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에이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반해서 들을만한 곡들을
모아 놓은 앨범인데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거나 쓰고 있으면 평화로운 기분이 저절로 느껴지는
좋은 음반입니다.
이 음반을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peacemaker님이 생각납니다.
요즘에는 줌인 줌아웃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한번도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궁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음악을 통해서 마음을 주고 받았다고 느껴서 그럴까요?
가끔씩 소리를 듣지 못해도 음악을 소개하는 글을 만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제 낮,그리고 오늘 아침에 가우디에 관한 글을 두 편 썼는데
그 글이 이상하게 마지막 순간에 다 날라갔습니다.
참 허망한 느낌이 들더군요.
사이버 공간이란 그렇게 휘발성이 강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도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던 순간의 느낌
casa mila를 보고 있던 순간의 느낌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기분이 다시 동하면 무엇인가 쓸 수 있겠지요?
아침 시간 설겆이를 마치고
아들이 수학 숙제를 하는 옆에서
음반을 틀어놓고 그림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함께 보실래요?

라이오넬 파이닝거인데요
미국에서 태어난 독일화가로 큐비즘을 거쳐서 표현주의로 돌아선 화가입니다.

카니발이란 제목인데요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같은 느낌이지요?


어제 산 소설이 한 권 있습니다.
김탁환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이라는 긴 제목의 글인데요
그 소설에서 작가는 서포 김만중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모독(매설가 이름이지요)이 스승으로 삼는 졸수재 조성기를 찾아서 청학동으로 갑니다.
그런데 스승은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지 않는 법을 가르치더군요.
무엇을 쓰지 말 것인가를 알아야 진정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
한참을 책에서 눈을 떼고 그 대목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꼭 소설을 쓰는 일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연히 알게 된 한 소설가로 인해
현실에서의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조선시대의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고 있는 요즘
한 시대가 옳다고 선정한 기준을 넘어서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중심이 있으면서도 그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기준을 버리고
새로 세울수도 있는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끌리고 있는 중이지요.


peacemaker님
제 메일 주소를 남깁니다.
intotheself@yahoo.co.kr
간단한 쪽지 글 말고
호흡이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서요.
살아가는 이야기,좋은 음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