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은 Santa Clara County 의 아동학대방지위원회이다. County 내의 열 다섯 개 도시에서 생기는 각종 아동학대 관련 업무의 감찰을 위해 검찰청, 경찰, 사회복지부, 각종 비영리재단, 소아과 의사, 공중보건의,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상담사, 변호사, 아동 보호국, 각종 인권단체 소속의 직원들이 손을 잡고 일하는 단체이다. 날마다 회의에서 듣는 얘기들이란 것이 처참한 아동학대 실상, 사건의 진상들, 각종 법안, 그리고 사회복지제도에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생이 되는 사람들의 얘기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무덤덤해지나 보다.
우리 County 의 Children's Shelter 가 주정부의 예산삭감으로 올해 12월에 문을 닫게 된다고 한다. 그동안 부모가 갑자기 형무소에 가게 되거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친권에 문제가 생긴 가정의 아이들이 Foster family 에게 배치되기 전에 지내게 되는 곳으로서 아이들의 보호와 각종 의료 서비스 등 여러가지 기능을 담당했는데, 이제 문을 닫게 되면서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우선 단시일 내에 Foster family 에 배치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진 아이들, 예를 들어 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신체적 및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기꺼이 맡아 돌보고자 하는 Foster family 를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 다들 정상인 아이들만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운이 좋아 배치가 된다고 해도 양부모들이 아이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다시 돌려보내는 경우도 꽤 된다고 한다. 입양 후 파양되는 것처럼 이 아이들도 친부모에게 받은 상처에 Foster parents 에게 받은 상처까지 받으면서 서서히 사회의 문제아롤 자리잡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10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10대 부모가 아이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중죄를 지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경우, 부모의 아동학대가 신고되고 적발되어 부모로부터 하루 아침에 떨어져나오게 된 아이들, 오랜 학대에 살아남기 위해 거친 성격이 생겨난 아이들...참 가엾고 불쌍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무엇이 이들의 삶을 이토록 힘들게 몰아가는 것일까. 스스로 선택한 부모도 아니고 어느 날 태어나보니 자신을 양육할 능력이 전혀 되지 않은 부모인 것인데, 이리저리 어른들의 정책 속의 희생자들이 되어가는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여러가지 문제도 많이 일으키고 조금만 지나면 소년원으로 가게 되는 아이들로 자란다.
회사 일로 이런 아이들의 얘기만 듣다가 집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별천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처럼 보인다.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기며 내 팔에 매달려 반갑게 밪이하는 우리 아이들의 삶을 부러워 할 아이들이 우리 도시에 너무나 많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나는 무슨 복이 많아서...아니 이 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복이 많아서 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보호받으며 자라고 있을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말로는 선진국 중 최고라 하는 미국의 어두운 이면에는 아이들의 눈물도 많이 섞여있다. 친권을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미국에서 부모는 정부가 법에 정한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내 피와 살이 섞인 아이들도 얼마든지 나라에 뺏길 수 있다. 뺏은 아이들은 Foster family 라는 엉성한 가정체계에 보내지고 그 낯설은 환경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그렇게 한번 빼앗긴 아이들을 다시 찾아 가정이 다시 정상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짧게는 수 개월, 보통은 몇 년이 걸린다. 자칫 실수를 저질러서 갓난 아기와 헤어진 부모들이 다시 찾아온 아이가 부모를 기억하지 못해 생겨나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3년 전 큰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친구 중 이렇게 Foster family 를 거쳐 결국은 그 가정에 입양이 된 아이가 있었다. 낳아 준 엄마는 한 살 아래 여동생과 그 아이가 각각 1학년과 유치원생일 때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서 길에서 마약을 팔다가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다. 그 죄가로 주교도소에 수감되는 바람에 친엄마는 정부에 친권을 빼앗겨버리게 되었다고 했다. 마약범에 엄격한 미국에서는 사실 너무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다행히 그 아이를 데려가기로 했던 Foster parents 들이 연년생인 여동생도 있다는 걸 알고 측은하게 여겨서 같이 데려가기로 했고, 두 아이가 같은 집에서 크게 되었다, 몇 년 후에 이 사람들이 이들 자매를 아예 입양을 했는데, 큰 아이가 전해주던 말에 의하면 양부모들이 어찌나 자매를 아끼고 사랑해주었는지 아이들의 옷도 제일 좋은 것으로만 사서 입혔고 소지품들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보살피는 것같아 보인다고 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큰 아이에게 고민이라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이 세상에서 양엄마가 제일 싫다고 하더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말을 안듣고 매번 말대꾸를 했더니 호되게 야단을 치고 뒷마당에 나가있으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자기 친엄마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눈물까지 흘려서 큰 아이가 너무나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혜를 짜내어 그건 우리 엄마도 내가 뭘 잘못했을 때 정신 좀 차리라고 종종 세우는 벌이고 어떤 때는 그보다 더하게 혼나는 일도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벌을 세우는 이유는 나를 사랑해서 내가 잘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친엄마인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는데도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양엄마가 그렇게 했다면 훨씬 더 고마운 일이라고 어른 흉내를 내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그 아이가 금방 기분이 풀려서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고 이제부터는 양부모에게 잘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후에 얘기를 전해들으니 그 아이의 양부모는 자기 아이들 셋을 다 키워 출가시키고 이 두 자매를 입양한 마음이 아주 따뜻한 부부였다고 한다. 내 자식도 키우기 어려운 세상에 남의 자식을 둘이나 데려다 길러 준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길에서 마주쳐도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고아들도 갓난 아기가 아니면 잘 입양이 되지 않는데 그 아이들처럼 험한 가족사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데려온 그 마음이 참 곱기만 하다.
