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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드림팀의 재구성이 사실이라면 이유를 캐낼 필요는 없다
유명하신 분이예요. 연아팬들 사이에서는 모두 아시는 '해맑은 아찌'...
오늘 연아선수와 오서코치의 결별에 대해서도 글을 올려놓으셨네요.
공유하고 싶어서 퍼옵니다.
원문 링크해 놓을께요.
<김연아 드림팀의 재구성이 사실이라면 이유를 캐낼 필요는 없다>
오늘 누구나 깜짝 놀라고 믿기 힘들었을 그 소식때문에 힘드셨을 줄 압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피겨도 비시즌이지만 저는 직업상 잦은 해외 체류와 다음 1년의 연구 계획으로 바쁜 시간이어서 블로그도 쉬고 피겨와는 좀 거리를 두고 삽니다. 그래서 또 9월 1일을 복귀날로 잡아 놓고 개강 주인 이번 주에 다른 여러 사안을 마무리지으려 하고 있었습니다만.....잠시 그 일들을 뒤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만큼이나 저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전례가 거의 없는 탑 여싱의 '성공 후 메인 코치 교체'
이 사안의 경우, 아마도 가장 비슷한 예는 2001년에 있었던 미쉘 콴과 프랭크 캐롤 코치의 결별일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시즌 중인 2001년 10월에 일어났습니다. 그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의 처음을 장식하는 스케이트 아메리카가 벌어지기 1주일 전, 미쉘 콴은 기자회견을 열고 그 때 까지 10년간 같이 하며 4차례의 월드 챔프와 5차례의 전미선수권 우승을 같이 해 온 프랭크 캐롤 코치와 더 이상 같이하지 않음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We have differences. We have issues. Maybe it's just better now to skate alone and see where it gets me and take it one thing at a time."
우리는 (의견이) 서로 다른 점이 있었고 논의 사항이 있었다. 아마 지금은 홀로 스케이트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고 그런 홀로서기가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고 하나 하나 해결해 가겠다.
이후 지금까지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미쉘 콴은 언급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프랭크 캐롤은 10월 중순에 미쉘이 그에게 와서 분명한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나 혼자 스케이트하는 것이 내게 더 좋을 것 같다."라고 했다고 밝힙니다.
4개월 후에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솔트레이크 올림픽이 벌어지는 그 중요한 때에 이 일이 벌어지자 미국의 언론과 팬 사이트 등이 조용할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쉘은 그 일에 대해 아무 것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 이상 꺼내 놓지 않았고 다만 프랭크 캐롤이 추후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힙니다.
- 시즌 전 준비 상황은 크게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승부는 내년 2월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2월에 컨디션이 절정에 달하도록 훈련 스케줄이 짜여져 있으니 시즌 시작 전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보았다.
- 콴이 보다 성숙해지고 유명해지면서 이전의 스승-제자 관계가 보다 사업적인 면모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 아마 미쉘은 이제 자신이 다 컸다고 느끼는 것 같다. 21살이고 부자가 되었고 남자 친구도 있으며 아마 이제 본인 일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자신감을 느낀다고 할까?
"I think maybe she's feeling like a woman now,She's 21, she's wealthy, she has a boyfriend. She's probably feeling she should take charge of her life. She's feeling her oats."
그 시즌 미쉘 콴은 코치 없이 올림픽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올림픽의 결과는 원하는 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시즌, 콴은 스캇 윌리암즈를 코치로 맞아 그녀의 마지막 5번째 월드 타이틀을 따냅니다. 많은 콴의 팬들이 사랑하는 아랑훼즈 프로그램과 함께 성숙환 여왕의 모습을 보여주엇습니다.
그러나 윌리암즈와는 그 시즌 뿐이었고 라파엘 아르투니안을 새 코치로 맞게 되지만 이 때는 이미 콴이 코치를 '고용'하는 단계였습니다.
미국의 언론이 가만 있었을 리 없습니다. 당시 결별 이유에 대한 많은 억측이 있었는데 이런 것도 있었답니다. 당시 콴의 남자친구는 NHL에서 뛰는 하키 선수였는데 캐롤 코치가 두 사람의 데이트를 충분히 갖도록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대의 반항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물론 콴은 부인했습니다. 캐롤 코치 역시 그랬구요.
