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쉬어 본적은 없는데 애들 이사 도와주고 나름 큰 일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있었는지 며칠 끝없는 잠에 빠져들며 몇십년동안의 피로를 다 해소하는 듯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나니 그동안 못봤던 사람들이 죽은 줄 알았다며 한번 만나자는 제안에 늘 미루기만하다 이번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흔쾌히 만나 회포를 풀다보니 정리도 뒷전이었습니다
하루 하나만이라도 꼭 버리자! 가 처음 생각이었는데 어떤 날은 왕창 버리고 어떤 날은 이렇게 손도 못대고 지나는 날도 있지만 하루한가지 버리기는 가슴에 꼭 새겨서 오늘처럼 다시 한가해진 날에는 이틀치 못버린것까지 작정하고 정리하게 됩니다
솔직히 그냥 버리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 버릴 물건을 골라내는 과정이 상당히 피곤한 일인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정리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걸 피하기위해 넘어가기도 하고 어제그제처럼 육신이 피곤한 날도 넘어가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면 굳이 꼭 해야하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두달이 넘어가니 어지간한 물건들은 정리가 되어 정리한 공간에서 다시 치워야할것을 찾기도 하고, 애들짐을 각자의 공간으로 보내주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자기대로 옷장정리를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남편 옷장에 치워야 할 옷들이 많았는데 지난번에 양복 잠바 같은 덩치큰 옷들은 다 버리고 오늘은 속옷 서랍장을 정리해줬습니다
먼저 속옷을 택배로 부르고, 도착하자마자 지난 속옷은 모두 버리고 새로 받은 속옷으로 채워줬습니다
딱 5개씩만 사서 그걸로 빵꾸가 날때까지 쓰라고 했습니다
제가 남편 옷장 정리해준적이 없어서 오래된 속옷, 양말들이 버리지 않은 채 마구 뒤섞여 있어서 싹 다 치우고 5개로 생활하라고 하니 남편도 홀가분한 마음일 겁니다
남편은 육아도 가사일도 참여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인데 자기 몸 조차 와이프가 챙겨주지 않으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는데 거지꼴로 살게 내버려뒀더니 그냥 그대로 쭉ㅡ그렇게 살 기세더라구요
그나마 나이들어 쫓겨날 위기에 처하니 밥 빨래는 본인이 합니다. 본인꺼만
저는 잔소리 하는것도 듣는것도 싫어하는 성격이다보니 남편이 어떻게 살든 잔소리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힘든날은 밥도 못하고 집안이 엉망인채 있고, 어쩌다 괜찮은 날은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이 모든걸 남편이 양심껏 같이 하면 좋은데 그걸 안하더라구요
저는 바쁘고 집에 밥이 없는 날이 많아지니 자기 스스로 자기 밥은 해 먹더라구요
차마 밥이 왜 없냐..이 소리까진 못하는거죠
그랬다간 말없이 제가 나가버리거나, 니가 나가면 좋겠다.소리 나와도 할말이 없었을테니까
남편이 하는밥은 제 입맛에 안맞아서 저는 못먹고 남편만 먹습니다
가끔 제가 집에서 요리할땐 남편도 같이 먹지만 그건 가끔이구요
이렇게 우리부부는 눈치껏 각자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자기 생활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각별하게 사이가 좋은것도 아니고, 싸울일은 전혀 없고, 있는듯없는듯, 남편피셜 우린 잉꼬부부 제 피셜 한집안 졸혼부부..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 속옷서랍장 하나 정리해준것도 남편은 와이프가 자길 사랑하니까 해주는거라 믿고 저는 구질구질해서 해주는건데 이러나저러나 자기 편할대로 해석해서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굳이 반박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삽니다
태풍 오면 길냥이 밥 굶을까봐 이틀치 챙겨 줬더니 역시나 하루만에 다 먹긴 양이 많았는지 많이 남겨 있어서 까마귀 밥그릇에 옮겨 놓고 길냥이는 새 사료로 챙겨줬습니다
여전히 미리 와서 절 기다리는데 언뜻 제 남편과 오버랩 될때가 있습니다
길냥이도 절 기다리기만 했지 저를 도와주는건 하나도 없는데 저는 왜 떨쳐내질 못하는가..
길냥이나 남편이나..
남편에게 길냥이의 귀여움은 1도 없지만 순수함은 봐줄만하니 여태 사나부다..
맹렬히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확 기가 꺽였고, 우리도 좀 더 겸손해진 마음으로 남은 여름을 지날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