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노동 OTL]
종일 12시간 서서 일하면 떼어내고 싶어지는 몸과 머리…
감시 속에 말조차 잃은 단절의 작업장에서 보낸 한달
'4천원짜리 인간'들이 있다. 2009년 최저 임금인 시급 4천원을 받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언론은 가난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종종 전해왔지만,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틈은 무장 벌어지기만 한다.
'워킹푸어'(working poor)는 2년전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왔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동트기 전에 출근해 별을 보며 퇴근해도 가난은 결코 저물지 않는 이들이다.
< 한겨레21 > 은 그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보기로 했다. 시급 4천원짜리 일자리를 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부닥치고 일했다. 그 돈으로 한 달 생활을 직접 꾸려보았다. 첫 번째 일터는 경기 안산 지역 공단의 중소기업 생산직이었다. 지난 7월 하순부터 구직 활동을 시작해 8월6일부터 9월5일까지 일했다.
시급 4천원의 노동자가 생존을 넘어 생활로, 생활을 넘어 행복으로 다가가는 게 가능할지 가늠해본 한 달간의 기록을 세차례에 걸쳐 전한다. 10월에는 일터를 옮겨 또 다른 '슬픈 노동'의 현장을 전하는 2부가 이어진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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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공장 노동이 '여공'과 '미싱'으로 상징된다면, 지금은 전동 드라이버다. 계절 따라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공장 시계 돌아가는 소리는 아니 들리고, 일주일에 7일, 하루 12시간씩 나사 돌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곡절 끝에 취업한 A사, 대부분의 여공 손에도 드라이버가 쥐어져 있다.
날 알선해준 '갑'(ㄷ용역회사)의 ㅇ과장은 "한 달에 140만원 플러스 알파, 그래서 170만원까지 받아간다"고 설명하며 액수를 메모까지 해줬다. 지난 8월11일 아침 7시30분께 서명한 계약서 뒷면에 그가 볼펜으로 끼적인 '희망'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 희망이 얼마나 고되며, 또한 야망에 가까운지 깨닫기까진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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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음의 준비가 덜됐는데….' 아찔해하고 있을 찰나 종이 울렸다. 정확히 아침 8시30분, 탱크 바퀴처럼 육중한 라인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겐) 기습적으로 시작된 첫 공장 근무는, 급류에 떠밀리듯 허우적대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오전 10시가 되자 허기로 멍해졌고, 11시가 되자 다리를, 오후로 들어서자 머리를 떼어내고 싶었다. 한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작업하는 상체를 받치는 다리가 꺾일 것 같았다. 사타구니 높이의 컨베이어벨트에 놓인 난로를 내려다봐야 하는 머리는 불필요하게 무거웠다. 오직 한마디만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단전돼라, 단전돼라, 신이시여 단전되게 하옵소서.'
텅 비우지 않으면, 머리를 기어코 컨베이어벨트 위로 내동댕이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즈음, 30대 후반의 반장은 "오늘 잔업은 9시"라고 알렸다. 오후 4시 남짓이었다. 이후 5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알 수 없다.
휴대전화를 꺼내 처음으로 시간을 봤던(작업 중 휴대전화를 꺼내는 이는 거의 정규직이라고 보면 된다) 8월19일의 기억이 선명하다. 오후 6시 야간 잔업이 시작되고 밤 9시가 멀었나 싶어 시계를 보면 7시10분이었고, 9시가 됐나 싶어 시계를 보면 8시였으며, 9시가 됐겠지 싶어 시계를 보니 8시40분이었다. 9시 라인이 멈추자마자 짧은 비명을 내뱉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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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과 철야가 연일 가능한 것은 '빈곤한 노동자'가 항상 넘치기 때문이다. 이달 A사에서 일한 지 3개월째가 되는 40대 후반의 정성훈(가명)씨는 잔업이 저녁 8시에만 끝나도 화를 냈다. "저녁까지 먹었는데, 9시까진 해야지 돈이 좀 모이는데, 이게 뭐냐"며 '단전'을 외쳤던 내게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던진다. 많은 이들이 생활이 아닌 생존, 부유가 아닌 충족을 원한다. 그를 위해 '착취'조차 달게 받는다.
3. 침묵의 노동
근무 첫날 다섯 마디가량 말을 했다. 오전 10시30분 종이 치며 라인이 서자 "쉬는 시간이냐"라고 묻고, 낮 12시30분 종이 치자 옆 공정 중년의 정규직 여성에게 "점심시간이냐"라고 물었던 몇 마디다. 그 여성은 "응" 하면서 쏜살같이 식당으로 달려갔다. 안산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 가운데 하나다.
이후로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근무 중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파견 노동자들은 입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을 하는 이는 대개 정규직이다. 휴대전화 통화나 문자 확인은 도덕과 상식, 인륜을 망각한 짓이 된다. 반장이나 경력 높은 정규직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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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아침 8시10분, 이 회사 회장의 아들인 전무가 월례 조례를 주재했다. 그는 "올해 잘하면 최대 수익을 낼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며 "자부심을 갖고 경쟁력을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강당에서 정규직과 파견 노동자가 뒤섞여 선 채로 20분 넘게 들어야 했던 연설의 고갱이였다.
하지만 그런들 파견 노동자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100억원을, 1조원을 돌파해도 시급은 주근 4천원, 야근 6천원이다. '용역'들도 모르지 않는다. 나는 다만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파견 노동자들을 앉혀주고 조례를 했다면 조금은 더 귀담아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한 사람이 허리가 아픈지 대놓고 "끄응~" 하며 몸을 숙인다.
인력회사에서 얘기하는 월급은 대부분 월~금요일, 주근과 2~3시간의 야간 잔업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러면서 때때로 주말 특근까지 해야 받는 액수다. 당초 돈 쓸 시간이 없기에 절약이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그건 이들 빈곤한 노동의 유일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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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아닌 실험이라 다행일까
4주간의 노동을 끝낸 다음날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다시 기자로 돌아갈 수 있어서라기보다, 지난 한 달이 운명이 아닌, 오직 '실험'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던 것일까. 공장 노동자의 손금이 따로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를 사열시키는 컨베이어벨트는 영원히 쉬지 않고 돌며, 20살 여공부터 48살 가족을 책임지는 중년 남자까지
여전히 제 손금을 원망하며 나사만 하루 11시간씩 조이게 할 것이다. 그들이 선하다. >
http://media.daum.net/society/labor/view.html?cateid=1067&newsid=20090918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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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면 이럴까요?
하늘이시여 조회수 : 676
작성일 : 2009-09-18 23:39:58
IP : 59.11.xxx.188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하늘이시여
'09.9.18 11:40 PM (59.11.xxx.188)http://media.daum.net/society/labor/view.html?cateid=1067&newsid=200909181810...
2. 하늘이시여
'09.9.18 11:43 PM (59.11.xxx.188)그렇다고 여기 중소기업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도 하청주는 대기업에 뜯기니까
결국 그 피해는 아래로 아래로 전가되어 가장 말단의 하청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이르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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