물론 미쉘 콴은 그 뒤에도 올림픽 챔피언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뀐 신채점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또 고질적 부상으로 비공식 은퇴 상황인 채로 지금까지 온 것이죠. 하지만 지금 누가 프랭크 캐롤 코치와의 결별이 미쉘 콴의 위대성을 깎아먹었다 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스캇 해밀턴의 코치 교체와 성공
1984년 올림픽 남자 싱글 우승자 스캇 해밀턴은 2008년 발간된 그의 책 "The Great Eight"에서 당시 최고의 코치였던 카를로 파시로부터 덜 알려진 단 로스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카를로는 나를 더 높은 수준의 스케이팅으로 인도했다. 그의 지도로 나는 트리플 러츠를 배웠고 쇼트 프로그램에서 그것을 사용한 첫 스케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1978년 미국을 대표하여 세계 선수권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우리 관계는 카를로가 스캇 크레이머를 학생으로 받아들이며 껄끄러워졌다.
스캇 크레이머는 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따라서 카를로가 우리 둘을 다 코치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아니 아니 이게 뭐야?” 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우리가 함께 같은 코치에게 훈련한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이겨요?” 였고, 카를로의 대답은 “나는 너희 둘 다 잘되기를 원해.” 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고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100% 내 편에 서서 나를 훈련시키고 지원하는 코치가 필요했다. 나는 배신감을 느끼고 실망했다. 그의 그러한 결정은 내가 취약할 때에 이루어졌다. 당시 나는 오른 발목의 인대가 모두 손상된 상태였고 또 더블 플립 - 트리플 토우 컴비네이션 점프를 연마하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이 점프가 바로 스캇 크레이머의 특기였다. 컴비네이션의 두 번째 점프를 트리플로 뛰는 것은 지금은 모두가 쉽게 하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의 스케이터가 어려워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1979년 시즌에 나는 그 컴비네이션 점프의 연마 없이는 그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발목 인대를 다치기 전 나는 세계 선수권에서 11위를 했었고 스캇 크레이머보다 국내 랭킹이 앞서 있었다. 나는 아주 잘 하고 있어서 1978년 시즌이 끝난 후 스캇 크레이머는 아마도 “내가 스캇 해밀턴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같은 편이 되자.”고 하며 카를로에게 코치를 부탁한 것이다. 카를로가 그를 받아들인 것은 내게는 충격이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는 당시 덴버에 있었지만 미국 피겨 연맹 본부가 있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브로드무어 월드 아레나에 복귀하고 싶어 했고 두 명의 탑 남자 스케이터를 보유한다면 그는 이 스포츠의 가장 유능한 코치로 여겨질 터였다. 나는 또 브로드무어 월드 아레나와 연결된 고위층이 크레이머를 맡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카를로에게 그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피겨계 내부 정치를 하고 싶어 했고 브로드무어는 이 스포츠의 본부였으니까. ( 1977~79년 사이 미국 남자 스케이팅 챔피언은 스캇 해밀턴보다 5살 위인 찰스 티크너였고 스캇 해밀턴, 크레이머, 데이빗 산티가 2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젊은 피였다. 카를로 파시 코치는 이태리 사람으로 1961년 미국 피겨 선수단이 세계선수권에 참가하러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전원 사망한 사고가 있은 뒤 폐허가 된 미국 피겨를 재건하기 위해 영입되었으며 1968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도로시 해밀을 키워내 미국 피겨계의 최고의 코치이자 파워맨이 되었다. 그는 위에 설명한 브로드무어 아레나에서 코치를 시작했다가 덴버로 옮겨간 때였고 1980년대 초에 다시 브로드무어로 복귀한다.)
코치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 없이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카를로와 의견을 달리하면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카를로에 대해 어떤 악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기간 동안 내 가장 큰 라이벌과 같은 얼음판에서 매일 같은 코치를 공유하는 것이 끔찍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훈련장으로 가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우려했던 대로 카를로는 우리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나는 훈련장의 다른 코치에게 보충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 필라델피아 출신 단 로스 코치가 있었다. 단은 나를 도와주었고 내 후원자인 프랭크와 헬렌을 알게 되었다. 단 코치는 내 스케이팅에 관심을 보인 반면 카를로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부분적으로는 그는 내가 발목 부상 이후로 좀 망가진 상태로 보았던 것 같다.
