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이야기
어제는 마늘을 잔뜩 넣고 닭 한 마리 하얗게 삶았어요.
오늘은 남긴 살을 잘 발라 미역을 넣고 국을 끓였지요.
바다의 누이 같은
부드러운 미역, 수런거리는 미역이 품었던 해수를 마저
내놓아
국물은 심심하니 좋았어요.
그런데 왜 국그릇이 울먹이는 걸까, 한 수저 한 수저 앳된 누군가의
눈물을 덜어 목구멍에 흘리는 기분일까.
한 수저 한 수저 침묵을 계량하는 이 이상한 기분. 생략된 인칭들이
양육하는 우리들의 뚱뚱한 안녕.
국 한 그릇의 창백한 침묵 속엔 피 묻는 깃털무덤. 오늘 하루 도축된
그이들 눈물이 감당하는 인간의 식탁에서
그림자 한 장 꽂힐 수 없이 촘촘치 재배되시어 절두절족 피의 예절을 거쳐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매끄럽고 명랑한 누드로 다시 태어나시어
바코드가 생성된
뼈가 빠지고 항문이 빠지고 눈 코 입 다 지워져 뭉치로 탕진되시는
구구구, 발바닥도 없이
저기, 주검이 생활인 눈먼 신 몰려오시네. 냄비 속에 들끓는
눈보라의 형식으로.
...
금요일에 초복이라 삼계탕을 끓이려고 생각하고 식탁에 앉아
최근에 시집이 나온 조정인의 책을 뒤적였어요.
국 이야기라는 시에 눈이 갔어요.
시를 읽고... 결국 삼계탕은 패스했습니다. ㅋ
뭐 조만간 다시 닭은 먹겠지만 고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