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기형도 시입니다. 적절한 듯해서....

비가 조회수 : 377
작성일 : 2009-05-30 12:03:57
비가 2 - 붉은달 / 기형도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장기두는 식으로 용감히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 나라의 달.

2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에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속에서
폭풍주의보다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네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왜 천국이라 말하였는지. 네가 떠나는 내부의 유배지는
언제나 푸르고 깊었다. 불더미 속에서 무겁게 터지는 공명의 방
그리하여 도시, 불빛의 싸이렌에 썰물처럼 골목을 우회하면
고무줄처럼 먼저 튕겨나와 도망치는 그림자를 보면서도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떨리는 것은 잠과 타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내 유약한 의식이다.
책갈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우리들 창백한 유년, 식물채집의 꿈이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무더웠다.

3

잘 가거라, 언제나 마른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대여
밤 세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있을
그대. 잘 가거라 약기운으로 붉게 얇은 등을 축축히 적시던 헝겊같은
달빛이여. 초침 부러진 어느 젊은 여름밤이여.
가끔은 시간을 앞질러 골목을 비어져나오면 아,
온통 체온계를 입에 물고 가는 숱한 사람들 어디로 거죠? (꿈을 생포하러)
예? 누가요 (꿈따위는 없어) 모두 어디로, 천국으로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턱턱, 짧은 숨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IP : 118.45.xxx.115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고맙습니다
    '09.5.30 12:15 PM (125.177.xxx.79)

    ,,,..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 2. 원글
    '09.5.30 12:19 PM (118.45.xxx.115)

    네...ㅠㅠ
    오래 전에 쓰여졌던 이 시에 대해 공감이 된다는 건 현 시대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뜻하는 지도.... ㅠ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66538 오늘 방송...<바보 노무현 봉하에서의 두번째 만남>방송...꼭 보자구요...T.. 2 kbs1 2009/05/30 426
466537 추도미사 중에 카타리나 2009/05/30 263
466536 오랫만에 천호선 대변인 보니까 궁금한것이.. 2 ... 2009/05/30 1,260
466535 천주교에 대한 글들을 읽고... 3 오해마시길 2009/05/30 529
466534 질문 하나 드릴게요. 2 잡아가든지 2009/05/30 230
466533 이 만화 보셨나요 2 ㅈㅈ 2009/05/30 366
466532 중단해서는 안된다. 진실규명해야... 2 노무현수사 2009/05/30 214
466531 5월 30일자 경향, 한겨레, 조선찌라시 만평 5 세우실 2009/05/30 493
466530 미드 보스턴 리걸에서 페일린 지지하던 여성 에피소드... 궁금한데 2009/05/30 141
466529 기형도 시입니다. 적절한 듯해서.... 2 비가 2009/05/30 377
466528 급질)지금 봉하마을 상황 알 수 없을까요? 청소하려구요.. 2009/05/30 113
466527 아~~한명숙 전총리의 조사에 이런 숨은 사연이..ㅜ.ㅜ꼭 보세요. 23 드림스노우 2009/05/30 4,806
466526 남편땜에 괴로워요(노대통령님 조문가자했다가~) 2 괴로워 2009/05/30 562
466525 한국경제랑 매일경제.. 어떤게 조선꺼죠? 9 가물가물 2009/05/30 493
466524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죠.. 2009/05/30 90
466523 노무현대통령님의 뜻을 영원히 잊지않기 위해서 2 청라 2009/05/30 102
466522 연예인이란 사람들... 14 넘하네요 2009/05/30 1,562
466521 오늘자 ㅈㅇ일보에서 특히 화가난 구절. 1 죄송.. 2009/05/30 455
466520 우리끼리 눈맞춤 하는 방법을 모아봅시다. 3 눈사람 2009/05/30 178
466519 명계남씨 사정이 어려운가요? 49 불쌍 2009/05/30 8,037
466518 펌해온글...추모 현장사진들이 많이 있군요.. 1 설라 2009/05/30 332
466517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보하는 한나라당 22 민족의얼 2009/05/30 2,323
466516 권력남용하는 우리남편 9 당신이뻐 2009/05/30 938
466515 노대통령땐 고졸도 못배운건 아니지 않나요?? 19 학벌차별 맙.. 2009/05/30 1,261
466514 내 마음속의 대통령. 1 .. 2009/05/30 87
466513 그런데 권 여사님 연금 수혜 가능 한가요? 17 skfek 2009/05/30 1,435
466512 어제 운구차 옆에 있던 까만옷입은 아저씨들 뭐하는 사람들인지? 2009/05/30 201
466511 저 지금 막 신문 끊었어요. 15 죄송.. 2009/05/30 926
466510 적어도 우리 엄마들은 노무현대통령 돌아가신거 슬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0 2009/05/30 642
466509 헌화때 받은 팜플렛들,,,,버리지 마시고 3 유전무죄 무.. 2009/05/30 368