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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응모)외할머니의 기억..

| 조회수 : 2,745 | 추천수 : 45
작성일 : 2006-10-24 05:09:57
어린 나에게 외할머니는 때때로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하는 존재였음을 고백한다. 다른 친구들의 할머니들처럼 짧은 머릴 파마하고, 염색하고, 어느 정도 입술에 붉은 화장칠도 해주시고,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정말 흰 고무신을 신으시고, 초라하게 숱이 적은 머리를 쪽쪄 올리시고, 버스비를 아끼려 언덕배기를 걸어 올라가시는 동안 수도없이 그 길을 쉬어가야만 했던, 그리고 그 쉼의 멈춤마다 한가치의 담배를 태우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저잘난줄 알고 까불던 어린 나에게는 솔직히 조금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흔 가까운 연세에 우리 엄마를 낳으시고, 얼마지 않아 외할아버지 세상 버리신 후, 힘든 살림에 그리 애지중지 하셨다더니, 그 내리 사랑은 나와, 오빠의 우리들에게도 내림이 되어서 직장 다니시던 엄마를 대신하여 우리들의 어린 시절의 자리를 지켜 주셨더랬다.
저녁나절에 되어 엄마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외할머니는 마당 한켠의 쑥을 죄 뜯어다가 쑥버무리를 만들어 두시기도 하셨고, 때론 떡 시루를 꺼내놓고 이런저런거 다 들어간 떡을 찌기도 하셨더랬다. 엄마가 워낙 전 종류를 좋아하시니, 할머닌 없는 재료 이것저것으로 어쩌면 그렇게 알뜰하게도 오만 것을 다 만들어 두셨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였으니, 유치원에 다녀오고, 학교에 다녀와서 가방을 휙 집어 던지고 무엇인가 간식꺼리가 없는가,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라치면 할머니는 금새 후루룩..하고는 밀가루 떡을 구워내시거나, 냄비에 노랗게 폭신 거리는 빵 따위를 쪄내서 찬밥으로 만든 단술 (식혜)와 더불어 먹을만한것들을 장만해 주시곤 하셨더랬다.
그렇게 늘상 풍요로웠다. 모든 것이 풍족하기만 하던 시절은 아니였는데,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외할머니가 지키고 계신 부엌은 늘상 푸짐하고, 맛깔스러웠다.
친정집 떠나 시집살이 시작하신후로, 그리고 많이 않으신 연세에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난후로, 그렇게 여유로운 삶을 살아본적이 없으셔서, 그렇게 다양하고, 좋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살아오지 못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입술이 상상해 내는 모든 것들을 금새금새 그렇게 만들어 내시는 요술과 같은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계셨다.

어린 나의 철없음은 종종 그런 외할머니를 부끄러워 하게 만들곤 하였다. 친구들이라도 놀러올라치면, 할머니는 꺼먼 들깨를 뭉친 강정만들어 두신것이나, 밀가루에 계란 노른자와 우유물을 조금 풀어 부친 팬케익도 아니고, 호떡도 아니고 한 것 등을 내어 주시곤 하셨는데, 평소엔 그렇게도 잘먹던것들이 왜 친구들이 놀러와 있으면 그리도 옹색하게 느껴지고 부끄럽던지..둥그런 보름달 같은 크림바른 카스테라빵이 아닌 할머니의 빵과, 빨갛고 노란 사탕이 아닌 강정 등이 나는 괜시리 친구보기 부끄러웠다. 그것은 쪽찌르고, 고무신 신은, 성한 이빨이 몇 개 남지 않은 나의 외할머니의 모습에 오버랩 되는, 나의 허영의 아킬레스건과도 같았던 것일테다.

지금의 외할머니는 98세의 “정말” 호호 할머니가 되어버리신 것이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간식을 주워 먹으며 배깔고 누워 만화책을 읽던 나는 이제 30대의, 할머니의 말씀을 빌자면 “반 늙은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젠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간식을 새새끼 마냥 받아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무언가 할머니께 챙겨드린답시고 어설픈 솜씨로 레시피 읽어 만든 양갱따위를 들고 부모님댁을 찾곤 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간절한 그리움 중의 하나는, 한심한 인간의 아이러니 그대로, 그 할머니의 음식들이다. 찬밥을 고아 만들어낸 할머니의 조청과, 조청을 만들며 냄비에 눌어난 찌꺼기를 뭉쳐 만들어 주시던 딱딱한 엿사탕이며, 그 호떡인지, 팬케익인지 정체를 알 수 없던빵들..하지만 98세의 할머니는 이젠 당신의 이름마저도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렇게 예뻐해주시던 손녀인 나의 이름도 기억을 못하시고 만다. 번잡스러운 명절의 날, 북적거리는 부엌을 가만히 쳐다보시며 두손을 비벼 무릎에 얹었다, 내렸다를 반복하시며 당신이 하실 수 있는일 없음을 그리 민망해 하시고, 한켠으로 슬퍼하실 따름이다.

