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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있는 모습 그대로

| 조회수 : 1,807 | 추천수 : 125
작성일 : 2009-10-12 09:01:24
초등학교 아이를 둔 엄마들의 보편적인 고민 중 하나는 아이가 발표력이 없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손도 잘 들어주고 남 앞에 나가서 씩씩하게 발표도 잘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안타까움이 어쩔 줄을 모른다. 특히 그게 첫 아이라면 엄마의 걱정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10 년 전, 큰 아이를 처음으로 유치원에 보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날마다 교실 문 밖에서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이곤 했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백인들이 훨씬 많았던 학교였고 사립학교라서 엄마들의 열성도 유명했던 곳이라서 공연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혹시라도 언어 면에서 뒤떨어질까봐 열심으로 준비를 시키고 가르쳤지만 웬일인지 아이는 집에서는 똑부러지게 말도 잘하면서 학교에 가서는 영 입을 떼지 않아 나의 애를 태우곤 했다. 보다 못해 야단도 쳐보고 구슬르기도 해보았지만 아이들 앞에 서서 발표할 일만 생기면 눈도 못 마주치면서 얼굴이 발개지면서 서있기가 일쓰였고 어쩌다 마음이 동해 말을 해도 모기만한 소리로 간신히 선생님의 귀에 한 두 마디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민 2세이니 백인 아이들과 겨루려면 많이 뛰어나야 하는데 저렇게 소극적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잠을 못이루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참다 못해 어느 날 선생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환갑을 넘긴 할머니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얘기를 했다.
" 엄마는 남 앞에서 얘기하는 것 좋아하세요?"
아이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는데 왜 나에 관해 묻나 싶어 의아했지만 그래도 답을 해야 하니 말을 했다.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더구나 아무래도 언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요."
"스테파니는 하나도 문제가 없어요. 엄마가 즐기지 않으니 아이도 그대로 따라하는 거고요. 또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선생님인 나보다 백 배 나아요. 나는 그 나이때 앞에 나가라면 펑펑 울면서 겁을 냈거든요.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날 너무나 이해한다고 해주셨어요. 어머니도 그렇다고 하면서 남 앞에 나가는 게 무서운 건 하나도 잘못된 게 아니고 정상이라고 위로를 해주시곤 했어요. 그런데 그 때 우리 반 아이들이 몇 명이었는지 아세요? 고작 네 명이었어요. 네 명 앞에도 못 나가서 울던 나에 비하면 그래도 열 명 앞에 나올 수 있는 스테파니는 아주 용감한 어린이에요. 걱정을 할 게 아니라 빨리 집에 가서 칭찬해주세요. 그리고 그래도 우리 아이가 아이가 발표를 아주 잘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접어지지 않으면 엄마가 먼저 보여주세요. 어디든지 엄마가 용감하게 자신있게 일어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아이는 자연히 따라간답니다. 그리고 설사 아이가 평생 발표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도 그게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랍니다. 그 아이는 그냥 그런 아이일 뿐이에요. 우리는 다 다르니까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러 갔다가 졸지에 나의 숙제를 하나 받고 돌아오던 기억이 새롭다. 그 선생님의 어머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서 위로해주고 잘 길러내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만들었는데 나는 그 부분을 장애물이라고 그저 걷어내려고만 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엄마 게가 아기 게에게 옆으로 걷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야단을 치며 잘 보고 엄마를 따라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는 계속 옆으로 걸어가더라는 우스운 얘기가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희안하게도 그 선생님의 말처럼 대부분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엄마들, 특별히 그 부분을 힘들어하는 엄마들을 보면 대체로 아이만큼이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엄마들이다. 아마도 자신의 단점을 아이에게 보니까 더 예민한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이 단점이라고 할 수도 없고 발표력은 없어도 다른 부분은 뛰어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키워주면 되는 것인데 엄마의 욕심이 끝이 없다 보니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아뭏튼 그때 그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영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핸디캡으로 생각지 않고 용감하게 일어서게 되어 일하는 엄마로서 늘 시간이 부족하면서도 동양 엄마로는 드물게 학부모회장도 해보고, 걸스카웃 단장도 하고, 학급의 일을 도맡아하는 room mother 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에게 롤 모델이 되어보려고 했다. 가끔씩 내가 이렇게 뛰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큰 아이의 변화를 보면 그래도 헛된 발버둥은 아니었나 보다.

