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에 관한 사건들이 보도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부모의 학대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에 대한 치유도 중요하지만, 무조건 가해자로 몰려 아무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이 형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는 부모에 대한 집중적인 치료와 교육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치료 없이 다시 아이를 키우게 원상복귀가 된다면 그 가정은 대대로 아이를 학대하는 가문으로 유산을 물려주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고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가해자는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가해자가 동시에 피해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가 동시에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들의 많은 경우는 자신도 어린 시절에 부모의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들이다. 반드시 육체적 학대가 아니더라도 언어적, 정신적, 혹은 성적 학대 속에 자라난 사람들이 많다. 부모의 학대를 받으며 어린 시절 내내 아이가 되어보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아이를 기르는 데에 있어 학대 외의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지 못하다보니 꼭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에는 당장에 상처를 받은 아이만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준 그 부모의 마음 속에는 상처받은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마음 속에 앉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 속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해내고 치료해주지 않으면 아동학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동서양의 엄마 아빠들이 아이에게 매를 드는 일에 관해 지금 이순간에도 고민을 한다. 매를 들지 말아야 할지에 관한 고민부터 시작해서 매를 든다면 어디까지인가, 정도를 지나쳤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가에 이르기까지 아이와 매는 우리의 다음 세대까지 영원히 회자될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매가 과연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가장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면 매는 절대로 유일한 최상의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는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있어서 한가지 방법으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도 아니고 궁극적인 방법도 아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매를 하나의 방법으로 쓰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쓰지 않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매를 들었건 들지 않았건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면 좋은 방법일 것이고 그렇지 못했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매가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아이에게는 매우 비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다른 집 아이가 매로 버릇을 고쳤다 해서 우리 아이에게도 그 방법이 통하리라고 믿을 수는 없다.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고 그에 따라 어떤 현상을 받아들이는 인지능력도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효과적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내 아이의 기질과 인지능력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어야 실패가 없다.
우리 아이들의 예를 들자면, 큰 아이의 경우는 마음이 여리고 감성적이어서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대화를 하는 편이 매보다 효과적이었다. 매를 드는 것이 오히려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단, 대화를 할 때에는 절대로 일 이분을 넘기지 않고 요점만 얘기해야 한다. 말이 길어지고 그러는 사이에 내 감정이 들어가면 아이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엄마는 엄마 대로 아이의 산만함때문에 감정조절이 어려워진다. 큰 아이의 경우는 교환일기를 사용하거나 편지 또는 쪽지를 도시락가방에 넣어 엄마의 바램을 전하면 대체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순종형이었기 때문에 많은 점이 수월했다.
하지만 둘째의 경우는 급한 성격에 자기 주장이 강해서(딴 사람 아닌 나를 닮아서 그런거니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다) 대화를 먼저 시도하면 제 주장만 내세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러가지 벌칙 중의 하나로 매를 사용했는데 발바닥이나 엉덩이를 제 나이만큼의 숫자로 때려주었다. 단 아이를 때릴 때에 말로 야단을 함께 치지 않았는데, 아이가 물리적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매맞아 아파죽겠는데 곁에서 말을 시키거나 질문을 하는 것처럼 화를 북돋우는 일은 없지 않은가. 다 맞고 나면 자기 방으로 보내서 제 감정과 내 감정이 모두 가라앉게 하고 그후에 불러서 잘잘못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에도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때릴 때에는 절대로 폭언과 병행해서는 안된다. 엄마의 입에 테입을 붙이더라도 아이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만한 부정적인 말은 금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보다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은 방법이다.
세째의 경우에는 대화와 매를 병행해서 발란스를 맞추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위로 언니들이 잘못하고 혼나는 것을 관찰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때로는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기술이 저도 모르게 발달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원칙을 세워놓고 그 원칙에 절대적으로 근거하는 일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잘못된 행동과 그에 따른 벌칙을 정해놓고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길게 말하지 않고 원칙만을 점검하게 했다. 세 번 이상의 같은 잘못이 반복될 때에 매와 대화를 지혜롭게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세째에게는 효과적이었다.
