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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마음의 통로

| 조회수 : 1,776 | 추천수 : 166
작성일 : 2009-10-17 00:37:26
우리 집 막내의 가장 큰 걱정은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자기보다 언니들을 더 예뻐하면 어쩌나 이다. 제 딴에는 아무리 봐도 언니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어보이고 힘도 부치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틈만 나면 달려와서 "누가 제일 예뻐요?"라고 물어오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큰 아이는 덜하지만 둘째와 세째도 늘 다른 형제에게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빼앗길까 조바심을 하곤 한다. 행여라도 다른 형제를 칭찬하면 저만치에 있다가도 달려와서 자기와 비교를 해보이곤 한다.

형제가 없이 자란 나는 형제 간의 갈등이나 경쟁에 대해서는 아는 부분이 적다. 주위의 친구들을 통해 편애로 인한 상처에 관한 얘기들을 전해들은 일은 있어도 내 자신이 부모의 편애로 마음 상해본 기억은 없다. 오히려 나 혼자에게 집중되는 엄마의 때로는 지나친 관심때문에 갑갑하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은 많이 있다.

사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남편은 우리 집의 막내만큼이나 형과 누나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자라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나니 형은 어린 나이부터 집안의 기둥이 되어 대접을 받게 되었고 큰 누나는 장녀이니 마찬가지로 어깨가 무겁게 자라났다. 밑으로 태어난 작은 누나와 남편은 위의 형과 누나보다는 다소 덜 관심을 받으며 자라면서 나름대로는 불만도 있었나 보다.

나도 처음에는 팔이 안으로 굽다보니 남편이 어린 시절에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공연히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막내가 울면 저승길을 가다가도 돌아본다는데 시어머니께서 남편보다 아주버님을 더 챙기시는 것같으면 슬그머니 마음 속에서 섭섭함이 올라오곤 했다.

결혼한 지 올해가 16년이 되고 이젠 시어머니와 내가 고부 간이라는 관계로 얽히게 된지도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우리 사이에도 강산이 변하고 남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까. 요즘들어 참 신기하게도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흐르던 깊고 넓은 강물이 폭좁고 얕은 시내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설흔 다섯에 혼자 되시어 사남매를 혼자서 대학교육에 유학 뒷바라지까지 다해내신 시어머니는 지금도 세월을 돌아보면 어떻게 다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열다섯, 열셋, 아홉살, 다섯살의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남기고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무슨 정신으로 보내셨는지.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다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어린 자식들을 다 떼어놓고 어떻게 일을 하셨는지. 수많은 위기와 좌절 속에서 어떻게 버티셨는지. 돌이켜보면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지신다고 한다.

웬만한 남자보다도 더 강한 성격의 시어머니와 나는 참으로 많은 갈등의 시기가 있었다. 겉으로 다 드러나지는 않았다 해도 여느 고부 간 못지 않게 우리도 많은 부딪침이 있었던 것같다. 수많은 차이 속에서 어머니와 내가 닮은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모두 네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나는 남편과 함께 하면서도 어렵기만 한 네 아이의 육아를 시어머니께서는 혼자서 외롭게 하셨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결혼 초, 우리 부부가 다툰 기색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있다. "그래도 남편이 있으니 좋은 거란다. 없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답답하겠니?" 그당시에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오히려 더 서운하게만 들리고 내 마음을 모르시는 말씀이라고만 생각이 되곤 했다. 남편이 한없이 미울 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남편이 더 미워지기가 일쑤였다.

이제 세월이 지나 내 나이가 어머니께서 혼자 되신 나이보다 더 되는 시기가 되니 어머니의 마음이 희미하게나마 짚어진다. 어머니 말씀처럼 어렵고 힘든 시간일수록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다 겪으려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든다. 더불어 그 세월을 혼자서 보내신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이 슬며시 일어난다.

나도 시어머니처럼 아이 넷을 맡겨 두고 일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히 다니다 보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제대로 챙겨주고 보듬어주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내 마음과 달리 아이를 대할 때도 있고 뒤늦게 후회가 되어 아이에게 사과를 하는 일도 많이 있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같은 자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남편이 버젓이 곁에 있는 나도 이렇게 어려워하는데...혼자서 아이 넷을 데리고 일하며 사셨던 어머니는 오죽 했으랴.

사십 중반을 넘은 남편은 이따금 엄마에 대한 서운한 기억을 떠올린다. 다섯 살이 넘자마자 하루종일 엄마 얼굴을 그리면서 이제나 저제나 엄마가 집에 돌아올 시간만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 순간의 남편은 사십을 넘은 어른이 아니라 다섯살박이 아이가 된다. 아이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형식으로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떠나고,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과 누나들은 모두 다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다섯살박이 아이는 가정부 누나와 함께 이제나 저제나 하나씩 둘씩 식구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는 파김치가 되어 다섯살박이 막내가 하루종일 준비한 재롱을 보고 들어줄 여유가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낮이나 밤이나 엄마 품만 기다리며 애를 태워온 아이는 날마다 서운하기만 했을 것이다. 아이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의 이성으로는 충분히 엄마를 이해할 수 있고 엄마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남편이지만, 마음 속 한 귀퉁이에 아직도 남아있는 다섯살박이 아이는 틈만 나면 그때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 조각을 아직도 그리워한다. 남편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나는 예전과는 다른 대사로 남편을 위로한다.
"우리도 아이가 넷이잖아. 우린 둘이 키워도 이렇게 힘들어하잖아. 나도 만일 혼자 키우라고 하면 어머니만큼 못했을 거야. 당신이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하는 거라구. 나 혼자였으면 아이들 챙길 겨를이 제대로 있었겠어?"