그 해 전미 선수권에서 나는 잘했고 4위에 올랐지만 스캇 크레이머는 2위에 올랐다. 나는 공식적으로 4위 역할을 해야 했지만 그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 대회 후 나는 나의 후원자인 프랭크와 헬렌에게 가서 카를로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단 로스를 코치로 하고 싶다고 했고 그들은 나를 축복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카를로에게 가서 말했다.
“나는 단 로스와 좋은 관계를 형성했고 그가 나를 코치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또 프랭크와 헬렌이 내가 카를로 휘하에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후원한다는 것도 밝혔다.
“그러니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계속 남아 있을까요 아니면 (단 로스 코치에게) 갈까요?”
“네가 나를 떠나 단 로스에게 가고 싶다면 (어쨌든 내 대답이 무엇이든) 그리 하겠지.”
그는 내게 남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아니, 남아 있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는 나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러면 그 결정(카를로를 떠나는 것)은 내게 올바른 것이다.
3일 후, 나는 단 코치가 있는 필라델피아로 가서 훈련을 시작했다. 그것은 내 스케이팅 경력의 전환점이었다. 만약 내가 코치 선택을 잘못했다면 나는 그 다음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고 단 코치가 올바른 선택이라면 나는 그 다음 수준인 올림픽으로 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로스에게로 옮겨간 스캇 해밀턴은 1980년 시즌부터 은퇴시까지 13개 대회에 출전 모두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김연아의 드림팀 1기 이유가 무엇이든 '서로 다름'을 느낀 것은 양쪽 모두인 듯하다
두 개의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먼저 피겨 스케이팅 온라인에 우리가 처음 소식을 접한 그 내용이 뜹니다.
http://figureskatersonline.com/news/2010/08/23/brian-orser-no-longer-coaching...
여기에는 8월 2일에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박 미희 여사가 "더 이상 같이하지 않겠다"라고 했다고 나옵니다.
이어 김연아 선수의 소속사 (주)올댓스포츠가 공식 발표를 통해 '결별'을 확인합니다. 다만 '서로 휴식기를 갖자'는 제의를 먼저 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자 우리 언론은 '사실 공방'으로 몰고 갈 기세입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해외 유명 포럼인 FSUniverse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해외 팬들의 첫 반응은 대체로
"놀랍다. 한 방 먹었다. 김연아의 은퇴가 가시화된 것인가?" 였습니다. 즉, 은퇴할 것이 아니라면 그간 그리도 잘 맞았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시즌 개막을 앞두고 결별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시즌 저도 소개한 바 있는 해외 유명 블로거 토니 휠러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7월에 내가 다른 매체에 선수들의 전망을 기고했을 때 이미 김연아가 오서와 같이 훈련하고 있지 않다고 들었다"
또 다른 유저가 쓰기를 자신이 얼마 전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김연아의 훈련 상황에 대해 질문했는데 그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라고 썼습니다.
이 상황은 올댓스포츠의 공식 발표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많은 유저가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가운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김연아 선수의 해외 팬인 레온 씨의 글이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요점만 말하자면....
내 생각에는 김연아와 오서 코치가 더 이상 같은 페이지(같은 목표)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후 오서 코치의 트리플 악셀 관련 발언은 우리나라 기자의 침소봉대 자작극인 것을 모르고 쓴 것 같기에 번역 안 합니다)
하지만 모두 품위있는 사람들이니 잘 해결해 나갈 것이고 모두에게 지금은 매우 감정적인 때인 것 같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어쨌든 양쪽 모두 같이 해서 좋지 않았는가?
My gut tells me Kim and Orser just weren't on the same page anymore. I remember her surprise at a news conference after Vancouver when Brian said she could/should master the triple axel. It didn't sound like that was on her to-do list back then.
...
They are all class people and I am sure this is an emotional time for all.
Warm wishes and best of luck to all. It was a great ride, wasn't it?
누군가를 사귀다가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 '이제 끝인가?'하는 느낌은 양 쪽 모두에게 온다는 것을. 다만 서로가 언제 그것을 표면화하는가가 다를 뿐....그래서 남녀관계가 끝났을 때 누가 누굴 버렸다 라는 표현은 대부분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피겨에서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그만큼 돈독하고 서로를 '신뢰'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아마 그 '신뢰'부분이 누가 먼저였든 무엇이 매개가 되었든 서로에게 올림픽 후 싹트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밝히고 서로에게 '잘 되기를 바란다'라는 발표를 한 마당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설혹 양쪽이 다시 화해 절차를 밟아 '서로 오해가 있었으나 앙금을 풀었다.'라고 한다 해도 우리는, 팬이든 기자든, 그 내면을 파고 들려고 애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다행이다. 이제 서로에게 더 잘하세요!' 이러면 됩니다.
