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작가 박범신의 [남자들 쓸쓸하다]입니다.
제목만 듣고 진저리를 치시며 본인이 더 외롭다고 주장하실 분들, 많으실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사실 전업 주부인 저보다는 밖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우리 남편이 덜 외롭겠지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은 늘 곁에 있는 남편이 아니라 이제 노인으로 늙어가는
우리 아빠랍니다.(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저희 남편도 시아버지께 아빠, 아빠 하는데 참 듣기 싫
어요. 그런데 정작 저도 고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아빠. 이제 갓 환갑을 넘은 62세셔요.
이미 세 명의 손주를 둔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나가서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거 무지 싫어하시는 한국
의 평범한 아저씨이자, 한 집안의 장남이십니다.
가난한 농사꾼의 맏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제껏 살아 오셨어
요.(자수성가까지는 아니지만 세 딸을 무리 없이 키워 둘을 시집보내셨으니 그렇게 실패한 인생도 아니지
요?)
달랑 큰 아들 하나 교육시켜서 밑에 동생들 줄줄이 공부시켜, 시집 장가 보내게 하는 것이 얼마 전까지
도 우리 사회의 관습 아닌 관습이었잖아요?
저희 집도 막내 삼촌이 저보다 9살 연상이라 거의 같이 학교 다니면서 컸답니다.
삼촌이 국민학교 5학년때부터 이십대 후반에 장가들 때까지 군입대 시절을 제외하고 한 집에 있었고요.
그 위에 고모 둘도 시집가기 전까지는 우리 집에 있었어요.
철없는 동생들이,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과도한 요구를 할 때마다 우리 엄마 참 힘들어 하
셨어요.
아빠보다는 많이 풍족하게 사시다가 결혼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많이 힘겨워 하셨지
요.
아빠에게 바가지 많이 긁으셨고요, 우리 셋 키우느라 너무 힘들어서 저희에게 환히 웃어줄 힘도 없으셨
대요.
그런 엄마랑 부부싸움을 하시면 우리 아빠, 백전백패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억울하기도 하고 아빠도 엄마 못지않게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땐 몰랐어
요.
곱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살과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세 딸 때문에 참 외롭고 쓸쓸하
셨을 우리 아빠 마음을요.
사실 엄마와 딸 사이는 아웅다웅 해도 동성으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실생활에서 엄마한테 잘 보여야
이로운(?) 부분이 많으니까 자연 엄마에게는 잘 하게 돼요.
근데 저희 아빠는 조금 반항을 해도 혼을 내거나 엄마처럼 삐지지 않으니까(?)더 함부로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아빠! 죄송해요.)
딸 셋이 모두 엄마 편이라고 친척들이 아들을 낳기를 종용했지만 셋 키우기도 버겁다고, 또 위에 딸들한
테 미안해서 안 된다고 할아버지 할머니 압력에도 우리 셋만 보셨는데, 어느날 문득 바라본 아버지의 모
습이 참 많이 늙으시고 쓸쓸해 보이네요.
물론 엄마도 맘고생, 돈고생, 자식 걱정 하느라 너무 많이 늙으셨지만 주위 친구분들도 많고 모임이며 봉
사 단체 등등으로 하루 해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바쁘게 지내시거든요.
엄마랑은 여행도 함께 다니고 여러 가지 추억을 많이 쌓았지만 아빠에게는 해드리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러다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슬그머니 걱정이 됩니다.(요즘 당뇨 때문에 살도 많이 빠지시
고 피부, 눈 등등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이 하나둘 나타나세요.)
정말 우리 아빠는 늙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맏이기 때문에 아빠가 군복 입고 예비군 훈련 가시
던 것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거든요.(울 신랑이 민방윕니다.)
사춘기 때도 약간 삐딱한 시선을 가진 저랑 보수적인 아빠랑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사회의 불만을 전
부 아빠 탓인 양 몰아대었고, 아빠 또한 그 부분에 있어선 져주지 않아서 집안이 싸늘한 공기로 감싸일 때
가 적지 않았어요.
또 엄마와 아빠 다투시면 100% 엄마 편만 들었습니다.
거의 엄마가 옳기도 하셨지만(제가 볼 때는) 엄마 편 안 들면 저희 버리고 당장이라도 집을 나가실까봐
두려웠거든요.
아빠는 아무리 섭섭하게 해도 절대로 마음에 끼이지 않으리라는 이상한 믿음 때문에 오랜 세월 아빠 혼
자 외톨이를 만들었네요.
평생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고 살아오신 시아버님을 생각하면 우린 아빠의 인내와 희생을 빨아먹으며 기
생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납니다.
이제라도 아빠의 친구가 되어 드리고 싶은데 해보지 않아서 미숙하기만 해요.
얼마 전에 아빠랑 할머니랑 우리 아가랑 코스트코에 간 적이 있어요.
아빠가 할머니께 “물건 많지요? 사고 싶으신 것 있으면 다 골라 보세요. 사드릴게요.”그러시는 거예요.
속 좁은 나,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일렀답니다.
아빠 눈에는 할머니만 보인다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빠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아빠 맘에 어찌 자식이 소중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존재가 참 서글프고 짠했겠지요.
아빠가 가끔 농담처럼 그러세요.
너희는 엄마라면 벌벌 떨면서 왜 우리 엄마 좋아하는 건 이해 못하냐구요.
그래요, 이젠 쓸쓸한 아빠를 제가 안아드릴래요. 저희 곁에 계실 동안이 얼마가 허락될지 모르지만 사시
는 동안 너무 많이 외로워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명 깊게 읽은 부분들을 적어 보았어요.
우리에게 가장 마지막 희망은 사랑이고 그 원천은 화목한 가정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필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동류항으로 묶이면 서로 이해 못할 것
이 없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든 남편과 아내의 관계든 간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만나야할 지점은 인간의
자리이다. ‘거울 앞에 돌아온 내 누님 같은 꽃’이 되어 만날 때, 그 눈물겹고도 따뜻한 자리에서 만날 때,
최종적으로 붙들어야 되는 이름은 인간뿐이다. 인간의 얼굴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랑도 다 소용없다.
사랑으로 나눠야 할 것이 있다면 맛있는 과실이 아니라 마음 아픈 ‘상실’이자 ‘결핍’이다. 자식의 참된 결
핍을 보지 않는 어버이의 권위가 어찌 통할 것이며, 어버이의 상실과 결핍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 자식이
어찌 어버이의 ‘과실’을 누릴 것인가.
성의 관점으로만 보면 삶이 턱없이 좁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