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름대로 열심히(아직 키톡에 데뷔조차 하지 못한 결혼 9년차 날라리 주붑니다, 제가.)준비했는데
울 신랑이 저녁을 먹고 들어왔어요.
여러 가지로 저와 다른 점이 많은 남편이지만 먹는 걸 좋아한다는 원초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단
전 매일이라도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데 울 남편은 잔치국수같이 가는 면발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대요.)
한참 다이어트에 목 매달 때도 점심을 비스켓이랑 커피로 떼우자는 친구들을 절대로,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요.(커피는 커피대로 따로 마셔줘야죠, 그쵸?)
몸무게가 20킬로그램 미만이었던 10살 이전을 제외하곤 입맛이 떨어졌던 시기는 딱 한 번, 오랜 진통 후
에 애기 낳았을 때가 유일해요.
그땐 정말 1주일 정도 밥알이 모래 씹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1주일 만에 10킬로가 그냥 쑥 빠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니까요.(얼마나 살이 많이 붙었으면 그랬
겠어요? 날씬한 분들은 상상도 안 되실 거예요)
모든 이들이 입맛이 떨어진다는 여름철에도 최소한 행동반경을 줄여 이것저것 먹어대니 오히려 살이 더
쪄요.(과일, 채소 흔하지요, 냉면, 메밀 소바, 냉커피, 아이스크림 시원하지요, 이열치열이라고 삼계탕, 설
렁탕, 매운탕 종류도 가끔 먹어줘야 하고, 몸 축나니까 장어 같은 보양식까지...)
게다가 맥주와 치킨이 필수인 월드컵까지 다가오니 슬슬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책 속에 먹는 얘기가 빠지면 전 그렇게 심심할 수가 없더라고요.
팥 앙금 빠진 단팥빵처럼 말이에요. 예를 들어 박완서님의 소설 [그 남자네 집]같은 경우도요.
거기서 음식 얘기를 뺀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어
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또 송혜근의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같은 소설에서 대화 중 음식 얘기를 빼면 소설 자체가 전개될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양귀자님의 [부엌신]같은 책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김혜경님의 [희망 수첩]역시 먹는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가족 간의 사랑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녹인
거잖아요.(더 나아가서 요리하는 것 보다 요리책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들도 의외로 많아요.
여러분들이 많이 좋아하시는 작가 공지영님도 그렇다네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키톡에서 성석제의 [소풍]이 좋다고 하셔서 저도 구입해 놓았던 책을 읽었어요.
정말 추천대로 좋더라고요.
기존에 제가 작가 성석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대하지 않았
던 소개팅에 나갔는데 진짜 선수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좋게 말하면 너무 글을 잘 쓰시고 나쁘게 말하면 잘난 척하는 남자처럼 정곡을 찌른다고 할까요,
하여튼 제 취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출판되는 책은 대부분 찾아 읽을 만큼 재미와 감동 부분에
는 항상 좋은 점수를 주고픈 작가였지만 제 소장 리스트에서는 번번이 미끄러지기 일쑤였어요.
근데 이 책은 일단 표지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예뻐요.
또 소설가라는 직업적 특수성을 살려 전국방방곡곡에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어
요.(그렇다고 해서 전화번호나 약도 같은 것이 주를 이루는 맛 찾아 길 찾아 하는 음식점 순례 책은 아니
에요.)
소설가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독자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잖아
요.
몇 년씩 그 분야에 뛰어들어 몸으로 체험하기도 하고 취재를 위해서는 산골 오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
고요.
음식 만들기나 바느질 등 평소에 남자로서 해 보지 않았던 분야도 쪼잔함(?)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접근
해야 할 거구요.
그래서일까 이 책을 보면 기존에 성석제 글 속에서 느껴지던 마초적인 분위기가 많이 보이지 않아요.(실
제 성석제님의 성격은 잘 모릅니다. 그저 제가 읽은 느낌에 말씀 드리는 거예요. 실제 성격은 말이 적고
조용하시다더군요.)
맛있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오갈 수 있는 정담처럼 푸근하고 즐거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라는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가 하루
세 번 행하는 행위의 아름다움, 음식의 미학에 푹 빠지실 거예요.
또 잊었던 맛을 떠올리며 보너스처럼 찾아든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도 있고요.
화창한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떠나는 즐거운 소풍처럼 말이에요.
이 책과 함께 읽을 만한 책 한 권, 황석영님의 [맛과 추억]을 소개할게요.
개인적으로 제가 더 좋아하는 책이고요, 어려운 시절을 경험한 전후 세대로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이 더 가슴에 와 닿으실 거예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여자가 해야 할 일과 남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확실한 이분법의 잣대를 가진 사람은 글을 쓸 자격이 없
다고요.
스스로 밥이나 청소, 빨래 같은 살이에 꼭 필요한 허드렛일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삶을, 나아가
서 복잡한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삶의 대부분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허섭 쓰레기 같은 일상으로 채워지잖아요.
어머니의 손맛을 단순하게 기억하여 적기 보다는 적어도 흉내를 내어보려는 시도 정도는 해 보는 것이
작가의 도리가 아닐까요?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역사의 큰 순간도 놓치지 않고 글로 남겨 후대에까지 큰 교훈과 감동을
주는 대작가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보았습니다.
이 책에 사람은 고생하던 시절에 늘 결핍을 느끼며 먹던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가슴에 와 닿았어요.
살면서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느꼈던 것도 어린 시절, 과자나 음료수 같은 미식이 흔치 않던, 조금은 어
려웠던 때였던 것 같거든요.
할머니가 맷돌로 갈아 만들어 주시던 녹두 빈대떡, 화롯불에 구워 주시던 군밤, 겨울날 연탄난로 위에 얇
게 썬 고구마를 올려놓고 익기를 기다리던 지루한 시간들. 또 묵은 김장 김치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양은 냄비에 볶아먹던 김치볶음밥 등등 조금은 촌스런 맛이 아직도 침이 고이는 순간으로 기억돼요.
이 후에 고급 레스토랑이나 값비싼 식당에서는 재연하려고 할 수 없었던 황홀한 한 때기도 하고요.
잃어버렸던 맛의 기억들을 되살리는 저자의 맛깔스런 글 솜씨는 읽는 내내 잔잔한 추억 속에 빠져들게 해
요.
또 전국 각지와 해외를 여행하면서 얻은 산지식과 감옥이라는 삶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도 음식을 만들
어 먹는 여유를 지녔던 작가의 체험이 뜨거운 밥 한 그릇처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져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함께 나누는 식사의 즐거움이
메말라갈 때마다 한 번씩 다시 읽고픈 책이에요.(솜씨 좋은 분들! 이 책에 나오는 음식의 정확한 레시피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