또다른 아이는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아이 이마에 붉은 색의 흉터가 있어서 무엇일까 늘 궁금했다고 한다. 어느 날 얘기 끝에 물었더니 자기 엄마가 화가 나서 가스렌지에 숟가락을 달구어 아이 이마를 내리쳤다고 했다. 학교에서 아이를 보고 아동학대가 의심되어 여러 차례 조사를 했지만 제대로 알아내지를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어려서도 부모의 불화가 심했던 가정이고 자연히 아동학대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Foster family에서 몇 년을 보내다가 엄마와 다시 합쳐지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을 떨어져 있던 아이는 엄마가 낯설기만 하고 엄마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어려서 자기를 길러준 Foster mom과 비교를 하니 엄마는 아이가 밉상이었나보다. 그러는 사이에 그 아이 엄마가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동학대 혐의까지 받게 될까 두려웠던 엄마는 아이를 이혼하고 따로 살고 있는 아빠에게 보내려고 하는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어리기만 한 중학교 2학년짜리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아빠에게 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는 버림받는다는 생각에 엄마가 미워서 말도 안하고 지낸다고 했다.
"엄마, 아무리 암이라도 어떻게 엄마가 딸은 일부러 다치게 할 수가 있어요? 엄마 맞을까요? 친구들이 다 그애를 불쌍해하고 있어요. 뭘 도와줄 게 없을까요?"
"다른 것보다 엄마 떠나서 아빠에게 가기 전에 엄마랑 화해하고 가면 좋겠다. 엄마 병이 깊어서 가면 다시 못 볼 가능성이 더 많은데 나중에 후회되지 않게 네가 잘 설득해봐. 엄마는 같은 엄마라서 그런지 그 엄마도 너무 불쌍하다."
"화해하라고 말해보라구요? 친구가 듣고 싶어하지 않을텐데...그 엄마 정말 이상한데요."
"엄마가 볼 때에는 그 엄마가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 몸에 병이 깊어져있고, 오래도록 살아서 딸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못된 짓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도 만일 지금 암으로 시한부 생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뮬론 그렇다고 아이를 다치게 하는 건 잘못한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위기에 부딪치면 때로는 이상행동도 하게 되거든. 그런 얘기를 친구에게 해줘 봐. 엄마 용서해주라고.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한 사람도 없어. 그 엄마 지금 얼마나 힘들겠니. 이마에 그렇게 상처를 낸 것은 천번 만번 잘못한 거지만...그래도 엄마잖아. 살아도 죽어도 엄마는 엄마잖니. 아빠한테 가기 전에 꼭 엄마 용서해주고, 엄마와 냉전 그만하고, 그리고 가기 전에 엄마 좀 많이 안아주고 지내라고 그래. 그 엄마 오래 못 살거라잖아. 이다음에 크면 아무리 그래도 엄마 생각 많이 날텐데 그때 후회하면 어떡하니..."
내 말에 수긍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가 다음날 학교에 가서 점심시간에 그 친구와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늘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심술만 부리던 아이가 큰 아이와 얘기를 하면서 펑펑 울더라고 했다. 그리고 큰 아이가 얘기한대로 엄마를 용서해주겠다고 하더란다. 엄마를 따뜻하게 대하면 더 슬플 것같아서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고도 했다고 한다. 엄마가 죽고나면 아주 어려서 헤어져서 낯설기만 아버지와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울기에 큰 아이도 같이 울어주느라 눈이 퉁퉁 부어서 하교를 했다. 학년 말에 그 아이는 떠났고, 얼마 후 아이의 엄마도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그래도 자기가 그렇게 심신에 상처를 준 딸과 마지막에는 화해도 하고 사랑한다는 소리도 듣고 갔으니 그녀의 마지막 길이 그다지 험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느라 학군도 나쁘고 문제가정이 많았던 지역에 살던 그 당시에 나의 마음은 그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경제사정만 가슴 아파하고 있었는데, 큰 아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추억을 아주 많이 저축하게 되었다. 내 부모 내 자식만 생각하고 살아갔을 우리 가족이 협력하여 사회복지제도라는 미명하에 희생이 되어 이리저리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최상의 환경에 데려다 놓은 것 못지 않게 감사할 일이니 말이다. 그때 그 아이들에 관해 큰 아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배우고 쌓은 경험(?)때문에 지금의 일터에서도 덜 지치면서 버텨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는 사랑이 꼭 필요하고 그 사랑은 대체로 부모로부터 온다. 부모란 어려서는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어른이 되어서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마음의 비닐하우스이다. 부모가 없으면 세상은 너무나 하전하고 쓸쓸해서 고향을 잃은 실향민 타운처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낳아준 부모들이 있어주지 못한다면 곁에서 다른 사람들이라도 부모가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 품앗이 부모노릇이라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도 더불어사는 삶을 진심으로 배우지 않을까.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71216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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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동경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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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0-11 06: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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