초등학교 내내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로 통했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런 저런 리더쉽 역할을 자원해서 감당하더니 고등학교에 가서 재미를 붙인 웅변에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원고를 준비하고 연습을 한다. 수 천 명 앞에서 하는 건데 떨리지 않냐고 하면 자기는 그걸 즐긴다고 하니 어려서도 그저 아이 나름대로 속도가 있나 보다 하고 여유있게 생각하면서 기다려줬으면 저나 나나 마음 편하게 살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수줍음으로는 둘째도 언니와 선두를 다투었던 아이였다. 이 아이는 아예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무대에만 올라가면 사시나무 떨듯 떨고, 남 앞에 설 일이 있으면 아예 도망을 가버리는 정도이니 언니보다 더 심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첫 아이 때 하도 호되게 훈련을 받아서 둘째는 좀 여유를 가지고 대해보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컷 연습을 하고도 무대에 올라갈 자신이 없어 포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육아법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아니면 늘 나오는 걱정인 내가 일하는 엄마라서 그런가 하는 자책에 많이도 힘들어했다. 큰 아이로도 마음 고생을 했는데 둘째도 그러니 나보다 더 발표하는 것을 싫어하던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나는 그래도 노력이라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려고 하는데 당신은 그대로 있으니 아마도 아이들이 당신을 닮아서 모두 저렇게 앞에 나가는 것을 겁을 내나 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던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제법 친구들 앞에 나서서 임원 역할을 맡는 것을 겁안내고 한다 싶더니 중학교에 와서는 리더쉽 역할을 잘 감당할 줄도 알고, 부끄러움증도 거의 없어진 듯하다. 지난 주 학교에서 비무룩한 얼굴로 돌아오기에 물었더니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자기가 감동깊게 읽은 책을 점심시간에 하는 클럽에 가서 발표를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시큰둥하게 듣고 한쪽에서 장난하는 아이들도 있었던 것에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발표를 했다는 것에 신이 난 고슴도치 엄마는 그깟 일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위로를 했지만 아이는 제법 속이 상했는지 하루종일 말도 안하고 방에만 있어서 슬슬 걱정이 되었다. 며칠을 걱정시키더니 어느 날 방과 후에 신이 나서 돌아왔다. 이유를 물으니 제가 받은 이메일을 보여주었다. 감동받고 발표까지 했다는  책을 지은 작가로부터 온 이메일이었다. 친구들의 무반응에 속이 상해서 둘째가 작가에게 하소연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당신의 책을 읽고 감동이 되어 내가 속한 종교 클럽 친구들에게 독후감을 발표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나 없어 실망이 되었다. 이제 다시는 남 앞에서 뭔가를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라는 내용으로 보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는 것이다. 그가 보낸 답장에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라, 너의 감동을 남에게 나누는 일보다 더 뜻깊은 일은 없다. 하면 할수록 잘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발표이다. 화이팅" 이라고 쓰여있었고 둘째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답장을 읽고 또 읽고 아빠에게도 자랑을 했다.

그러고나더니 다음 번 클럽 모임에 가서 다시 발표를 하겠다고 자원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실망할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집에 와서 하는 말을 들으니 이번에는 아예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내가 말하는 동안에 집중해달라고 당부를 했고 발표가 끝나고 난 뒤에 질문을 던지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더니 한 아이도 흐트러지지 않고 들어주었고 박수도 많이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안달병에 조급증까지 있는 엄마가 이리저리 압박을 주고 으름장을 놓을 때에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로 가는 것처럼 애를 태우던 아이들이 때가 되고 필요를 느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라지게 된다는 속도의 법칙을 애당초 알았다면 아이들과 나의 전쟁이 진즉에 끝났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또 내가 원하는 대로 잘해주지 않으면 아이가 크게 잘못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부터 앞서는 엄마의 마음에는 언제쯤 진정한 평화가 올까.

얌전하고 소극적인 아이는 그런대로, 앞장서는 것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아이는 또 그런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받아들여주는 엄마가 되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한가 보다. 아이들때문에 한참 고민하던 그 옛날에 어느 분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내 아이가 리더가 아니라고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리더보다 더 필요한 것이 그 리더가 넘어지지 않게 지혜롭게 보좌해주는 사람들이라고. 그때에는 그 말이 그다지 귀담아 들어지지가 않았다. 내 아이가 보좌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리더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욕심이 나의 귀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바람소리
    '09.10.13 3:27 AM

    짝짝짝!
    동경미님, 오늘도 감동 한보따리 짊어지고 갑니다.
    저도 아이에게 잔소리쟁이 엄마가 아닌지.. 뒤돌아 보게 하는 글입니다.
    욕심 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인정해 주고 격려하기 위해 깨어 있으렵니다.
    동경미님 덕분에 저와 우리 아이가 더 행복해지겠네요. 감사합니다.^^

  • 2. 동경미
    '09.10.13 7:17 AM

    바람소리님, 감사합니다. 아이들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 잘 알면서도 참 어려운 일인것같아요. 아이대신 내가 손들어주고 싶은 마음 누르는 연습 매일 하고 사네요.

  • 3. 한들산들
    '09.10.15 8:55 AM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이대신 손들어주고 싶은 마음 누르는 연습...
    수줍어하는 울 아들들...... 마음 한쪽에서 걱정인데... 제 욕심인거지요
    엄마,아빠 ,아들둘 모두 쑥맥인게.... 이런 사람들도 필요하다는 위안으로...^^
    마음 많이 편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 4. 동경미
    '09.10.15 11:37 PM

    한들한들님,
    한국의 풍조가 활발하고 발표력이 좋은 아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지 내성적인 기질의 아이들도 장점이 많이 있답니다.
    신중하고, 차분하고, 안정감있고, 사려깊고, 말실수 적고...등등릐 장점을 아이에게 칭찬해주세요.
    아이들도 워낙 발표력 좋은 아이들만 두드러지도 엄마들도 그래주기를 바라다보니 자기가 내성적이라도 장점이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자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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