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여행을 가기 시작한 것이 벌써 15년,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있습니다.
일년에 공식적으로 쉬는 날의 거의 없을 정도로 일을 하다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일인가 회의가 들던 무렵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던 막내 동생의 초대로 처음으로 나가 본 바깥 세계에서 받은 충격으로 전공과는 무관한 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은 무엇이 전공이고 무엇이 취미로 보는 책인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세월을 살고 있네요. 계기는 아주 사소했어도 그것이
세월의 무게와 더불어 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미리 정하고 그 울타리안에서만 사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열어 놓고 들어오는 것
나가는 것 넘나들며 사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집니다.
당시 그렇게 저를 청했던 동생은
그 한 번의 여행이 제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물론 몰랐겠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리 결과를 점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 그러니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 이미 정해진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문을 열어보는 것
문을 열어보고 나서 그 다음 어떻게 가게 될지도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나서서 미술관앞에서 주리를 틀던 두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다시 한 번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에는 아직도 맛을 들이지 못한 아들, 그 동안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혼자서도 이런 저런 나라에서 그림을 보고 다녔던
딸, 뉴욕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딸의 친구, 이렇게 일행이 되었다가 흩어졌다가 하게 될 네 명이서 어떤 식으로 여행을 하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보람이가 엄마를 배려해서 동생이 미술관에 가고 싶어하지 않을 경우 친구랑 셋이서 함께 다니겠노라고
그러니 엄마는 가고 싶은 미술관은 다 혼자서 다녀도 된다고 해서 크게 마음으로 도움이 되고 있네요.
그림 보는 것 이외에 2012년 1월에 지혜나무님의 강의로 만나게 될 현대건축사의 사전 답사가 될 거리에서의 건축물 보기
그리고 역사시간의 생생한 수업을 위해서도 제대로 보고 싶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움의 역사 유물 보기, 그리고 가능하면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물 보는 것까지, 그리고 거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기, 미리 예약한 빌리 엘리어트 이외에 현장에서 만나는 음악과 춤을
기대해보는 것, 목요일 수업 함께 하는 안희경씨가 제게 선물로 준 뉴욕 오감이란 책에서 만난 어린이 서적 중고 서점을 찾아가서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구하는 것, 그 이외에도 제대로 된 서점에 가서 반 나절 정도 구경하기,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함께 먹어보기도 일정에 넣고 있지만 모든 여행은 일정대로 되지 않고 동시에 일정을 넘어서 새로운 것과 우연히 만나기도 하는 법이니
나머지는 그저 열어두고 떠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배드민턴 치는 것을 쉬기로 해서 수요일 낮, 조금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가방을 미리 싸고
그래도 미심쩍은 것은 메모를 해 둔 다음, 여행가는 기념으로 고른 그림은 헬렌 프랑켈탈러입니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자들의 그림을 현장에서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 화가이기도 하고요.
구스타브 두다멜 지휘의 봄의 제전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그림과 소리의 불협화음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수요일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