다섯살짜리 막내는 아무래도 막내라 어리광도 많아 제멋대로가 되기 쉬운 상황이었다. 막내라서 더 예뻐서도 그렇겠지만 위의 아이들을 돌보느라고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되다보면 막내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많은 일을 그냥 보아 넘게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만 두살 정도가 되면서부터 세뇌와 매를 병행했다. 아직은 서로가 반응하는 대화는 어려운 나이이기에 세뇌작업이 필요했고 반복된 세뇌에도 불구하고 자가의 고집으로 원칙에서 벗어날 때에는 아이의 나이에 맞는 매도 들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매가 효과적인 부분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매만으로는 절대로 아이를 가르칠 수 없음을 위의 세 아이를 통해 경험했으므로 매가 전적인 처벌방법은 아니었다.
인간이기에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에게 심한 말을 했을 때에는 자책감에만 빠지지 않고 즉시 아이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엄마의 감정에서 잘못 나온 말임을 반드시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로 부모의 권위에 손상이 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잘못 시인과 용서를 올바르게 배움으로써 사회에 나갔을 때에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자기 잘못을 시인하거나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수월하게 느껴질 것이다.
매를 들지 않고도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다면 구태여 뒤늦게 매를 드는 일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았지만 잘 안되서 매를 든다고 한다면 현재의 자녀교육 전선에 큰 이상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남은 방법이 매 밖에 없다는 것은 그 이전의 다른 방법들을 올바르게 쓰지 못했거나 엄마 스스로가 마음이 급해서 다른 방법들을 수용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매를 들기는 하되 감정조절이 어려워 정도 이상의 매를 때리고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엄마들은 동서양 모두 매우 흔한 경우이다. 그 상태에서 넘어야 할 선을 용케 넘지 않고 멈춘 사람은 자책감으로 가는 것이고, 그 선을 넘어버린 사람은 아동학대가 되는 것이다. 결과는 다르지만 일의 발단과 전개는 매우 유사한 것이다. 이러한 엄마(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많은 것같다)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 분노의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모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을수록 그 욕구불만이 부모에 대한 원망이 되고 미움이 되기도 하며 결국에는 분노로 변한다.
물론 과연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다 제대로 받았겠는가를 따져본다면 사실 우리는 누구나가 애정결핍의 문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말이 진리가 된다. 문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애정결핍의 문제를 사람마다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그 방식에 따라 그 분노가 남편에게 쏟아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이에게 쏟아지는 경우도 있고, 직장 동료에게, 혹은 운전할 때 옆에서 끼어드는 사람에게 쏟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부모로부터 시작된 문제가 계속 전해지고 대를 이어 악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부모의 잘못된 사랑의 방식과 훈육방법으로 인해 내 마음에 밑빠진 독이 하나 생겨나고 그 독에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사랑으로 내 아이를 바라보다보니 아이의 모든 것이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에게도 또 다른 색깔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내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를 보아넘기지 못하고 '문제'라고 이름붙이는 나에게도 다른 모습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나의 문제와 아이의 문제가 합쳐지니 더 큰 문제가 되고 그렇게 큰 문제를 해결하려니 역부족을 느끼게 되어 나의 분노가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옛말에 아이키우느니 밭일을 하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 하나를 기르는 일이 힘들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밭일은 겨우 몇 사람의 배를 불리우고 말지만 아이를 열심히 기르면 수천명의 삶이 그 아이로 인해 풍요롭게 될 수가 있다. 매를 들건 들지 않건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은 끝없이 잘못을 저지를 것이고 엄마들은 날마다 내 아이에게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 아이에게나 맞아떨어지는 영원불멸의 마스터답안은 없기 때문이다.
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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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맞는 아이들
동경미 |
조회수 : 2,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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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08-19 01: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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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소아
'09.8.22 4:04 AM좋은 글이네요. 저도 아이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그속에서 저를 본답니다. 아이 제대로 키우는 거 너무 어려워요...
2. 바람소리
'09.8.23 1:14 PM동경미님 글이 게시판에 있길래 일부러 찾아 왔네요.
지금 바빠서 못읽고 외출갔다 와서 읽을 겁니다.
앞으로 동경미님 글 꼭 읽겠습니다. 좋은 글을 통해 깨우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3. 82cook
'09.10.19 7:50 PM82cook 관리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글이라서 글 제목에 ★표 붙여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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