피인지, 얼마만의 스타벅스인지... 감개무량하더군요.
원래 커피광은 아니지만, 스타벅스 특유의 풍부한 맛 있잖아요. 지방이 들어간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몇 년전을 돌이켜 봅니다.
3년 전에도 충무로역에 자주 왔었어요.
중대 필동병원 다니면서 인공 수정하고,
성공인줄 좋아했는데 자궁외임신이라서 한쪽 나팔관이랑 난소 잘라내고
그러던 곳인데 이제 아기 보기 힘들다고 투덜대면서 쉰다고 영화보러 오게 되었네요.
사람 마음이 참, 잘도 흔들리죠?
그리고 다시, 양수리로 향합니다. (저, 정말 많이 돌아다녔죠?)
사실 집이 덕소거든요.
그만 집으로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아, 너무 아까워. 이 날씨!'
이런 멘트를 마음속 깊이 날리면서 그대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렸습니다.
날씨, 환상이더군요.
제가 사진을 못 찍어서 그렇지 강가의 나무들이 초록을 품고 있었어요.
그리고, 검은 흙 가운데서 고개를 든 수선화!
실제로 보면, 안에서 불이 켜진 것 같은 환한 초록과 노랑이에요.
강가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비싸다고 한 번 속으로 욕해주고)
마당에 놓여있는 그네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있으니
편하게 온 몸이 풀어지면서
마음이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더군요.
집에 돌아와보니,
우리 동현이가 활짝 웃습니다.
분유랑 이유식을 잘 먹었는데 좀 많이 토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늘 먹던 젖과는 달랐겠죠.
제가 없는 사이, 동현이는 되집기를 성공했다고 합니다.
뒤집기 이후 기기는 하는데 되집기는 전혀 기미가 없었거든요.
제가 없어도 아기는 크는군요.
암튼 하루 봄바람을 쏘이고 나니,
설겆이하면서 노래가 나오더이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접대성 발언 마구 날려줬는데,
이 남자는 알까요?
이제부턴 틈나는 대로 애 맡기고 나가서 놀아야겠다고
제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다는 사실을요.
월요일, 오늘도 할 일은 변함없이 쌓이는군요.
사진 예쁘게 못 올려서 가슴 아프네요.
수다가 길었어요.
유쾌한 하루 되세요.

- [키친토크] 완벽한 오전을 보내는 .. 19 2008-09-18
- [키친토크] 3돌을 맞은 동현이의 .. 30 2007-10-04
- [키친토크] 꿈틀이, 나비가 되려는.. 8 2007-05-11
- [키친토크] 우정의 무대 17 2006-07-18
1. 오이마사지
'05.4.11 1:08 PM부럽부럽!!
전 목욕탕도 못가요,, 아가 재워놓고 목욕탕가라는데,,
아가 겨우 재워놓고 나면,,신랑이 없어요,, --;;2. 안나씨
'05.4.11 3:18 PM글귀 하나 하나가 맘에 와 닿네요. 그런데 혼자 다니셨나요? 저도 하루쯤 밀크티님처럼
봄바람에 취해봤음 좋겠네요.3. 사랑해아가야
'05.4.11 4:40 PM - 삭제된댓글정말 하루동안 많이도 다니셨네요 ^^ 아우~ 넘 부럽고 대단하시네요 하루동안... 전 저번주에 무심한 남편한테 무지 화내고 울고 그래서 울남편 쩌끔 반성을 했는지 아니면 당분간만 잘하기로 했는지 주말에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알아서 아기도 봐주고해서 혼자서 홀짝홀짝 커피마시면서 책을 읽는 오랜만에 여유를 갖었습니다 정말 배려심이 깊으신 남편덕분에 좋은 하루 보내셨네요
4. 밀크티
'05.4.11 4:45 PM오이마사지님, 저는 아가 재우는 사이에 일을 시켜 놓아요.
다하면 놀라고 하고, 금방 다못할 만큼 여러가지를. 완전 밭매는 콩쥐죠.
그 사이에 도망가면, 묶어놓을 거란걸 알기 때문에^^ 나와보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안나씨님, 혼자 다녔어요. 친구들 불러내기도 복잡하고, 아무래도 움직이기 번거로울 것 같아서요.
오늘도 날씨 정말 좋은데요.5. 밀크티
'05.4.11 4:49 PM사랑해아가야님, 님 말씀처럼 버스타고 낯선 동네 탐험하고 싶었는데요.
마음이 여유롭질 않아서 아쉽더라구요.
배려심이 깊긴요, 82에 올라온 닭표시 글중 아내편은 빼고 남편들 닭짓만 선별해서 읽힌 결과입니다.
