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준다. 물질적인 유산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자식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부모가 물려주는 유산을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 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려받고 싶지 않은 유산을 물려받고 어쩌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자식들도 있을 것이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꼭 드는 유산을 얻어 비교적 수월한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유산이든 공통적인 점은 자식이 그것을 선택해서 받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선택해서 물려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알려진 우울증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병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그 유전이라는 말 속에는 신체적 유전자에 의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의 답습이라는 의미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한다. 뇌에서 일정량씩 분비되어야 하는 화학적 물질이 원활히 분비되지 못할 때 주로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이 경우에는 상당 기간의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울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약물치료만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반드시 마음을 열기 위한 상담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부모들이 삶 속에서 그때 그때 부딪치는 갈등과 난관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 또는 포기도 하며 살아가는지를 보며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고 한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부모가 해결방법으로 혹은 도피구로 사용했던 모든 것들은 아이들에게 흡수되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술과 도박 등으로 시름을 잊고자 했던 아버지(이 사람들의 대다수가 사실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인 경우가 많다)를 가진 가정에서 비슷한 자녀가 나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무에게도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서 냉가슴을 앓았던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 중 홧병 환자가 많은 것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학습된 것들의 재현인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상과 인생을 배우기 보다는 부모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싫건 좋건 그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대물림하여 살아가게 된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부모가 물려준 유산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새로움에 대한 소망은 있어도 그것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저장된 데이타의 부재때문이다. 보고 배운 것이 없기에 하고 싶어도 달라지고 싶어도 그저 난감하기만 한 것이다.
비상금이 저축되어있는 저금통장처럼 아이들은 우리가 물려주는 유산을 품에 안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쓸 것이다. 이렇게 힘들 때 아빠는 술 한잔에, 담배연기에 고민을 실어 보냈었지, 이렇게 어려울 때 엄마는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지,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아빠는 오히려 더 웃는 얼굴로 우리를 감싸 주셨지, 엄마는 늘 우리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지,,,비상금을 조금씩 꺼내어 쓸 때마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떠올리게 되고 만감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한 아빠의 고백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자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 중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거의 연기를 하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는 얘기였는데 공감이 가는 점이 많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만 가지고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기가 어쩌면 그렇게 힘이 드는지...
특별히 아이들을 야단치다 보면 문득 문득 내가 어려서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대사들을 토시 하나 안 틀리게 재방송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토록 듣기 싫은 말이었다면 내 아이들에게는 안 해야 하건만 그야말로 대물림으로 내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 아빠의 고백처럼 나도 순간 순간 연기라도 하지 않으면 이 귀한 아이들에게 어떤 것들을 물려주고 떠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안겨 주지 않아도 날마다 제 나름대로 떠안게 되는 저희들 나름대로의 수많은 문제들, 내가 대신 해결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어떠한 문제를 만난다 해도 하늘이 무너지거나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려주고 싶다.
오늘은 몸살 기운이 있어 슬며시 짜증이 올라오던 차에 물장난을 하다가 온 집안을 물바다로 만든 세째에게 운나쁘게 화가 쏟아졌다. 화를 내고 보니 아이로서는 나름대로 뭔가 해 보려고 하다가 잘 안되서 사고가 난 것인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느닷없이 그릇에 물을 부어 제 방으로까지 나르느라고 애를 썼는지 물어보니 조화 장미가 목이 마를까봐 물을 주려고 그랬다고 한다. 조화는 물이 필요없다는 걸 가르쳐 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보니 내 잘못도 절반인 셈이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화만 내서 미안하고 그 장미는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가르쳐 주지 않아 또 미안하다고 하자 제딴에도 어리둥절한가 보다.
나도 책 속의 아빠처럼 연기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엄마는 갑자기 화가 났을때 생각을 먼저 하고 나서 화 낼만한 일에만 '조용히' 화를 내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이렇게 실수(?)를 하게 되었다고 어설픈 고백을 했다. 그러니 너는 엄마처럼 이렇게 무작정 화를 내면 안되고 화를 내기 전에는 왜 화가 나는 건지를 먼저 잘 생각하라고 일러주었더니 이내 얼굴이 환해지며 내 목에 감긴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 앟은 나의 화내는 습성은 어떻게 하면 유산리스트에서 빼낼 수 있을까.
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 부모의 유산
동경미 |
조회수 : 1,882 |
추천수 : 128
작성일 : 2009-08-29 01: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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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영이사랑
'09.8.29 2:59 PM하하하하...
정말 쉽지않지만 정말 필요한 정말 해야하는 언행이 아닌가...반성해봅니다.
좋은글들을 많이 올려주시네요.2. 젊은느티나무
'09.8.30 1:13 AM제가 지금 고민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문제로 개인적으로 제 자신의 모습이 정말로 자신이 없는데 아이앞에서 하는 무의식적인 생활모습들이 그대로 흡수되는 것을 볼때 가슴이 아픕니다.
연기하는 기분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
단순하지만 뼈져린 교훈을 주시네요.
노력은 하렵니다. 저도 싫지만 아이도 그 싫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것이 더욱 싫기에..3. 호야맘
'09.8.30 1:43 AM매일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보며 자책합니다 ㅠㅠ
매일 다짐을 하지만 어느새 아이들에게 화내고 있는 제 모습.....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읽으면 조금씩 제가 변하기를 기대해봅니다^^*4. 삔~
'09.9.3 2:51 PM제가 너무나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것을 자식을 키우면서 자꾸만 깨닫습니다.
동경미님께서 올려주시는 글들에 또한번 저 자신을 비춰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5. 82cook
'09.10.19 7:51 PM82cook 관리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글이라서 글 제목에 ★표 붙여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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