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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 아빠의 사랑

| 조회수 : 1,716 | 추천수 : 141
작성일 : 2009-09-01 07:15:23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무료한 시간을 어쩌지 못해 고민하다가 동네 교육구청에서 파트 타임으로 영어로 의사소통 하기가 어려운 한국 부모들의 통역으로 잠깐 일을 했었다. 내가 사는 샌호세는 비교적 한인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어소통이 원활한 부모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은 실정이라서 아이의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당사자인 아이가 통역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교육구청 공무원의 설명을 들으며 작은 힘으로라도 마음이 답답한 부모들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느 날 내가 속한 구역의 초등학교에서 통역 요청이 와서 가보니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와 아빠, 교장선생님, 학교 소속의 아동심리상담사 (각 학교마다 한 사람씩 고용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의 요지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정의 아이인데 수업 시간에 옆 자리의 아이가 아이의 땋은 머리를 잡아 당기고 장난을 걸자 아이가 주먹으로 그 아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공교롭게도 옆 자리의 아이가 머리를 얻어맞는 것만 보고 그 아이가 한국 아이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은 못 봤다고 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친구를 대리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자 억울하게 생각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자유로워 보이는 미국 사회이지만 학교 내에서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에 대한 처벌은 아마도 한국보다 더 엄격하다고 생각되는 곳이 미국이다. 아이의 행동에 잔뜩 화가 난 선생님이 부모와 면담을 요청했는데, 아이의 부모님은 미국에 살고 있긴 했지만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들인데다가 아빠는 밤 근무를 하고 새벽에 돌아오고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아침 7시에 퇴근을 했다는 아이의 아빠가 피로에 지쳐 핏발이 잔뜩 선 눈에 수심이 가득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애들끼리 그런 거니까 그냥 한번만 봐 달라고요. 한국에서는 이런 거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건데...지 엄마와 내가 서로 얼굴도 못보며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애가 자꾸만 욕구 불만이 생기나 봐요. 이번 달에만도 불려오는 게 세 번째에요...제가 한국에서 사업 실패하고 동생 초청으로 와서 애 엄마랑 애들 고생만 많이 시키고 있어요. 그래도 이 녀석들 잘 키우려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돌며 말끝을 흐리는 아빠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이가 짜증스럽게 아빠의 손을 뿌리쳤고 곁에 앉은 교장 선생님과 다른 교사들이 의아하게 두 부녀를 바라보고 눈짓을 교환했다.

유독 백인이 더 많은 곳이기도 해서 그랬지만 내가 보기에도 차별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아빠와 교사 간의 대화를 통역해주고 나자 교사들이 같은 문화에서 온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 이 아이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되는 아이이고, 언어도 불편하고 환경의 변화도 감당이 어려운 시기인데, 이 학교의 분위기가 너무 적대적이네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나의 말에 교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끼리 조금 건드리는 것을 큰 문제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아이들의 폭력성향을 묵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일들은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거라고 믿고 어른이 지켜보다가 개입을 한답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조금만 손을 대도 큰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부모를 부르고 아이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학교 환경이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는 것같네요. 미국에 와서 새로 적응하려고 애쓰는 한 가족을 좀 더 따뜻하게 가르쳐 주고 손을 내밀어주면 좋을텐데요. 이 아이의 아빠는 지금 이 면담이 있기 한 시간 전에 꼬박 밤을 새고 일을 하고 와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 하나로 피곤을 무릎쓰고 와서 앉아있잖아요. 말이 안 통한다는 게 부끄럽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내 아이를 지키겠다는 부성애를 좀 알아주시면 좋겠네요. 이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에요. 이제 새로운 나라에 와서 배워가는 과정일 뿐이에요."

