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치 ' 는 이상합니다 . 분명 맛있는건 아닌데 . ' 엄마의 김치 '가 아닌 김치는 입에 맞질 않습니다. 냉장고에서 '엄마의 김치'가 떨어져가면 불안합니다. 그 김치가 없이는 김치찌개가 맛이 안납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중에 하나인데 말입니다. '엄마의 김치'는 고단함입니다. 배추를 사서 몇 번을 씻어내고 , 소금에 절여 , 밤새 뒤집기를 반복하는 김장입니다. 고추가루부터 젓갈까지 양념 하나 하나에 고단함이 배어 있습니다. 평생의 습관입니다. 그 평생의 습관이 며느리는 두렵습니다.
서로 다른 세대의 삶의 방식을 좁히는 건 어렵습니다 . 이럴땐 바보인척 하는게 빠릅니다 . 이 '어리석음'이 ' 아들이면서 남편 ' 이 취해야 할 ' 현명함'입니다 . 일단 ' 절임배추'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전화드립니다 . 뭐라고 말씀하십니다 . 몰랐다고 합니다. 그냥 무조건 몰랐다고 합니다. 통화가 길어질려고 합나다. 잘 안들립니다 . 어째 요즘 'LTE' 니 '5G' 니 하면서 통신회사들이 속도만 신경씁니다. 통화 음질이 별로입니다 .
그리고 아내와 둘이 무우 , 갓 , 쪽파 , 총각무 , 생새우 , 마늘 등등 장을 봅니다. 수육용 고기도 삽니다. 된장국에 들어갈 조개 도 삽니다. 아내와 함께 다듬고 씻어 놓습니다 . 황태머리 , 표고버섯 , 각종 야채로 육수도 해 놓습니다 . 이게 뭐라고. 장보고 다듬고 하는 일도 꽤 걸립니다. 고단합니다. '엄마'에게 미안해집니다.
다음 날 아침. 부모님을 모시러 갑니다. 차에 타시자마자 '절임배추'의 청결함에 대한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집에 도착합니다. ' 아내 ' 가 정리한 재료와 '절임배추'가 엄마를 맞이합니다.
'절임배추'의 청결함에 대한 '엄마'의 의심이 풀렸습니다. 드디어 ' 엄마 ' 의 양념이 이것 저것 들어갑니다 . '엄마의 김치'는 계량컵 따위는 쓰지 않습니다. 해마다 다른 '엄마의 김치'의 애매한 맛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 아들 ' 은 버무립니다 . 눈이 맵습니다 . 김치속을 채웁니다. 먼저 찌개와 찜에 해먹을 김치는 양념을 바르는 느낌으로 채워줍니다. 익혀서 먹을 김치는 속을 충분히 채워줍니다. 마지막 반포기 정도를 채울 양념에는 홍시를 하나 탁~. 수육과 함께 달달하게 먹을 김치입니다.
10개의 김치통을 채우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삶은 수육에 김장 김치. 소주까지 한 잔 들어갑니다. 엄마는 기분이 좋습니다. 몸이 편하면 마음도 너그러워집니다. 쓸데없는 물건만 사들이는 아들이라고 잔소리 하시더니, 갑자기 독일 채칼 칭찬까지 합니다. 물건 하나를 사도 똑똑하게 산다고... 한번 해보니 내년부터는 아내와 둘이 할 수 있을듯 합니다.
이젠 '엄마의 김치'의 고단함에 마침표를 찍어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