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니스바 앙기솔라의 그림에 이어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MARY BEALE이라고 처음 보는 화가이지만 이렇게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어디선가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일단 멈추고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게 되겠지요? 이런 눈맞춤이 참 기분좋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시간에 쫑마마랑 둘이서 베토벤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요, 서로 어렵사리 단어 찾아가면서
읽은 내용을 어제 금요일 모임의 헤라님에게 모르는 부분을 점검받다가 보니 이상하게 우리들 마음대로 소설을 써버린 부분이 여러
군데 보이더군요. 그래서 오늘 밤 마음 잡고 처음부터 둘이서 한 장을 읽어나갔습니다.
(JUDITH JUG)
그랬더니 역시 처음 읽을 때보다는 더 내용이 들어오고 그 시기의 베토벤이 살던 시대에 대한 생각, 어린 나이에 쉴러의 시를 읽고
시의 내용을 소리로 내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교향곡 9번에 자신이 만들어싶었던 음으로 노래를 통해 쉴러를
표현하는 작곡가에 대해서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글을 간신히 이해하는 수준에서 조금은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의문점이 생기는 부분을 이번에는 다른 색깔의 연필로 줄을 그으면서 마치 학생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웃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생긴 것이 이렇게 좋은 기운을 북돋는구나 싶어서요.
FEDE GALAJIA
그림을 찾아서 보다보니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에게 맞는 소재를 선택해서 매진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여성화가들을 떠올리게 되네요.
주변의 반대도 있었을 것이고 남성 화가들에 비해서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손에서
떠나보내지 않았을 여성들이 주는 메세지의 힘이라니
ELISABETTA SIRANI
이 화가가 궁금합니다. 늦은 밤이라 더 이상 찾아볼 시간은 없지만 다시 시간을 내서 보게 될 예감이 드는 화가라서요.
100명의 화가를 소개하는 글에서 만난 라비니아 폰타나
앗 이 그림 나도 알아라는 반응이 가장 뜨거울 것 같은 화가 아르테미시아, 저는 이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녀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이탈리아에서 눈앞에 보면서 전율하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내가 화가라는 자부심, 자신의 온 힘을 그림에
쏟아붓는 화가가 보일 수 있는 집중, 눈매에 저절로 눈길이 가던 시간.
한 번 그런 강렬한 체험을 하고 나면 그 그림을 마음속에서 지우기는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미술관에 가는 일은
자신이 무엇에 놀라고 무엇에 무감각하고 그 순간의 떨림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느끼는 감응의 순간이 된다는 것
사실은 그래서 가고 또 가고 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