나도 모르게 감정에 복받치는 목소리로 아이를 옹호하는 얘기를 하자 귀를 기울이던 할머니 교장 선생님이 곁에서 어른들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얘야, 우리가 미안하다. 어른들도 모르는 게 많단다. 네가 말이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른 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선생님들도 너도 조금씩 서로에 대해 새 것들을 배워가다 보면 잘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가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보다. 너는 참 행복한 애구나."
통역을 통해 전해들은 아이의 아빠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고 아이가 슬그머니 아빠 품으로 파고 들었다.  

세상이 험하다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우리의 상식과 기대를 깨는 많은 것들이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들이 따뜻해진다. 그 날 손톱 밑이 새카만 채로 밤새 고된 업무에 시달리다 딸을 위해 달려온 아빠의 눈물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지 아냐고, 언제나 정신 차릴 거냐고 다그칠 법도 한데 그는 말없이 딸 아이를 힘주어 끌어 안으며 아이의 가방을 받아 어깨에 매고 아이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부녀의 뒷모습이 얼마나 따뜻해보였는지 아마 그 날 나와 함께 그 방에 있었던 선생님들도 나와 같이 기억하고 있을까. 나의 설명에도 관계없이 문제아로 낙인 찍어 버릴 수도 있었는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교육자답게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아주려고 했던 교장선생님의 마음 또한 내가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내 마음의 난로이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그 아이가 그 후에는 한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의 눈물이 아이로 하여금 새로운 눈이 뜨이게 해준 것일까. 낳아주신 아버지와 어려서 이별을 하고 키워주신 새아버지와도 많은 갈등을 겪었던 나에게는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 아빠는 왜 사장님이 아니냐고 따져드는 초등학생 아들 아이의 말에 가슴 아팠다는 아빠의 얘기를 읽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물질문명이 하늘을 찌르지만, 그래서 자식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면 자식도 등을 돌린다는 얘기도 솔솔 들려오지만, 나는 사장님이 아니라 초라한 모습의 가난한 아빠라도 나를 한껏 사랑해줄 수 있는 어깨 넓은 아빠가 있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든든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어제가 막내의 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한 달이나 빨리 나와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녀석이 이제 아홉 살이 된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전자게임기를 사달라고 한 지가 몇 년이 되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못 사주다가 올해 선물로 사주마고 했더니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루며 기대를 했다. 선물을 가지고 들어오기로 한 아빠가 일 때문에 늦어지자 기다리다가 아예 우리 침실로 와서 아빠 자리에 눕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이 아이를 깨워 선물을 전해주니까 선잠이 깬 채로 좋아서 깡총거리며 아빠의 목에 매달렸다. 늦은 밤에 돌아와 쉬고 싶은 마음도 접어 놓고 복잡한 매뉴얼을 보면서 아이의 게임기를 봐주고 있는 남편과 그 옆에서 종달새처럼 깔깔거리는 막내의 모습을 보며 살짝 질투도 나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는 못해본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우리 막내의 인생에 늘 축복이 넘치기를...!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다현맘
    '09.9.1 8:04 AM

    가슴이 뭉클하네요~
    감동이네요~
    늘 언제나 축복이 넘치기를.....

  • 2. 다짐
    '09.9.1 10:29 AM

    동경미님의 글을 읽고 오늘도 가슴이 뭉클,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주르륵~~~
    좋은 글,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저도 늦은 나이에 둘째를 낳아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황에서
    친정엄마의 암으로 최근 마음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늘 어릴 적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기만 했는데 이제는 제가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마음은 절절한데 갓 돌쟁이 아들땜에 직장땜에 마음이 여의치 않네요.
    나중에 후회 하지 않을 거야, 최선을 다할 거야 마음을 다잡지만 그래서 오늘도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 나약함을 보입니다.

  • 3. mulan
    '09.9.3 4:29 AM

    글 많이 올려주세요. ^^ 참 좋아요.^^ 여러모로 참... 공감 많이 갑니다.

  • 4. 82cook
    '09.10.19 7:51 PM

    82cook 관리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글이라서 글 제목에 ★표 붙여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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