이거 쓰는 사이에 놀이방 매트 밖으로 기어 나왔군요. 장판을...빠네요. ㅡㅡ;6. 크리스
'05.4.11 11:41 PM저도 오늘 시오마니께서...아가를 봐주셔서 콧바람 좀 쐬고 왔어요. 만날 친구도 없고 갈곳도 시간이 마땅찮아서 백화점만 휘 돌고 왔네요. 저도 아가옷사러 남댐갔다가 헛수고 하고 왔는데 제평이 낫나봐요? 좌송하지만^^ 그 가게에(대략 어딘진 알거든요) 바디수트 스탈이나 원피스 이쁜건 없던가요?...아가 썬캡이나 챙모자도요~
7. champlain
'05.4.12 2:17 AM글을 잘 쓰시네요.
님과 함께 나들이 다녀온 기분입니다.^^
귀하게 얻은 동현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래요.8. 밀크티
'05.4.12 9:57 AMchamplain님 그런말 첨 들어요. 감사합니다.
크리스님, 솔직히 싸긴 한데.이쁘진 않았어요.
반팔 바디수트는 몇가지 있었고, 이쁜 원피스는 못봤는데,
저는 3층은 못갔으니까 거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긴팔이랑 섞여서 아직 물건이 어중간할 시기인가 봐요.
저두 썬캡 찾다가 제평이 닫기 시작해서, 결국 두타 6층 모자 전문점으로 가서 샀는데요.
3천원짜리 머리띠형운 아직 못할것 같아서 챙이 부드러운 걸로 했답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날짜 | 조회 | 추천 |
---|---|---|---|---|---|
2409 | 앵두꽃 ⊙⊙ 2 | 보노보노=3 | 2005.04.11 | 994 | 12 |
2408 | 장평저수지의 봄 9 | 남해멸치 | 2005.04.11 | 1,195 | 12 |
2407 | 얼마만이야??반가워~~^^ 4 | 사유리 | 2005.04.11 | 1,476 | 9 |
2406 | 저희 아가예요 14 | 트레비!! | 2005.04.11 | 1,550 | 17 |
2405 | 각기 다른 나무입니다 6 | 김선곤 | 2005.04.11 | 1,093 | 14 |
2404 | 아기 떼어놓고 하루 봄바람에 취했어요. 8 | 밀크티 | 2005.04.11 | 1,195 | 16 |
2403 | 전시회 소식-갤러리 현대 창립 35돌 기념전 5 | intotheself | 2005.04.11 | 1,088 | 18 |
2402 | 간이역2 2 | 엉클티티 | 2005.04.11 | 1,245 | 36 |
2401 | 간이역.... 4 | 엉클티티 | 2005.04.11 | 1,134 | 39 |
2400 | 한방영양제의 놀라움.... 4 | 도빈엄마 | 2005.04.11 | 1,614 | 13 |
2399 | 낙안민속촌 도예방 5 | 여진이 아빠 | 2005.04.11 | 1,337 | 26 |
2398 | 봄이 찾아왔어요!! | 하루하루 | 2005.04.11 | 960 | 30 |
2397 | 주워온 책상 5 | 엘리스맘 | 2005.04.11 | 1,958 | 40 |
2396 | 봄 향기 가득한 길목, 양평 - 향기가 느껴지네요.^*^ 2 | 강정민 | 2005.04.10 | 1,229 | 16 |
2395 | 가족신문 '박가네 소식' 창간호- 12 | 김혜진(띠깜) | 2005.04.10 | 2,245 | 15 |
2394 | 33한 꽃밭 7 | 남해멸치 | 2005.04.10 | 1,474 | 10 |
2393 | 꽃구경 4 | 로즈마리 | 2005.04.10 | 1,227 | 19 |
2392 | 두명의 천재와 살다간 `김향안`추모전을 보고 3 | blue violet | 2005.04.10 | 1,542 | 12 |
2391 | 새롭게 만나는 후앙 미로 5 | intotheself | 2005.04.10 | 1,412 | 15 |
2390 | 징광 다녀왔어요... 3 | namsanlady1 | 2005.04.09 | 1,199 | 14 |
2389 | 섬진강 동해마을 벚꽃~* 10 | 왕시루 | 2005.04.09 | 1,394 | 21 |
2388 | 벚꽃, 제대로 보시렵니까? 23 | gloo | 2005.04.09 | 2,657 | 16 |
2387 | 놀라운 자연농업 4 | 도빈엄마 | 2005.04.09 | 1,168 | 10 |
2386 | 4/5일 어린이대공원에서 아들내미들 저러구들 있네요 1 | 러브홀릭 | 2005.04.09 | 1,328 | 8 |
2385 | 페루 여행기 - 열번째 이야기 3 | 첫비행 | 2005.04.09 | 1,362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