나의 이십대. 그 세월의 대부분을 타지에 나가서 유학생활을 하며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먹을것으로 인한 서러움에 오돌거리던 시절에,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어린시절의 간식꺼리 하나를 떠올려 만들어 먹곤 하던, 무척이나 소박한 것이 있더랬다. 딱, 내 외할머니의 모습마냥 조그맣고, 조용하고,..하지만 한입 딱 베어무는 순간 나를 그 어린시절의 나로, 그리고 나의 외할머니에게로 되돌려 주는 그 맛이 있다. 감히 “레시피” 라고 부르기에도 거창한 그것이지만 나에게는 할머니의 까칠거리는 손바닥의 느낌이며, 겨울방학이면 할머니의 방에서 늦잠을 자다 일어나 내복바람에 뒹굴거리며 주워먹던 기억의 맛이련다. 나는 그것을 그 먼먼, 바다 건너의 남의 나라땅에서도 그렇게 그리워 하며, 차이나 타운 바닥을 헤매여 헤매여 딱딱한 팥을 사다가는 하루종일을 어설프게 삶고 조려서 만들어 먹었댔으니, 그러며 그렇게 잔잔히 눈가가 아리더라.

<너무도 간단해서 레시피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것>

재료:
밀가루
소금
팥소 (단맛이 나게 조려진 정도면 좋다. 딱 찐빵안의 단팥소처럼)+약간의 소금을 가미
식용유

조리방법:
밀가루에 조금의 소금을 섞어 묽게 반죽하여 크레빼 보다는 아주 조금 두껍게 부친다.
(어찌보면(?) 도라야끼 만들 듯이) 한면이 익어가는 동안 아직 익지 않은
면에 팥소를 얹어 돌돌 말아주며 스페츌러로 꾸욱 눌러 약간 납작하게 눌러준다.

비좁은 유학생의 부엌에서 저렇게 외할머니의 도라야끼도 아니고 크레빼도 아닌, 그것을 부쳐 만들고, 다 만들어져 차게 식혀진 후에 그것을 냉장고용 콘테이너 안에 넣어두고 간식마냥, 때론 간단한 식사로 꾸준하게 먹으며, 먹을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에, 그리움에, 미안함에 가슴이 시려오곤 했더랬다.
이젠, 할머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할머니...식혜는 어떻게 만들어?”

“몰라..허허허...”

“할머니..조청은 어떻게 만들어?”
“몰라..허허허..”

“아무거도 모름 할머닌 바보네..”

“그래..난 바보다...허허허..”

할머닌 그저 미안해 하시며 손등을 부비고 계실 따름이다. 외할머닌 그렇게 다 잊으신거다. 하지만, 이젠 내가 기억하고 있는걸..이젠 할머니가 굽던 빵을 내가 굽고, 할머니가 찌던 떡을 내가 찌고 있으니 말이다. 이 나의 가슴과..입술과..혀와...마음이 할머니의 음식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언제나처럼 외할머니를 기억하듯이...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emese
    '06.10.24 5:22 AM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 2. 생명수
    '06.10.24 8:29 AM

    잘 읽었습니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푸근한 이야기네요.

  • 3. 맨드라미
    '06.10.24 8:55 AM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면, 어릴적 음식이 참 많이 그립습니다.
    더구나 추억이 깃든 음식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지요.
    잘 읽었습니다.

  • 4. Naomi
    '06.10.24 10:43 AM

    그거, 혹시 "부꾸미" 라는 이름을 가진 것 아닌가요?
    저도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단팥이 가득 들어간,
    재료에 따라 "수수 부꾸미", 메밀 부꾸미" 밀전병 부꾸미" 이렇게 불렀던 걸로 기억해요.

  • 5. 죠박
    '06.10.24 9:59 PM

    나오미님의 말씀이 맞는거 같아요. 전 밀전병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한정식집에서 먹게되는 그냥 부꾸미랑은 조금 다르고, .밀전병이 딱 맞는 이름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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