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일요일이라면 독일어 수업을 하고 나서 쫑마마랑 걸어가면서 이야기하다가
길에서 헤어지고 운동하러 갈 시간, 아무래도 오늘까지는 집에 와서 쉬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걸어 들어오는 길
샛노란 은행나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수북합니다.
해마다 같은 시기에 아프면서 이제 다시는 이제까지처럼 에너지가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의 기온이 내려가서
힘이 들었는데 그래도 이번 가을의 몸살은 심리적으로는 덜 한 충격을 받은 것 같네요. 그래도 역시 약과 더불어 너무 자고 또 자서
머리가 멍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몸과 이성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근대적인 패러다임이 과연 가능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역시 아픈 시기입니다.
그동안 지나치게 쌩쌩하게 하루를 진하게 사는 동안에는 못 느끼다가 몸에서 올라오는 에너지가 부족해서 조금만 무슨 일을 해도
지치는 시기에 우리의 정신은 몸 그자체를 반영하는 것이로구나 너무나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되니까요.
막상 집에 돌아오니 쪽잠을 자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오랫만에 듣고 싶은 음반을 걸어 놓고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는데요
역시 소리가 듣고 싶다고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니 일단은 회복기에 들어온 것은 확실하네요.
하루를 거의 이틀분량의 시간으로 살아온 제겐 그나마 다행인 것이 아파도 먹고 싶은 욕구가 사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단 것이 먹고 싶다거나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고 몸이 원하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아픈 시기를 넘기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아는가 이구동성으로 말을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다는 사람,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난다는 사람, 그 때 그 때 다르다는 사람들, 여러 부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러고보면 오랜 세월 제겐 식욕이 없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기분에 오래 잠긴 적이 거의 없었구나
고개 끄덕이면서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치지 않는 식욕이 놀랍기도 하고요.
음악을 듣다보니 저절로 뒤러의 그림을 저장해 놓았던 것이 떠오르고, 그림을 소개하고 싶어지네요. 무엇인가 쓰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역시 좋은 현상이지요. 사실 아프게 되면 그 와중에서는 무엇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막상 그런 생각을 해도 그럴 기력이
좀체 생기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도 자신의 몸 상태가 가늠이 가능하거든요. 말하고 싶은 욕구와 읽고 싶은 욕구,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
이런 순으로 사라지고 거꾸로 순으로 욕망이 생기면 드디어 회복이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터득하게 되었답니다.
거의 열흘 동안 삶의 공백이 생긴 기분인데 이 시기를 그동안 혹사한 몸에 대한 배려의 시기라고 고맙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그래도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동안 공백이라고 해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기록하고 싶은 일, 남과 나누고 싶은 일, 그런 일들은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다시 수다방을 연 기념으로 고른 뒤러의 그림 함께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