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어제 다 못보고 잔 (영화를 보다가 피곤해서 자는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 같아요.그러니 아무도 무엇에 대해서 장담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지요? )
장미의 이름을 마저 보았습니다.
신앙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라는 윌리엄 수사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비록 신앙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가 무엇이 옳다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너무나 굳게 믿게 되면
다른 것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거나
다른 것을 새롭게 보는 눈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호르헤 신부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서 웃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마치 웃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이 없어져서
악마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고 신에게 귀의하는 사람들에게서
신을 믿을 근거를 뺏어간다고 생각해서
희극론에 독을 묻혀서 그 책을 읽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신부입니다.
그는 주장하더군요.
지식은 보존되는 것이지 탐구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물론 그것이 옳은 주장은 아니지만
사실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이미 주어진대로 사는 경우가
탐구하고자 하는 열의보다 더 강한 것은 아닌가
그런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한 편 보는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하기 전의 막간에 그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보던 르노와르
먹을 것을 사러가는 바람에 끝까지 다 제대로 못 봐서
오늘 다시 한 번 보는 중입니다.
이 그림은 르노와르의 자식이 노는 모습을 그린 것이로군요.
어제 본 댄스가 시티 댄스이고요
오늘 보는 댄스는 시골 댄스입니다.
대조해서 보면 더 재미있는 그림보기가 되겠지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shall we dance? 가 떠오르네요.
저는 몸이 뻣뻣해서 춤을 추는 일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보는 일은 아주 좋아합니다.
물론 댄스홀에 가서 본다는 의미는 아니고
영화에서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하는 것이지만요.
그 영화말고도 춤이 소재로 나오는 영화들이 많지요.
center stage,save the last dance, tango lesson. let it be
tap tap tap,살사,
언뜻 생각나는 제목만 적어도 이런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저는 못해도 아이들 세대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몸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로 자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가끔 있지요.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안에서 나를 억압하는 기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즐기지 못하고
늘 의미를 추구하는 삶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
그 속에서 혹시 그것이 더 상위의 개념이라고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마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그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있으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물어보더군요.
선생님은 무엇이 제일 무섭냐고요.
지금,아니면 나중까지 합쳐서?
다 합쳐서요.
치매가 오는 것이 제일 무서운가?
선생님은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왜?
책을 많이 읽으니까요.
그런데 철학자도 치매에 걸린 사람이 있어.
아이리스요?
너 어떻게 아니?
영화에서 보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한참 치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치매만이 아니라 무엇이 무서운가에 대해서도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 질문이 마음속에 떠다녔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고 사는가...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살며시 웃음이 나네요,
이런 편한 자세로 글을 읽는 이 아이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상상도 하게 되고요.
요즘은 새로 사서 읽는 책과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작업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은 서양 중세의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나에 대한 이론서를 다시 읽었는데요
예전에 조금 어렵다고 느끼면서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다른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지요.
그 사이의 세월이 그냥 흐른 것이 아닌 것을 알겠더군요.
더 세월이 지나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찍어둔 책이기도 합니다.
르노와르 그림을 많이 모아놓은 싸이트에 와 보니
제가 알고 있었던 르노와르란 얼마나 일면적인 것이었나를 알겠네요.
그래서 새로 보는 즐거움에 빠져서
계속 그림을 클릭해보게 됩니다.
이런 그림 참 인상적이로군요.
그가 그린 풍경화에 눈길을 준 토요일 밤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