오늘 아침 출근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세째가 내가 골라 준 옷을 입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아이를 야단치고 억지로 입혀서 보내고나니 내 책상 위에 아이의 교환일기장이 펼쳐져 있다. 그 바쁜 와중에 세째가 제 입장을 적어놓고 간 것이었다. "엄마, 그 옷이 그냥 싫어서 안 입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오늘 날씨가 안 추운데 그 옷을 입으면 너무 더울 것같았어요. 그리고 그 옷이 색깔은 예쁜데 입으면 편하지가 않아서 그런 거에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데 나는 내 일정이 바쁘다는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 아이에게 제대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마음 속에만 담아놓지 않고 제 나름대로 표현을 하고 가 준 아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나마 알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이 내가 무조건 옳고 아이에게 하는 나의 모든 점을 돌아볼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럴 때면 교환일기라는 통로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이런 통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은 이해보다는 오해를 더 잘한다고 한다. 무엇이든 아이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 하나에 대해 하나 귀찮아도 미루지 않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일처럼 부모 자식 관계를 도와주는 것은 없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마음 상할 일들을 지나치지 않고 설명해주다 보면 부모 자식간의 거리는 좁혀지게 마련이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자격지심때문에, 혹은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치다 보면 삼 사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내 자식이 어딘가에서 맺힌 한을 푸느라고 몸과 마음이 다 지쳐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너무나 아파서 신음하는 나이든 성인아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출근준비를 늦추며 마음을 다잡고 앉아 아이의 글에 답장을 썼다.
"영은아, 정말 미안해, 엄마는 영은이가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아서 춥지 말라고 그런거야. 중이염도 아직 다낫지 않았잖아. 그래도 영은이가 그 옷을 입었을 때 편안하지 않은 것은 미처 몰랐어.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걸. 화내면서 얘기해서 미안해. 엄마가 오늘 아침에 회의가 있어서 좀 바쁜 날이었는데 미리 잘 준비하지 않아서 아침에 더 분주했거든. 그러다보니 공연히 영은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네. 엄마를 용서해줄거지? 다음부터 미리미리 잘 준비하고 바쁘다고 화내지 않을께. 사랑해!"
집에 돌아와 엄마의 답장을 기대하며 일기장을 펴볼 아이가 날마다 미안한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래보는 마음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젊은느티나무
    '09.10.18 12:32 AM

    동경미님, 늘 동경미님의 글을 읽고 실천하고 실행하는 의지에 대한 부러움과 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의 감정이 교차하곤 합니다.
    그리고 교환일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저는 아직은 어린 아들하나가 있는데요. 쑥쓰러움을 많이 타는 이아이의 마음을, 그리고 늘 화만 내서 미안하지만 말로 전하지 못하는 제마음을 서로 교환하고 싶은데 막상 하려니 괜히 망설여지네요....^^;

  • 2. 팜므파탈
    '09.10.18 2:37 AM

    동경미님의 글 항상 잘 읽고 있어요.
    언제부턴가 82에 들어오면 육아방에서 동경미님 글이 새로 올라왔나? 먼저 보게 되네요.
    "막내가 울면 저승길을 가다가도 뒤돌아본다"는 구절에서는 눈물이 나고
    "아이들은 이해보다는 오해를 더 잘 한다"는 구절은 돌도 안 된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써
    앞으로 많이 되새겨야할 구절인 것 같네요.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 3. 동경미
    '09.10.18 3:12 AM

    젊은 느티나무님,
    교환일기란 말 그대로 아이와 일기를 교대로 써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기도 좋고 편지도 좋고, 꼭 매일이 아니어도 되고, 길게 쓰지 않더라도 아이와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것이에요.
    저희 아이들이 글을 더듬더듬 쓰기 시작할 너 댓 살쯤부터 했는데 다들 좋아라 했어요.
    사춘기에 접어드니 안하겠지 싶은데도 어려서부터 해온 습관처럼 굳어지니까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아직도 가끔 한번씩은 써서 답을 하라고 가져오곤 합니다^^
    예쁜 노트 하나 사셔서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이걸 통해서 아이들이 글쓰는 실력도 좋아지는 효과도 있어요.

    팜므파탈님,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젊은 엄마들이 육아에 열심인 것을 보면서 참 대견해보이기도 하고 그 모습에서 세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성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쁜 아기 아직 어리더라고 날마다 칭찬해주시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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