선수는 팬이나 기자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 선수에게는 새 목표와 새 꿈이 필요하다
올림픽 우승 후 이러한 주제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 새 목표와 새 꿈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자리잡았는지 제가 알 길은 없습니다만 그것이 오서 코치가 생각하는 '김연아의 차후 목표와 꿈'과 달랐기에 일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정도로 저는 생각합니다.
앞에 미쉘 콴의 2001년 결별을 에로 들었습니다만 당시 콴의 나이가 만 21세였습니다. 결과가 올림픽에서는 원하던 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콴은 어쨌든 그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프랭크 캐롤 코치 역시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코치 중의 하나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는 아니라도 콴의 경우와 유사한 점이 조금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또 그것을 제가 예로 든 것이기도 합니다.
또 탑 스케이터가 코치를 바꿨다고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말하기 위해 스캇 해밀턴의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스캇 해밀턴의 경우 김연아 선수가 '불편함'을 느꼈다던 그 '라이벌 선수와 같이 코치받는 상황'이 실제로 한 시즌동안 벌어졌었습니다. 스캇 해밀턴이 단 로스에게 간 1979년은 스캇 해밀턴이 만 21세일 때입니다.
한 가지 더 우리 팬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박 미희 여사는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인 피겨 맘인 동시에 소속사인 (주)올댓스포츠의 대표십니다. 자연인은 하나지만 사안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수 있음도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프랭크 캐롤 코치가 10년을 미쉘 콴을 데리고 있다 보니 이미 다 성장한 21세가 되었음을 깊게 자각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오서 코치도 입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된 박미희 여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분석하고 누가 더 잘했니 혹은 무엇이 매개가 되었니 같은 글은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자건 블로거건 그냥 익명의 게시판 유저건....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김연아 선수도 피겨계의 큰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적어도 그 동안 그러했던 양쪽이 홀로서기를 한다면 둘은 서로에게 우군이지 적군은 아닐 것입니다. 아군이면 가장 좋겠지만 우군은 많을 수록 좋은 것이니 이 기회를 잘 살리면 많은 우군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원문: http://blog.daum.net/sadprince57/488
1. 연아화이팅
'10.8.25 1:03 AM (112.150.xxx.40)2. 문제는..
'10.8.25 5:25 AM (98.148.xxx.71)문제는 아래와 같은 글이 기사로 나오기 시작했다는거죠.
직장인들이 회사그만두면서 전회사와 좋은 유대관계를 가져야하는것처럼
(언제고 어떤 상황으로든 만날수있습니다)
올댓스포츠도 오서와 좋은 관계로 끝냈어야 하는거예요...
기사 퍼왔습니다 :
Figure skating-Kim fires coach who guided her to Olympic glory
Tue Aug 24, 2010 12:19pm EDT
By Pritha Sarkar
LONDON (Reuters) - Olympic champion Kim Yuna has fired her coach Brian Orser less than six months after he guided her to glory at the Vancouver Games.
Kim, the most famous female athlete in South Korea, credited Orser for her dazzling gold-medal performance in February when she earned record scores in the short and free programs, but that did not stop her abruptly terminating her four-year association with the Canadian.
"Meehee Park, Kim's mother,...met with Brian Orser...and informed the two-time Olympic medalist that he would no longer be retained to coach Kim," Orser's management IMG said in a statement.
"No reason was given for the sudden and unexpected decision."
Orser was told he was being fired on August 2 but had delayed making any announcement as he had hoped to work things out.
Kim's management company AT Sports later released a statement saying relations between the duo had been "uncomfortable" since May and that South Korea's only Olympic figure skating gold medalist had been training alone since June.
"I am grateful to the coach, Brian Orser, for being with me to help win the Olympics. I hope he may teach other athletes and achieve good results," Kim said in a statement. Under Orser, Kim captured a series of titles, including the world title in 2009.
"I am honored to have worked with such a talented and gifted skater," said Orser. "I wish her all the best as she moves forward in her skating career."
Forbes magazine lists Kim as one of the highest-paid female athletes in the world, with annual earnings of almost $10 million. (Editing by Clare Fal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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