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까지요...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집이 바로 저희 집이었습니다.
지금 38의 나이인 제가 자라던 그 시절엔
겨울에 눈도 많이 오고 여름엔 비도 많이 왔던거 같습니다.
초등학고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그렇게 많은 눈이 내렸지만
전 한번도 신발이 눈에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신 아버지는 당신 자녀들의 등교길에 혹시라도
신발이 눈에빠져서 발이시려울까 걱정되시어 싸리비로 그 눈길을
큰길이 나오는 곳 까지 쓸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여름에도 저희가 등하교길에 이용하던 길가엔 풀하나 자라질 않았습니다.
이슬에 발이나 옷이 젖을까 염려하셔서 풀이 많이 자라지 않도록
늘 깔끔하게 풀을 베어 내셨던 내 아버지.....
그 시절엔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 생각하고 자랐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저였지만....
유독 깊은 사랑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험관시술로 어렵게 아이를 낳은 저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쏟아 주신 사랑에 비하면 반의 반도 되질
않는 것 같습니다.
벌써.....2년이 다 되어 가네요.
2년전 6월 24일...
저희 아버지의 생신이었습니다.
딸셋에 아들하나 두신 아버지....
60세쯤 부터 심근경색이라는 몹쓸병으로 투병중이셨던
아버지의 생신이셨지요...
모처럼만에 우리집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였고...
남동생이 결혼을 한지 갓 한달쯤 되었을 때 였기에 더욱 즐거운 하루 였습니다.
도란도란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고기한쌈 싸서 아버지 입에도 넣어 드리고...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낸후 25일에 저는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날...새벽....이른시간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잠을 깼는데
전 꿈이길 바랬습니다.
제가 올라올때만 해도 분명 손흔들어 주시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인해서 병원에 계신다는 겁니다.
응급수술 중이시라고.....
그 이후....
아버지는 단 한번도 제 이름을 불러 주시지도 못하셨고
제손을 꼭...잡아 주시지도 못하십니다.
4남매중에서 어린시절 부터 유독 까탈스럽고 몸도 약해서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았던
당신의 셋째딸을....이젠 안아 주시지도 못 하십니다.
5월이 되니 더욱 가슴저미도록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며칠전 병원에 가서 뵙고 오는 길에 그리울때 보려고 사진한장
찍어서 왔습니다.
다른분들께는 중증환자의 모습으로 보이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전 이렇게라도 저의 곁에 계셔 주셔서 너무도 감사한 모습입니다.
그립고 또 그립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아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